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김기석의 새로봄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한종호
2021. 2. 4. 14:39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롬 15:13)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별고 없이 다들 잘 지내시는지요? 며칠 동안 제법 날이 추웠습니다. 건물 사이를 휘돌아 나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이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내곤 있지만 그래도 계절은 어김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입춘지절입니다. 24절기상으로는 입춘이 새해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대문이나 주련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여 놓고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빕니다. 미신처럼 보일지 몰라도 각박하고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여러분의 가정마다 기쁜 일이 넘치시기를 빕니다.
이런 풍습은 서양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주현절에도 사람들은 자기 집 현관문에 하얀 분필로 ‘20+C+M+B+21’라고 썼을 겁니다. 앞뒤에 나오는 숫자는 ‘연도’를 나타냅니다. 보통은 약자인 C,M,B가 예수님을 찾아왔던 동방박사의 이름의 첫 글자라고 말합니다. 카스파르(Caspar), 멜키올(Melchior) 발타사(Balthasa)가 그것입니다. 자기 집에 그런 귀한 손님들이 오기를 구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사실 C, M, B는 라틴어 문장인 ‘Christus Mansionem Benedicat’을 축약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여, 이 집을 축복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축원의 말과 동방박사 이야기가 결합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입춘 무렵이면 사람들은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않으면 몸에 귀신이 들어온다며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 등의 자극성 있는 채소를 먹었다고 합니다. 위와 장이 연동작용을 돕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런데 그 오신채가 인의예지신의 다섯 가지 덕목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하는 일은 동서를 막론하고 대개 비슷합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무교병과 더불어 쓴나물을 먹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라는 역사적 기억과 농경문화권의 봄맞이 의식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것입니다. 감염병으로 인해 모든 집합 활동이 제한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속에 잠들어 있던 신명을 깨워야 할 때입니다. 우울과 어둠을 떨쳐버리고 다시금 삶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아직 진짜 봄이 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엊그제 효창공원을 걷다가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터진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계절의 봄도 봄이려니와 우리는 역사의 봄 또한 기다립니다. 이 맘 때가 되면 늘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이성부 시인의 ‘봄’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봄’ 부분)
절창입니다. 봄은 꼭 산뜻한 바람과 함께 오는 것은 아닙니다. 봄은 ‘뻘밭 구석’이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느라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에 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봄조차 해찰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봄은 기어코 옵니다. 기다림에 지쳤던 사람들은 봄과 만나는 순간 두 팔을 벌려 껴안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시인은 봄을 의인화하여 말합니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역사의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진창 같은 세상과 맞서 싸운 사람들을 통해 온다는 것입니다. 이 시를 암송하며 가슴 설렜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