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한국은 섬나라가 아닌, 대륙과 하늘의 나라다
한종호
2021. 6. 2. 06:58
해외 여행이라 하면 비행기가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코로나 비상시기로 출입국이 엄격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하늘길이 아니고선, 지구상의 그 어느 다른 나라든 갈 수 없는, 땅의 길이 막힌 처지가 현재 한국의 입장인 셈이다.
세삼스레 이런 현실을 떠올리다 보면 가슴 한 구석이 갑갑해진다. 마치 지구촌의 대륙으로부터 한국이라는 나라가 뚝 떨어져 섬처럼 고립된 것 같아서 스스로의 입지를 돌아보게 된다.
마치 일본처럼 섬나라가 된 한국은 아닌지. 그래서 국민들의 정서까지도 섬나라의 폐쇄성을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를 내려놓지 못할 때가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구한말 한국이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겪으며, 광복 직후 열강들이 이 땅에서 일으킨 6·25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나라가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당장에 주린 배부터 채우느라 급속한 경제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한국이 한반도의 반토막 짜리 좁다란 땅에서 정신없이 몸부림 치는 동안, 섬나라의 고립된 정서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주된 원인이 주변국들의 이득권으로 갈라놓은 한반도의 허리인 휴전선과 청산되지 못한 일제와 친일 잔재들임을 거듭 잊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이 사람이 한반도의 끝자락에 살든 서울에 살 적에도 이런 생각과 마음은 변함이 없는 푸른 하늘과 같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를, 있는 모습 그대로 하늘 거울은 언제나 유유히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해처럼 떠올려 본다. 맑고 시리도록 투명한 역사의 거울은 가리워진 적이 없다.
땅에는 땅따먹기 놀이라는 것이 있지만, 하늘에는 하늘따먹기 놀이란 것이 없다. 하늘따먹기 놀이란 것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놀이가 되었던 적은 아마도 유사 이래로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엉뚱한 한 생각을 일으킨 필자가 스스로 우습기도하다. 나는 땅에서 길을 잃거나 내가 설 땅 한 켠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끝이 보이지도 않는 하늘 끝자락까지 바라보려 애쓰던 무거운 한 마음까지도 이제는 내려놓으며,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 돌이켜 내면으로 향한다. 그러면 내 안으로 그와 같은 무한의 하늘이 펼쳐진다. 우리들 머리 위에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든지 언제나 우리가 선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느님은 하늘을 펼쳐놓으셨다. 끊임없이 펼쳐진 이 크고 밝은 하늘이 우리들 머리 위에 늘 있어서 우리를 내면의 하늘로 인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정신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고 한다. 뿌리가 썩은 나무는 세월의 풍파를 거치면서, 탁하게 말라가는 어느 한쪽 가지는 잘려나가기도 하고, 또 맑은 수액이 흐르는 가지에선 새순이 돋아나기도 하는 것이 나무의 일생인 자연의 이치라는 법정스님의 법문이 별처럼 빛난다.
일제강점기 때 <성서조선>에 실린, 김교신 선생의 '조와(弔蛙)'라는 글 속의 문장에서처럼 '얼어 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전멸은 면했던 것처럼,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말살정책과 열강들의 이권으로 인한 6·25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잔재와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던 친미제국주의의 물질만능주의의 악영향으로 인해, 단군의 한민족 정신의 뿌리가 썩었다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그래도 이렇게 다 썩은 것은 아닌 것이다.
한국은 섬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그 뿌리로부터 대륙의 나라이자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 민족인 것이다. 지리상으로 남한의 중심이 되는 황간역 2층 마실 카페 벽에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 그림이 있다. 지금은 은퇴하신 강병규 역장님의 부연 설명이 잊혀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 베를린에서 열린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의 여정이다. 손기정 선수는 양정고보 시절 김교신 선생의 제자이기도 하다. 담임선생님이기도 했던 그는 직접 자전거를 타며 손기정 선수를 훈련시켰고, 동경 예선전까지 따라가서 그를 코치했었다고 전한다.
