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0. 8. 21. 07:56

한희철의 얘기마을(61)


땀방울


“빨리 빨리 서둘러! 늦으면 큰일 난단 말이야!”


하루 종일 내린 비가 한밤중까지도 계속되자 숲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점점 불어난 물이 겁나게 흘러 산 아래 마을이 위태로워진 것입니다.

그칠 줄 모르는 장대비에 마을이 곧 물에 잠길 것만 같습니다. 

깨어있던 나무들이 잠든 나무와 풀을 깨웠습니다.


“뿌리로부터 가지 끝까지 양껏 물을 빨아들여! 빈틈일랑 남기지 말고.”


나무마다 풀마다 몸 구석구석 물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좀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숨쉬기초차 어려울 만큼 온몸에 물을 채웠습니다.

한밤이 어렵게 갔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개울물 소리가 요란했을 뿐 마을은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아침 햇살은 거짓말처럼 찬란했습니다.

찬란한 햇살에 숲은 무리지은 반딧불처럼,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잎사귀 끝 영롱하게 맺힌 물방물들, 다들 빗방울이라 했지만 아닙니다.

실은 땀방울입니다.

나무와 풀이 밤새 흘린 땀방울인 것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