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1. 9. 26. 10:42
경주 구미산 용담정 툇마루에 앉으며
먼지처럼 떠돌던 한 점 숨을 모신다
청청 구월의 짙은 산빛으로
초가을 저녁으로 넘어가는 구름으로
숲이 우거진 좁다란 골짝 샘물 소리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수운 최제우님의 숨결로
용담정에 깃든
이 푸른 마음들을 헤아리다가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달을 보며 빌던 정성과 만난다
시천주(侍天主)
가슴에 하느님을 모시는 마음이란
몸종이던 두 명의 여인을
한 사람은 큰며느리 삼으시고
또 한 사람은 수양딸로 삼으신
하늘처럼 공평한 마음을 헤아리다가
용담정 산골짜기도 운수 같은 손님이 싫지 않은지
무료한 마음이 적적히 스며들어 자리를 뜨기 싫은데
흙마당에 홀로 선 백일홍 한 그루
아직 저 혼자서 붉은 빛을 띄어도
마땅히 채울 것 없는
마음 그릇에 모실 만한 것이란
초가을 저녁
없는 하늘 한 줌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