꽃자리의 '종횡서해'

세상이 소란을 피워도

한종호 2015. 2. 5. 16:41

꽃자리의 종횡서해(3)

세상이 소란을 피워도

- 자끄 러끌레르끄의 《게으름의 찬양》, 《무지의 찬양-무보수의 찬양》 -

인간을 무한경쟁과 파멸로 몰아넣고 있는 현대 문명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느림의 미학이 이제는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고 문명의 풍진을 훌훌 벗어던진 헨리 데이빗 소로우나 헬렌과 스콧 니어링은 이 시대의 교양이 되었다. 느림과 소박함, 자연으로의 회귀를 일깨우는 책들은 크게 몇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종교적 영성에 입각해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끄는 책들이다. 요즘 꾸준히 팔리고 있는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 한 때 서점가를 휩쓴 베트남 출신의 승려 틱 낫한의 《화》, 《평화로움》 등의 저서들, 달라이 라마의 강론과 수상집들, 아직은 가톨릭 내에 머물고 있어 안타까운 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우화와 신앙 에세이(《종교박람회》, 《개구리의 기도》, 《행복으로의 초대》) 류가 그것이다.

둘째는, 조금은 감성적인 글 솜씨로 독자를 사로잡는 수필들로 피에르 쌍소의《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남덕현의 《슬픔을 권함》 등이 일반 대중에게 느림과 소박함의 미학을 널리 전하는 전도사 역할을 해내고 있다.

셋째는,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인디언의 지혜와 삶의 철학을 모은 책들이다(《빠빠라기》, 《인디언의 복음》). 그리고 굳이 분류하기 뭣한 책들(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노자 이야기》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이현주 목사의 강해와 에세이, 전우익·권정생·윤구병 등 소로우나 니어링에 비견될 이 나라 멋진 선비들의 이야기), 생태학적 관점에서 쓰인 책들(《월든》, 《오래된 미래》, 《간디의 물레》)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진정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멈추어 자기를 성찰하고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진리는 위대한 스승들이 누누이 설파하고 종교적으로 추구해 온 바이지만, 현대 문명의 폐해와 인류의 비극적 미래를 적시하며 느리게 살자고 주창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가 본격적이다. 그 물결이 우리 사회에 전파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전보 한 통 쳐서 일체의 일을 사양했어야 옳았던 것을…

그런데 여기 소개하는 인물은 50년을 거슬러 올라간 1936년에 《게으름의 찬양》이라는 제목을 달고 느림의 미학을 읊어나간다. 그의 이름은 쟈끄 러끌레르끄. 1891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의 연보를 살피자면 1911년 20살의 나이로 법학박사, 3년 뒤 철학박사, 다시 3년 뒤 사제 서품을 거쳐 루벵대학교 강단에서 일생을 보냈고 가톨릭 쇄신운동에 헌신했다. 여기서 러끌레르끄의 학위나 학위 취득 시의 나이에만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들은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 쓴 책임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젊은 날에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벨기에 자유학술원 회원에까지 이르는 법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신부가 어떻게 게으름과 무지를 찬양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깐깐하고 보수적인 벨기에의 기득권층 한복판에 머물며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어야 한다.

그의 책에서는 피에르 쌍소 류의 현란한 수사가 춤추지 않는다. 풍부한 감성과 서정이 목을 빼어 노래하지도 않는다. 니어링에게서 읽던 모질고도 단호한 결별이 번뜩이는 것도 아니다. 그가 우리를 이끄는 힘은 유쾌한 단순무식이다. 러끌레르끄가 1936년 11월 벨기에 자유학술원에 입회하면서 동료들의 환영사에 답한 인사말을 책으로 낸 《게으름의 찬양》은 이런 빈정거림으로 시작한다.

“여러 어른의 재치 있고 심오한 말씀을 다 듣고 난 이제, 이 학술원-배울 학(學)자 달린 것이면 무어든 멀리하기를 일삼는 이 모임-에 제가 들게 된 보답으로 게으름의 찬양이나 한마디 드려볼까 합니다.”

“왜 하필 그런 연제를 골랐는지 저 자신도 모릅니다.… 프로이트는 아마 ‘리비도’ 때문이라 하겠지요. 그러나 저로서는 그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은 제쳐놓고 그저 주님 따라 마음이 넘쳐흘러 입이 열렸다고나 해두겠습니다.”

