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0. 7. 3. 06:23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25)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25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태수난곡 247~48

음악듣기 : https://youtu.be/fhyQq8R1lr0

47(38)

기도

알토 아리아

나의 하나님이여,

나 이렇게 눈물 흘리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를 보시옵소서!

당신 앞에서 슬피 우는

나의 마음과 나의 눈동자를 보시옵소서!

Erbarme dich Mein Gott,

um meiner Zähren willen;

Schaue hier,

Herz und Auge weint

vor dir Bitterlich.

48(39)

코멘트

코랄

나도 그와 같이 당신으로부터 떠났다가

이렇게 당신 앞에 돌아왔습니다

두려움과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

당신의 아들이 우리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나의 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은혜와 자비는

지금 고백하는 나의 죄보다 큽니다.

Bin ich gleich von dir gewichen,

StelI' ich mich doch wieder ein,

Hat uns doch dein Sohn verglichen

Durch sein' Angst und Todespein.

Ich verleugne nicht die Schuld,

Aber deine Gnad' und Huld

Ist viel größer als die Sünde,

die ich hier bei mir empfinde.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야바의 집 밖으로 뛰쳐나와 통곡하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을 때 그 장면에 오버랩 되듯 구슬픈 바이올린 소리가 시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Erbarme dich Mein Gott/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선 관람객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넓은 곳을 다니기 위해 안내도를 받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해설이 실려 있는 이어폰 기기를 빌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작품 앞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해설이 들려오는 매우 편리하고 유용한 기기입니다. 그 두 가지 도구를 길벗삼아 수많은 작품들을 만나고 해설을 듣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모나리자와 마주하게 됩니다. 모나리자 앞에선 관람객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무엇일까요? 손에 들고 있던 안내도를 가지런히 내리고 작품 해설을 듣기 위해 그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빼는 것입니다.

 

음악에서 모나리자에 비견될 만한 이 아름다운 노래를 앞에 두고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이 노래를 만나시기까지의 여정은 잠시 잊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사족이 되어 버릴 설명일랑은 잠시 접어두고자 합니다. 우선은, 듣고 또 듣고, 울고 또 울라는 말 밖에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세 가지 노래

 

이 곡을 감상하실 때 세 가지 연주를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매 시간 감상하고 있는 칼 리히터의 1958년 녹음에 들어 있는 헤르타 퇴퍼의 노래입니다. 이 음반은 뮌헨의 중심에 있는 헤라클레스 홀(Herkules-Saal)에서 녹음되었는데 헤르타 퇴퍼(Hertha Töpper, 1924~2020)는 당시 뮌헨을 대표하는 알토파트 오페라 가수였습니다. 그녀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뮌헨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올해 3, 아흔 여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뮌헨에서 사망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 드렸듯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마태수난곡의 흐름 가운데에서 듣는 것이 가장 감동적입니다. 마태수난곡에서 베드로의 눈물 장면에 이어지는 기도로서 들을 때 이 노래를 가장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음반의 에반겔리스트인 에른스트 헤플리거의 절창과 연결시켜서 들을 때 그 감동은 배가됩니다. 이 글 처음에 있는 표의 음악듣기링크를 누르시면 헤르타 퇴퍼의 노래와 연결이 되는데 이번 시간에는 특별히 에반겔리스트의 내러티브부터 들으실 수 있도록 편집하였습니다.

 

두 번째 연주는 원전연주 음반에서 골라봤습니다.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한 1988년 음반에서 이 노래를 부른 안네 소피 폰 오터(Anne Sofie von Otter)는 탄탄한 발성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절제된 눈물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가디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 중의 한 명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구입한 바흐 음반도 그의 연주였습니다. 그는 음악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지휘자입니다. 그가 지휘하는 음악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번뜩이는 그만의 감각과 선율적인 아름다움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음악이나 르네상스 음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다만 바흐 연주에 있어서는 신앙적인 표현과 독일음악 특유의 소박한 자연스러움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비교의 대상으로서만 종종 듣곤 합니다. 하지만 독일 출신의 이 시대 최고의 메조소프라노 오터가 지휘자의 멋진 파트너가 되어 독일적 감각과 깊이의 빈자리를 채워줍니다.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English Baroque Soloists)와 이 두 사람의 콜라보레이션은 원전연주 특유의 멜랑콜리를 살리고 너무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현대적 연주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원전 연주는 바흐 당시의 튜닝을 사용하므로 현대 오케스트라 연주 보다 반음 정도 낮게 조율되어 있습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조금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치카토로 지속되어 연주하는 베이스 파트 바소콘티누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템포를 얼마나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끌고 가는지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https://youtu.be/41IAJsKcr5o


세 번째 들으실 연주는 영국의 성악가 캐슬린 페리어의 노래입니다. 이 연주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따로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고백

 

