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김기석의 새로봄
사건을 일으키는 만남
한종호
2021. 4. 9. 06:26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고후 13:11)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부활절을 지나면서 마치 오래 입은 상복을 벗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별되게 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삼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순절 기간 동안 저를 사로잡았기 때문일 겁니다. 시편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입고 있는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신다고(시 30:11) 고백하지만, 아직 기쁨의 나들이옷은 준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청명하더니 또 다시 미세먼지가 우리 시야를 가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명자나무 붉은꽃은 찬란하고 복사꽃은 화사합니다. 자주괴불주머니와 광대나물, 냉이꽃과 제비꽃도 저마다의 자태를 자랑합니다.
제게는 이 봄이 조금은 특별합니다. 지난 4월 5일은 제가 청파교회의 인연을 맺은 지 만 4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방황하고 있던 3월의 어느 날, 몇 년째 함께 조그마한 교회에서 동역하고 있던 목사님께서 함께 갈 데가 있다며 나를 데리고 온 곳이 바로 청파교회였습니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풍채가 당당한 목사님이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우리를 맞아주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박정오 목사님이셨습니다. 사실 나는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선배 목사님께 인사를 여쭙는 자리에 저를 데려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분 목사님께서 한 동안 농담조의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한참 후에 생각났다는 듯이 박 목사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김 전도사, 잘 왔어.”
최초로 들은 전도사라는 호칭입니다. 그 호칭이 매우 낯설게 들렸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김선생’으로 불리웠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 다니면서도 목회를 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목사님으로부터 ‘전도사’로 불리고 나니 뭔가 덫에 걸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목사님은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내 목회는 말이야, 방목이야. 나는 울타리를 좁게 쳐서 양들이 옴짝달싹 못하게 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야. 사람들이 울타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게 하고 싶어. 그러니 김 전도사도 사람들을 동원할 생각하지 말아.”
그제서야 저는 제가 이 교회에 전도사로 초빙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이건 제 의지와는 거의 무관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나중에 저는 그 목사님이 나를 청파교회에 팔아 넘겼다고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인생이란 스스로 길을 선택할 때도 있지만, 길에 의해 선택될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 일 때문일 겁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저에게 목사님은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김 전도사, 내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일해. 그러다가 나와 생각과 지향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거든 깨끗하게 떠나.”
이 말이 제게는 아주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속으로 ‘그렇지, 내가 뭐 누구 눈치나 보고 살 사람은 아니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유보 없이 유쾌하고 호탕한 박 목사님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날이 어쩌면 제게는 운명과도 같은 날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그날이 제 운명의 지침이 바뀐 날입니다. 잠시 떠나 있을 때도 있었지만 저는 그날 이후 전도사로, 소속 목사로, 부목사로, 담임목사로 40년을 청파교회에 몸을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고, 많은 분들을 떠나보냈습니다. 많이 사랑받았습니다. 박 목사님은 맑고 깨끗하고 당당한 삶과 큰 울림이 있는 메시지로 제게 목회자의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교우들은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저를 늘 넉넉한 사랑으로 감싸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저를 목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한 구심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시간이 우리 속에 새겨놓은 흔적 혹은 무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났던 많은 이들이 조형의 칼날이 되어 나의 인격과 태도와 믿음을 형성했다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돌아보면 감사할 것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부력(浮力)을 신뢰하는 것이라는 마커스 보그의 말을 좋아합니다. 믿음은 나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에 몸을 맡기면 물이 두둥실 우리 몸을 떠받쳐 주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돌보십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던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쓰시는 부력의 도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