보라, 얼마나 무식 단순하여 힘이 넘치며 또한 결의에 차 있는가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더 단순무식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전보 한 통 쳐서 일체의 일을 사양했어야 옳았던 것을… 나오지도 않는 말귀를 애써 다듬어가며… 아무래도 모순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그놈의 제목 밑에 무슨 소리를 달아야 할지 그야말로 죽을 노릇입니다.”

맞다. 세상에서 겪는 고통 중 상당 부분은 ‘아니오’라고 뿌리치고 거절했어야 할 것을 기회를 놓쳐 혹은 미련과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한 데서 비롯되지 않던가. 왜 뿌리치지 못했던가 후회한다고는 하지만, 그는 그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미 이르러 있음을 들키고 만다.

 

                      

 

러끌 레르끄에게서 사사한 장익 주교( 《게으름의 찬양》의 역자)는 후기에서 자신이 전해들은 일화를 소개하는데….

“연구소 이층 창문으로부터 느닷없이 책, 신발, 옷가지, 기타 잡동사니가 무슨 난리라도 난 듯 요란하게 마당으로 마구 쏟아져 내려오더랍니다. 아래층에 사시던 동료 교수가 깜짝 놀라 무슨 변이 일어났는지 조교를 올라가 보라고 시켰는데… 러끌레르끄 교수가 윗도리를 걷어붙인 채 마냥 물건을 내던지고 계시기에 까닭을 물은즉… ‘훨훨 다 털고 허허롭게 살려고 마음은 먹었는데, 살다보니 주체할 수도 없이 가득 차 쌓여 몽땅 버리는 중일세. 이것 저것 고르고 가리다 보면 도로 뭣이 많아져서 우선 이렇게 던져놓고, 이따가 내려가서 다 치울테니 걱정 말게’ 하며 호방하게 웃으시더랍니다.”

그래도 동양 문화권에 몸담고 사는 우리로서는 이 정도의 이야기는 실천은 못해도 주워듣기는 많이 들은 바다. 도가에 속했거나 선종에 몸담은 스승이나 선사의 일화들이 넘쳐나다 못해 책으로 묶여서 책방에 가면 발에 치일 정도니까. 바로 그것이 문제다. 너무 많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새를 처음 본 꼬마가 넋을 잃고 하루 종일 새만 바라본 저녁, 아빠가 ‘그건 새라는 날짐승 중에 참새라는 건데 이런 깃털을 갖고 이렇게 날고 이런 걸 먹는단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다음 날 꼬마는 ‘아 저거, 난 알아. 저게 참새야’라며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이치다.

옛 가르침에 이르기를 “그 지혜에는 미칠 수 있겠으나 그 어리석음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可及其智 不可及其愚) 하였으니 한편으로는 수우(守愚)라고도 하여 어리석음을 지킨다고 한다.

이것은 겸손하려는 것과는 다르다. 설령 현명하여 깨달음의 경지에는 이르러도 그것을 넘어선 어리석음의 경지에는 미처 이르지 못해 깨달음의 티를 벗지 못할까 저어하는 심원(深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러끌레르끄 교수가 이층 창문으로 내던진 것이 그저 너저분하고 쓸모없이 쌓이기만 하는 잡동사니와 책들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사념을, 사념에 빠지는 자기 자신을 집어던진 것이다. 그 정도면 벨기에 식의 소신공양쯤은 되리라.

“이젠 그만 배우기: 생각하기.” 러끌레르끄가 두 번째 책에서 시종 붙잡고 있는 화두가 이것이다. “이 세대에 있어서 위험한 것 가운데 하나는 창조적 노력 없이 교육을 받아들인 졸업장 인생들 자신입니다. 또 다른 위험의 하나는 나날이 전문화해 가는 지식인들로서 자신들의 학문을 점점 더 협소한 영역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한 인간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서 가지런히 늘어놓으면 얻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부스러기의 집합일 뿐입니다.”

“세분화한 학문, 분석적 방법은 어리석은 선언의 위험… 현미경으로 아무리 보아도 영혼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만족한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그런 식자들의 선언 말입니다.”

