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1. 11. 2. 07:05


펑펑 싫도록 눈이 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가 솜이불 뒤집어 쓴 듯 조용합니다.


옹기종기 모인 짚가리가 심심한 빈들, 
새들만 신이 났습니다.


온 세상 조용한데 니들만 신났구나, 
빈정거리듯 돌아서다 다시 돌아서 
죄 지은 듯 새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새들은 신이 난 게 아니었습니다. 
흰 눈 속에 파묻혀 사라져버린 먹을거리, 
먹이를 찾아 애가 탔던 겁니다.


늘 그러했을 내 눈, 
쉽게 바라보고 쉽게 판단하고 말았을 지금까지의 눈, 
화들짝 부끄러워 
눈 덮인 빈들, 소란한 새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얘기마을>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