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
스스로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하여
한종호
2021. 7. 29. 10:34
“주님, 제가 아직 짓지 않은 많은 죄에서 저를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저지른 모든 죄를 슬퍼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 그들이 저의 친구이든지 적이든지, 그들을 만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들 모두가 결국 제 친구로 되기를 기도합니다.”(Margery Kempe, 1373-1440)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무더위를 잘 견디고 계시는지요? 날이 얼마나 더운지 모기들도 활동을 쉬고 있다지요? 물것을 많이 타는 분들에게는 이 여름이 주는 작은 위안인 것 같습니다. 낮에는 차마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아 이른 새벽에 공원을 걷고 있습니다. 걷는 시간은 기도의 시간인 동시에 얼크러진 생각의 타래를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한낮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동시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누리고 사는 것들이 실은 다른 누군가의 수고의 결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하계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올림픽은 편안한 거실에서 즐기는 소일거리이지만,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그날만을 학수고대했던 선수들에게는 수확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메달을 따든 따지 못하든 일단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모든 선수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많다고 합니다. 관중들의 박수소리를 듣지 못하며 고독한 싸움을 하는 이들을 크게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단련된 몸이 그리고 고도로 집중된 정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표지들입니다. 나이가 이미 전성기를 지난 장년의 선수들도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운동 경기도 즐기지만, 그들이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에 더 크게 반응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말 그대로 평화의 제전이었습니다. 올림픽이 열리면 전쟁도 중단하고,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적대적인 국가를 통과할 때도 그 안전이 보장되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올림피아 제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르테미시온 해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나고 식량도 바닥을 드러내자, 소수의 (그리스)아르카디아인들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페르시아 진영으로 탈주를 감행했습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군의 행동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그들을 신문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리스군이 올림피아제전을 벌이면서 체육 경기와 전차 경주를 관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경기의 상품이 무엇이냐고 묻자 탈주자들은 승리자들에게는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이 수여된다고 답했습니다. 상품으로 금품이 아닌 화환이 수여된다는 말을 듣은 트리탄타이크메스는 탄식하듯 말했습니다.
“아 마르노니오스여,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필이면 이런 인간들과 싸우게 만들었는가? 금품이 아닌 명예를 걸고 경기를 행하는 자들과!”(헤로도토스, <역사 下>, 박광순 옮김, 범우사, p.305)
물론 이 기록은 페르시아의 전제정치와 그리스의 자유 정신을 대조하기 위한 헤로도토스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물질적인 보상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그리스 정신임을 자부심을 담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객관적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사에 대한 기록자인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후대의 사람들의 DNA 속에 그런 도도한 자유혼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