학문이란 인간을 잡아 먹는 것입니다

그가 어찌 알았겠는 가만은 이 소리는 공자요 또한 노자다. 공자는 “군자(君子)는 불기(不器)’라고 하였고, 노자는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이 되는데 그러므로 큰 만듦은 쪼개지 않는다, 곧 대제(大制)는 불할(不割)’이라 설파하였다. 기(器)는 그릇이니 통나무를 쪼개서 만드는 것이라 이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게 되어 도(道)를 따르는 이와 군자는 쪼개고 나누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자연 그대로 놓아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은 이용가치를 중심으로 해서 쪼개고 쪼개어 잘디잔 아이들을 만들고 그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부추긴다. 그 경쟁은 대학 입학 허가서를 얻기 위한 쟁투로 이어지고, 대학 졸업장으로 이어지고, 학파와 학벌로 이어진다.

러끌레르끄는 탄식한다.

“학문이란 인간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지식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좋은 것인데 인간은 지식의 노예, 졸업장의 노예, 혹은 계획의 노예, 방법의 노예가 될 위험을 안고 삽니다.… 하기사 예수 때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는 현인이 아니라고 부정했습니다. 까닭인즉 예수가 자기들 문하에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고, 바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인간성을 의미하고, 이 인간성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생기요 창조력이며 노력의 의미이며 그 개성 자체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저도 남들만큼이나 졸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졸업장과는 상관없는 데서 얻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인생을 탐구하되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 참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그 뒤에는 삼조 승찬(三祖 僧璨)의 신심록(信心銘)이 절로 따라오지 않는가. “위대한 도는 골 아프도록 어려운 게 아니다. 모든 것이 명료해 숨길 것이 없다.”(至道無難… 洞然明自) 거기에 도오겐(道元)도 한마디 붙이리라. “진리를 배운다는 건 자기를 배우는 것이고, 자기를 배우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법학자에게 우리는 무(無)와 공(空)이라는 낱말까지 요구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러끌레르끄는 단순과 느림, 무지를 통해 어디로 나아가려고 했던 것일까?

세 번째 글, 무보수의 찬양에 이르러 그는 “모든 것의 귀착점은 아름다움입니다. 미(美)는 존재의 광채입니다. 진(眞)에도, 선(善)에도 미(美)는 있습니다”라고 주창한다.

“사람들은 계산을 합니다. 그러나 삶의 아름다움은 계산하지 않는 순간에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소용되는 모든 것들은 참말로 아무데도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유용한 것은 씁쓸한 맛을 남기는데 까닭은 그것이 다른 것에 이를 때에만 유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에 소용됩니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어디에 씁니까? 양심을 가진다는 것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평화를 갖는다는 건 어디에 쓰며 행복하다는 건 또 어디에?…”

하나님은 찬란할 정도로 무용하신 분

나의 오류를 인정해야겠다. 이것이 무(無)가 아니고 이것이 공(空)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그렇구나, 스승께서 이르시던 말, “텅 비어 있음… 내게는 고요하고 다른 이에게는 아름답습니다.” 바로 그거였구나!

러끌레르끄는 그리고 나서 한 번 더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하나님은 찬란할 정도로 무용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처음이시고, 그분은 당신 뒤에 당신이 섬길 만한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에도 유용할 수 없는 분입니다. 무엇 때문에 세상을 창조하셨는가요?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분은 홀로 처음이시며, 그분을 앞서는 것은 없으며, 목적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분 앞에 도달해야 할 목적으로서 나타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그분 없이 설명되지 않을 것이나 세상을 설명하는 데 소용이 되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자 이르시기를 “…마구 두루 섞여서 두루뭉실한 물건이 있는데 하늘과 땅이 생겨나기 전부터 있어 고요하고 쓸쓸하다.… 천하만물의 어머니라.… 비어 있음을 철저히 뚫어보고 고요함을 착실하게 지키면 만물이 함께 번성하되 나는 그 돌아감을 본다. 뿌리로 돌아옴을 일컬어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함을 일컬어 존재의 운명으로 돌아감이라 하고 존재의 운명으로 돌아감을 일컬어 실재라 하고, 실재를 아는 것을 일컬어 깨달은 밝음이라 한다….”

러끌레르끄는 그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쟈끄 러끌레르끄의 두 책은 자그마한 소책자여서 보통 책으로 치자면 두 권을 다 합쳐 50쪽 분량이다. 그에게 어울리는 분량이라고나 할까. 책에 담긴 삶의 통찰과 경륜으로 그는 말년에 작은 오두막 한 채를 지었다. 그 집에 처음 들어가던 날의 신기함과 청량함을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첫 번째 책 말미에 현관문이 있다. 꼭 들어가 보시길

변상욱/기독교방송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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