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1. 1. 9. 06:10

한희철의 얘기마을(198)


소심함과 완고함



원주 시내에 있는 밝음신협에서 장학생을 선발하는 일이 있었다. 성적과는 관계없이 가정 형편에 따라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를 댄다는 것이었다.


마침 아는 분이 그 일을 권해주어 단강에서도 학생을 추천하기로 했다. 몇 사람과 의논한 후 종하와 완태를 추천하기로 했다. 종하와 완태에게 이야기하고 몇 가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종하가 며칠 후에 서류를 가져온 반면에 완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크게 어려운 서류도 아니고 마감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완태를 만나 채근을 했지만 뭔가 완태는 주저주저 하고 있었다.


“왜 그러니?” 


물었을 때 완태의 대답이 의외였다.


“우리 선생님은요, 되게 무서워요. 말 한 번 잘못 하면 얻어터져요. 지난번 어떤 애는 코피도 터진 걸요.”


서류 중 하나가 담임선생님 추천서였고, 추천서를 받으려면 사정 이야길 해야 하는데 완태는 선생님께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완태 담임선생님 앞으로 편지를 드렸다. 이틀 후 완태는 추천서를 받아왔고 마감 전날인 다음날 원주로 나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말 한 번 잘못하면 얻어 터져 감히 얘기도 못 꺼내야 했던 완태와 완태 선생님, 완태의 소심함도 문제였지만 선생님은 그런 완고함으로 자신의 편함을 지키고 있는 건 혹 아닌지, 개운치 않은 뒷맛이 씁쓸히 남았다. 


-<얘기마을> (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