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우리집 복순이가 무서운 쿠팡맨
한종호
2021. 5. 12. 06:39
우리집 대문에는 열쇠가 없다. 대신 못 쓰는 비닐 포장지를 꼬깃꼬깃 접어서 문틈에 끼워두면, 아무렴 태풍이라 해도 대문을 덜렁 열지 못한다.
바로 옆집과 앞집에는 cctv까지 설치해 두고서 대문을 꽁꽁 걸어 잠궈두고 있지만, 우리집 마당에는 낯선 낌새만 채도 복순이와 탄이가 골목이 떠나가라 시끄럽게도 집을 지킨다. 이 점이 이웃들에겐 내내 미안한 마음이지만, 다들 별 말씀은 안 하신다.
대문을 열쇠로 잠그지 않는 이유는 배송 기사님들이 다녀가시기 때문이다. 부재시 따로 맡길 장소가 없다 보니, 예전엔 담을 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대문을 열쇠로 잠그지 않고, 그 옛날집들처럼 엉성한 잠금 장치를 둔 것이 비에 젖어도 괜찮은 비닐 포장지인 셈이다.
기사님들은 그냥 대문을 살째기 밀고서 들어오시면 된다. 그리고 나가실 때, 본래대로 꼬깃한 비닐을 문틈 사이에 끼워두시는 것도 다들 잊지 않으신다.
전날에 쌀독에 쌀이 떨어져 옹기 항아리 밑바닥이 보이길래, 남편에게 전달을 하니 온라인으로 쌀 주문을 해놓은 것이다. 바보 같지만 나는 이적지 온라인 주문을 할 줄을 모른다.
배송 기사님은 개가 하도 짖어서 대문 안에 못 들어간다는 전화 한 통 남기시곤, 쌀 20kg을 대문 안이 아닌, 대문 밖에 세워두고서 사라지셨다고 한다. 그렇게 밤까지 쌀자루가 든 택배 박스는 대문을 막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골목길 가로등 불빛에 어슴푸레 비춰보아도, 종이 박스를 포장한 모서리들이 영 엉성한 것이, 곳곳에 테이프가 벌어져 있길래 살짝 벌려서 보니, 바닥에 고꾸라져 있던 쌀가마 입구 한쪽이 터져 있고, 하얀 쌀알이 쏟겨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 마침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혹시 택배 박스를 열어보았더냐고 물으니 손도 안댔다고 한다. 그런데 낮에 집 안에 있으면서, 택배 기사님이 다녀가시는 것도 보았고, 참새들이 모여드는 것도 다 보았다고 한다.
놀란 가슴에 혹시 참새가 박스 틈새로 들어갔더냐고 물으니, 그냥 박스 밖에만 모여있더란다. 그래서 "그 참새들 참 영리하네!" 했다. 보이지도 않는 그 박스 속에 쌀알이 있었던 걸 어떻게 알았을까. 사람보다 신통하기도 하다며. 자연에는 여전히 인간의 의식이 닿지 않은 신비의 영역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저녁 바람처럼 가슴께를 스치니 겸손한 마음이 인다.
순간 배송장을 확인하고 배송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볼까도 했지만, 쌀가마 입구가 터지거나 말거나, 쌀이 쏟겨진 곳은 그나마 박스 안이니까, 쌀에 참새나 쥐만 다녀가지 않았으면 다행이란 생각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