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가장 신나는 게 아무래도 아이들과 개들이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동네 개들은 개들대로 모여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등허리에 옷 하나 걸치곤 질금질금 되새김질하며 한가로이 쉬고 있는 소나 그 옆 송아지에게 장난을 걸기도 한다. 껌벅이는 소의 큰 눈에도 내리는 눈이 가득하다.
아이들을 가장 아이답게 하는 것도 눈이다. 대번 마음이 열리고 열린 마음엔 날개가 달린다. 날리는 눈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들, 여기 저기 자기 키만 한 눈사람이 세워지고, 툭툭 던지기 시작한 눈뭉치가 어느새 편싸움이 된다. 하하하, 하얀 입김, 하얀 웃음들, 온통 하얀 세상이 된다.
토끼 발자국을 쫒아 올무를 놓기도 하고 틈틈이 올무를 확인하곤 한다. 성급하면 안 되지, 성급하면 안 돼, 빈 올무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이르고는 한다.
낙엽송 곧게 솟아오른 앞개울 건너 담안 골짜기, 사과 과수원 뒤편 백수네 담배 밭 바로 옆, 백수 네가 돌봐온 산소자리 언덕, 참 잔디 고운 곳. 눈이 오면 그곳은 천연 스키장이 된다. 비료 부대 위에 주저앉아 언덕 꼭대기부터 신나게 달려 내려오기도 하고, 내려오다 넘어지면 신나게 언덕을 구르고, 그렇게 눈사람 되고, 혼자서도 타고 앞자리에 동생도 태우기도 하고, 오줌 싼 듯 모두의 엉덩이는 펑퍼짐히 젖어들고.
막걸리 빈병이나 플라스틱 소주병 또한 아이들의 스키 도구. 양쪽 발을 하나씩 올리고 앞으로 향하면 왜 그리 속도가 빠른지. 어, 어, 어, 어 대다 중심을 잃고.
종설아, 종하야, 정희야, 밥 먹어라. 골짜기 울리며 엄마, 할머니 불러대는 소리에 아쉬운 듯 집으로 향하면 집마다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들.
곱은 손을 불어 녹여 저녁을 먹고 쓰러지듯 잠이 들면 하얀 꿈은 밤새 하얗게 이어지고 다음날도 하얀 세상, 아이들과 개들은 다음날도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