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요란한 것과 조용한 것
한종호
2021. 2. 12. 08:18
“이따가 밥 잡수러 오세유!”
아침 일찍 교회 마당을 쓸다가 일 나가던 이필로 속장님을 만났더니 오늘 당근 가는 일을 한다며 점심을 함께 먹자고 청합니다. 봄이 온 단강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는 농사일은 당근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단강의 특산물이기도 한 당근 씨를 강가 기름지고 너른 밭에 뿌림으로 한해 농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일을 마치고 강가 밭으로 나갔습니다. 유유히 흘러가는 남한강이 가깝게 내다보이는 강가 밭,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와 씨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일일이 발로 밟아 씨 뿌릴 골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 불과 이삼년 전 일인데, 이제는 트랙터가 골을 만들며 밭을 갈아 일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앞사람이 씨를 뿌리고 나가면 뒷사람이 손으로 흙을 덮어나가야 했는데, 이제는 빗자루로 그 일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흙을 살짝만 덮으면 되는 일이기에 오히려 빗자루가 더 잘 어울린다 싶었습니다.
한해 두해 계속되는 농사일에 나름대로 요령이 생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요령은 빗자루질만이 아니어서 당근 씨에다 밀가루를 섞어 뿌리는 비법으로도 나타났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당근 씨, 어느 핸가 병억이네가 당근을 갈 때 씨를 뿌린 줄 알고 골을 덮었는데 나중에 보니 싹이 하나도 안 난 곳이 제법인 일이 있었습니다. 당근 씨에다 밀가루를 섞는 것은 씨를 어디까지 뿌렸는지를 구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단순한 일이지만 농사짓는 이들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