조너선 밀러(Jonathan Miller, 19342019)는 영국의 극작가요 연출가로서 현대 영국의 문화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론자로서 2004BBC의 다큐멘터리 무신론에 대한 기록(The Atheism Tapes)’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언젠가 이 노래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지금 까지 나를 놀라게 하고 가슴 뛰게 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나 그런 일이 일어났었지요. 그러나 매번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습니다. 심지어 다시 만나기 전 마음을 준비하고,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다시 흐느끼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나의 마음을 숨겨 보려 해도 나를 무너뜨리는 작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입니다. 이 노래가 왜 항상 나를 사로잡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이 이야기를 하는 지금도 내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무신론자의 고백이 사뭇 진실 되게 와 닿습니다. 혹자는 마태수난곡을 일컬어 없던 신앙도 생기게 하는 음악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일이 이 시대의 최고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무신론자인 그에게 생긴 것입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절대자의 거룩하심과 완전한 사랑에 압도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비추어진 자신, 인간에 대한 절망을 느낄 때 비로소 시작합니다. 조너선 밀러는 이 노래를 통해서 그 상황을 마주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음만을 강조하거나 이성의 필드에서 그들과 논쟁하는 동안 우리 신앙은 우리 신앙만의 고귀한 사랑과 거룩한 초월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랑 아래에서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울고 있는 베드로처럼 예수의 십자가 사랑과 그에 비춰진 자신의 절망스런 연약함을 깨달을 때 한 인간은 비로소 신앙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현대의 지성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교회는 남은 교인들이라도 붙들고 싶어서인지 반지성적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지켜야 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성인들의 구미를 맞춰 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몰랐던 것,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영혼이 진정 원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현대의 지성인들을 향하여 우리가 던져야 할 메시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예수의 사랑, 그리고 그 앞에서 인간의 한계와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인간이 연결되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 이야기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마태수난곡은 음악이라는 만민 공용의 언어를 가지고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깊이 있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예수의 십자가 수난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 마태수난곡을 들어야 할 이유이며 세상에 알려야 할 이유입니다.

 

 캐슬린 페리어

 

이 노래를 거론할 때는 캐슬린 페리어(Kathleen Ferrier)의 노래로 들어야합니다. 세 번째로 소개해 드리는 연주입니다.

 

1912년 영국에서 태어난 페리어는 원래 전화교환원이었습니다. 오늘날 안드레아 보첼리가 정통 성악가의 계보 밖에서 그 순수하고 깨끗한 음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 시절에는 캐슬린 페리어가 있었고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캐슬린 페리어가 보첼리 보다 더 위대한 성악가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영국 민요로부터 가곡이며 오페라까지 짧은 인생가운데 그녀의 음역에 있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최고의 감동적인 노래도 들려주었다는 것입니다.

 

파트가 완전히 달랐지만 캐슬린 페리어를 마리아 칼라스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캐슬린 페리어는 여러 모로 마리아 칼라스의 대척점에 있는 성악가입니다. 그녀는 강한 카리스마 보다는 부드럽고 편안하지만 누구 보다 깊이 있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칼라스 하면 떠오르는 역할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의 카르멘 역할입니다. 칼라스는 연기력과 관능미 그리고 화려함이 가득한 소프라노였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동경의 대상으로서 역사상 최고의 디바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노래와 무대를 보여 주었습니다. 반면 페리어는 종교 오라토리오나 가곡, 영국 민요 등을 통해서 전쟁을 겪은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칼라스는 일찍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그녀의 마지막 10년을 파리에서 칩거하면서 약물에 의지하며 살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캐슬린 페리어는 비록 암으로 인해 마흔 한 살이라는 절정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음 직전까지 노래를 계속 했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노래들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녹음으로 남긴 노래는 에드먼드 루브라(Edmund Rubbra)가 작곡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였습니다.





페리어는 기교나 화려함보다는 진실한 감동을 주는 성악가였습니다. 그래서 독일어보다 모국어인 영어로 부를 때 훨씬 더 간절하고 감동적으로 들립니다. 페리어는 이 노래를 여러 번 녹음했는데 20세기 최고의 지휘자라고 불리는 카라얀의 지휘 아래 독일어로 부른 버전이 가장 좋은 연주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카라얀이 얼마나 위대한 지휘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태수난곡만큼은 그와 같이 제왕적이고 음악을 통해 자기 영광을 구하는 이들이 함부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닙니다.

 

제가 추천하는 연주는 말콤 써전트가 지휘하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1946년에 녹음한 연주입니다. 2차 대전의 비극과 아픔에 맞물린 역사적인 연주로 종교를 뛰어 넘어 범인류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Have mercy, Lord, on me'라는 영어가사로 녹음한 것입니다. 마태수난곡은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부를 수 없습니다. 바흐가 독일어 가사 하나 하나에 음악의 그림을 입히듯 작곡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곡 만큼은, 게다가 부르는 사람이 캐슬린 페리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꾸밈없이 순수하고 편안한 그녀의 목소리는 이 노래와 가장 잘 어울리며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https://youtu.be/mUeDvVPv8PE

 

더불어 이 녹음에서는 바이올린 솔로를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이 노래는 알토 솔로만의 노래가 아니라 바이올린 솔로와의 이중창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녹음에서 바이올린 오블리가토는 데이비드 맥컬럼이 연주하고 있는데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영국을 대표하는 연주자였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연주 보다 적극적으로 음악에 참여하고 있는데 마치 베드로 곁에서 함께 울어 주며, 알토 곁에서 이 기도를 함께 읊어 내듯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듯한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NCIS’라는 드라마를 아실 것입니다. 그 드라마에 더키라는 법의학자가 나오는데 그 역할을 맡은 배우 이름이 데이비드 맥컬럼이며 바로 이 음반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들입니다.

 

이어지는 코랄은 1642년 요한 리스트가 작사한 유명한 코랄의 5절로서 이 멜로디는 바흐가 그의 교회 칸타타 147번에서 사용했고 그 곡이 독립적으로 인류의 소망이신 예수/Jesus Joy of Man's Desiring’라는 제목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베드로처럼 주님을 배신했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다시 돌아와 회개하고 용서받은 우리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