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심 2019. 11. 7. 08:1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06)


생각하지 못한 위로


드물게 뵙고 이따금씩 통화를 하는 한 지인이 있다. 내게는 삶의 스승과 같은 분이다. 지난번 통화를 하다가 잠깐 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이 모르는 책이었다. 누구보다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분, 마틴 슐레스케가 쓴 <가문비나무의 노래>와 <바이올린과 순례자>를 보내드리기로 했다. 

 

통화를 마치고 인터넷으로 책 주문을 하는데, 그만 막히고 말았다. 내가 책을 받아 다시 보내는 것보다는 그분의 주소로 직접 보내드리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런 주문은 안 해 본 일이었다. 별 것 아니었을 텐데도 나는 막히고 말았다. 그만큼 컴퓨터와 친하질 못한 탓이었다. 누군가에게 물어서 다시 해야지 했는데,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두어 주가 지난 뒤 지인이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동안 여행을 다녀왔는데, 와보니 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분이 사는 아파트에서는 택배가 오면 한 곳에 모아두고 각자가 와서 찾아가는데, 혹시 보낸 책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전화를 받으면서야 책을 보내지 못한 일이 떠올랐다.


“죄송해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송구한 마음을 전하자 아니라며, 혹시나 싶어 전화를 했는데 하지 말 걸 그랬다며 오히려 미안해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재미있었다.

 

“한 목사님도 그럴 때가 있군요. 하긴 환갑이 지나니 그럴 때도 되었어요. 한 목사님도 그러는 걸 보니 적잖이 위로가 되네요.”


위로만 드릴 수는 없어 다시 주문을 했다. 물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책을 받으시고 고맙다고 다시 전화를 하셨으니, 때론 망각도 망외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