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1. 6. 8. 07:05
사진/김승범
작실 마을 올라가는 길 쪽으로 등을 하나 달았습니다.
집 지을 때 부탁해서 사택 옥상에 등을 달았습니다.
밤이면 등을 켭니다.
둥근 달이 걸리면 그런대로 걸을 만하지만 달이 없으면 길도 없습니다.
더듬더듬 발걸음이 더디고 산을 끼고 도는 길, 오싹 오싹 합니다.
사랑의 빛 되었음 싶은 마음으로 불을 켭니다.
작실로 오르는 길, 밤이면 불을 켭니다.
그러나 가끔씩 실수를 합니다.
불을 켜는 걸 잊기도 하고 끄는 걸 잊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가르쳐 줘 날 밝은 한참 뒤 뒤늦게 끄기도 합니다.
사람 발길 끊긴 빈 길을 밤새워 밝힌 걸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날 밝도록 켜져 있던 불을 뒤늦게 끄며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속 그 어느 곳에도 뜻도 없이 켜져 있는 불은 없는 것일까, 때 지난 마음 접지 못하고 무심히 계속되는 미련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뒤늦게 끈 불 덕분에 마음 한 번 돌아봅니다.
-<얘기마을>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