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
밤과 낮의 구별법
한종호
2021. 10. 14. 12:12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요일 4:20-21)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하루하루 기쁘게 살고 계시는지요?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전 5:20)고 말하지만, 우리는 마치 근심 걱정이 우리 소명인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은 메시야가 우리에게 틈입(闖入)하는 문이라지요? 자잘하기 이를 데 없는 일들도 잘 살펴보면 그 속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다만 분주함에 쫓기느라 그 작고 미묘한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은 ‘지금’을 한껏 누리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제는 제법 가을 기운이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서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서늘한 느낌이 들어 무릎 담요를 가져다 덮기도 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가을 날씨가 왜 이리 덥냐고 투덜거렸는데, 이번 주일에는 영상 4도 아래로 내려간다니 건강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올해는 교육관 옆에 있는 대추나무가 해거리를 하는지 열매가 많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대추 수확을 했는데, 나무에서 절반쯤 썩은 것이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이걸 잘 말렸다가 송구영신예배 때 차로 만들어 마실 예정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열매를 거두는 일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며칠 전 성서학당 시청자 한 분이 고향인 부여에 갔다가 주웠다며 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을 목회실 식구들과 나누며 참 기뻤습니다. 밤을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내준 분의 마음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알밤을 줍기도 하고, 밤송이를 발로 밟거나 나뭇가지로 발기면서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흥감스럽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어른들 속에도 아이들이 숨어 있다지요? 가끔은 그 어린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우리 삶이 건강해집니다. 놀이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일 겁니다.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개념을 가지고 인간을 파악했습니다. ‘노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근대인들에게 논다는 말은 부정적인 함의를 지닐 때가 많았습니다. 근면과 성실이 근대인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일만 하며 살 수 없습니다. 놀 줄 알아야 삶이 주는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놀이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발적인 행위입니다. 일상의 경험과 구별되기에 비일상적 행위입니다. 불확실성과 우연성이 일으키는 긴장이 묘한 흥분감을 일으킵니다.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창조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는 어느새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