황간역장님의 이야기를 옮기면, 손기정 선수가 일본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역을 경유하여, 독일의 베를린까지 열차표 한 장으로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순간 깨어났다. 한국은 애초에 대륙의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라도 통일의 날이 오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 훌쩍 기차표 한 장을 끊고 기차에 몸을 싣고서, 울산을 출발해서 서울과 평양을 거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서 만주와 울란바토르 대평원을 지나며, 끊임없이 펼쳐지는 대륙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헤아리다가 잠이 들고, 또 북인도를 경유해서 윤동주 시인이 사랑한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고향까지도 갈 수 있는 입장에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셈이다.
스무 살 중반에 인도 전역을 6개월간 둘러본 적이 있다. 뭄바이에 내려서 방갈로르, 뿌네, 첸나이, 캘커타, 비하르, 델리, 리쉬케쉬, 티벳의 임시정부 다람살라까지. 그냥 잠시 스치듯 어느 마을을 지나치기도 하고, 마음이 머무는 곳에선 방을 빌려서 한 달여간 머물기도 하면서, 요가 아쉬람과 요가 센터 등지에서 명상과 아사나 수행을 익히던 시절, 그때는 한치의 앞날도 알 수가 없는 마치 망망대해 망망대천을 표류하던 시절, 잠시 머물고 떠남을 반복하며 길 위에 선 나그네처럼, 가슴으로 마른 모래바람이 지나가던 순례길을, 암흑 속에서 언뜻 보이는 별빛을 따라서 걷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그렇게 떠돌며 책과 수련 경험을 통해서 여러 구루들을 알게 되었지만, 가슴에 남아 있는 한 분은 라마나 마하리쉬다. 그는 언제나 한 장소에서 오래 앉아 있으면서 깊이 내면으로 들어간 수행자다. 언제나 떠올리면 떠오르는 그의 평온하고 인자한 얼굴과 눈빛이 평온을 준다.
인도의 대륙은 외국인에 대해서 관대한 곳이었다. 지금은 무방비 상태로 덥쳐 오는 코로나 사태에 힘겨워하고 있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많이 애처롭다. 게중에 최근 본 고마운 뉴스가 북인도의 하이데라바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시바라는 한 남학생이 코로나19확진 판정을 받은 후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이 좁아서 스스로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자가격리를 하였다는 소식이다. 인도인들의 의식이 하늘로 그리고 우주로 열려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한 모습이다.
오래전 인도 곳곳에서 만난 그들은 참으로 순박한 사람들로 추억한다. 각지를 순례하면서 만났던 인도 사람들과 유럽인들과 미국인 또 우리와 같은 한국인 여행자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다들 만남의 첫인사로 먼저 나오는 질문이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이었다.
"한국"이라고 대답을 하면, 곧장 되돌아오는 대답이 "북한? 남한?"이라는 또 한 번의 질문이었다. 처음엔 그러한 질문 자체가 어색했지만, 그렇게 물어보는 외국인이 어디 한 두 명이어야지. 그러면서 우리가 속한 나라 한국의 처지를 다시금 재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미있었던 건,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부터 주입되다시피한, 한국인들이 그렇게도 동경하는 미국에서 온 어느 미국인의 태도였다. 한국, 독일, 이탈리아, 이란 등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은 리쉬케쉬의 어느 식당 테라스에서 서로 나누었던 인삿말이 지금까지 화두가 되기도 한다.
다들 자기의 출신 나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미국인 샘의 차례가 되었을 때, "I'm sorry, I'm American." 그러면서 정말로 샘은 자신이 미국인인 것을, 우리가 세뇌되었던 것처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아닌,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꽁지머리의 샘은 리쉬케쉬의 요가 아쉬람에 숙소를 정하고서 그곳에서 장기간 머물며 생활하고 있던 미국인, 그의 인삿말이 내내 가슴에 남는다. 그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때부터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이 열린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