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0. 10. 26. 06:35

신동숙의 글밭(257)


알찬 온기




혼자 앉은 방

어떻게 알았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숨죽여 

맑은 콧물을 훌쩍이고 있는 것을


누군가 속사정을 

귀띔이라도 해주었을까


있으면 먹고 없으면 

저녁밥을 안 먹기로 한 것을


들릴 듯 말 듯 

어렵사리 문 두드리는 소리에

마스크를 쓴 후 방문을 여니


방이 춥지는 않냐며 

내미시는 종이 가방 속에는

노랗게 환한 귤이 수북하다


작동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놓아주시는 난로에 빨간불이 켜지고

방 안에 온기가 감돈다


가을 햇살처럼

알찬 온기에


시간을 잊고서 

밤 늦도록


<무지의 구름>과 <신심명(信心銘)>의 허공 사이를

유유자적(悠悠自適) 헤매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