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0. 9. 10. 07:00

한희철의 얘기마을(80)


기도하며 일하시라고


아무래도 우리 뒤에 올 목회자는 마음이 모질어야겠다고, 막 전화를 끝낸 내게 아내가 말합니다. 그 뜻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따금씩 교우들은 예배시간을 앞두고 전화를 합니다. 전화의 내용은 거의 같습니다. 일을 나가게 되어 예배를 드리러 갈 수 없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송구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같은 대답을 합니다. 기도하며 일하시라고, 그것 또한 예배라는 대답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무슨 일 있어도 예배 먼저 드리고 하라고, 엄격하질 못합니다.




어쩌면 교우들 눈에 나는 편한 목사일지도 모릅니다. 원칙보다는 형편을 우선적으로 여기는 듯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 또한 쉬운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슴 깊이 묻어둔, 끝내 양보할 수 없는 한 ‘마음’을 언젠가 교우들이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내 모른다 해도 좋고요.


정말 다음 번 목회자는 모질고 원칙적인 이가 적격일까. 떠남을 생각한 건 아니면서도 다음 목회자를 생각해 봅니다.


-<얘기마을>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