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김기석의 새로봄
하나님 나라의 씨앗으로 산다는 것
한종호
2021. 3. 20. 16:13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슥10:9) 기독교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뜻에 따라 뿔뿔이 흩어져서, 마치 씨앗처럼 ‘땅의 모든 나라 중에’ 뿌려져 있는 것입니다.(신 28:25). 이것은 그들에게 저주인 동시에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머나먼 나라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것은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씨앗으로 존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디트리히 본회퍼, <성도의 공동생활>,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p.22)
주님의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미세먼지가 우리 마음을 어둡게 만들지만, 봄기운이 완연한 나날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건강에 유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 생긴 대형 백화점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공원이나 카페에도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감염병에 대한 경계심이 어지간히 느슨해진 것 같습니다. 행여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 무서워 가급적이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만나면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요즘 들어 시인 황동규 선생님의 <오늘 하루만이라도>라는 시집을 곁에 두고 한 편 두 편씩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연세가 80이 넘어서 쓰신 시인지라 관념적이지도 않고, 표현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고, 깨달음을 나누어주겠다는 은밀한 의도도 보이지 않아 아주 담백합니다. 쇠약해지는 몸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연세이기 때문일 겁니다. 수영을 배울 때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겨야 몸이 떠오르듯이 시간의 강물에 몸을 맡긴 이의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시인은 자기 몸의 변화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그것을 시적으로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꽃잎 괜히 건드릴까 조심하는 바람처럼
가파른 언덕을 촛불 안 꺼뜨리듯 조심조심 내려와
맨땅에서 넘어졌다.”
(‘맨땅’ 부분)
언덕길을 팔랑팔랑 가볍게 뛰어 내려가는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아, 저 생명 덩어리’라는 말이 목에 차오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매사가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 ‘꽃잎 괜히 건드릴까 조심하는 바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 산수(傘壽, 80세를 이르는 말)를 넘긴 분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기탁하는 데는 그만한 이미지가 또 없을 것 같습니다. 스쳐가는 바람에 그만 촛불이 꺼질까 싶어 조심조심 걷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 평탄한 곳에 이르렀다 싶은 순간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방심하다가 허를 찔리는 느낌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