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1. 3. 20. 16:15

  

인적 끊겨 길마저 끊겨가는 
윗작실서 안골로 넘어가는 옛길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단옷날 그네가 걸려 
어릴 적 시간으로 단숨에 들게 하던 
근심과 걱정 그나마 털던 
품 넓고 장한 느티나무 위로 
바람과 볕 잔잔한 안골이 있는데 
안골 한복판엔 감나무가 섰다. 

 


가을이면 하늘을 다 덮을 만큼 감이 열리고 
고추잠자리 붉은 노을 부러움을 살만큼 
붉은 감이 눈부신 나무다. 

 


어느 날 여든이 넘은 이한조 할아버지
지게 위에 달랑 낫 하나 걸고 
불편한 걸음 지게막대 의지해 안골로 건너와선 
지난겨울 둘러준 
감나무 밑동 메밀짚을 걷어낸다. 


얼지 말라고 
장난꾸러기 손주 내복 입히듯 둘러준 메밀짚 
짚을 걷어 바닥에 깔고 
서너 번 나무 밑동 쓰다듬곤 돌아선다.


봄이다.

-<얘기마을>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