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1. 8. 31. 08:58

 

그림 : 강병규 화가




우리집 부엌에는 
늘 빈 곳이 있다

씻은 그릇을 쌓아 두던
건조대가 그곳이다

바라보는 마음을 말끔하게도
무겁게 누르기도 하던 그릇 산더미

그곳을 늘 비워두기로 
한 마음을 먹었다

숟가락 하나라도 씻으면 이내
건조대를 본래의 빈 곳으로 

늘 빈 곳 하나가 있으므로 해서
모두가 제자리에 있게 되는 이치라니

이 세상에도 그런 곳이 있던가
눈앞으로 가장 먼저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은 늘 빈 곳으로
이 세상을 있게 하는 듯

구름이 모여 뭉치면 
비를 내려 자신을 비우듯

바람은 쉼없이 불어 
똑같은 채움이 없듯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던가
가슴에 빈탕한 하늘을 지닌 사람

그 고독의 방에서 
침묵의 기도로 스스로를 비움으로

산을 마주하면 산이 되고
하늘을 마주하면 하늘이 되는 기도의 사람

늘 빈 곳에선
떠돌던 고요와 평화의 숨이 머문다

고요와 평화는
숨은 진리와 사랑의 본래면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