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뒤편엔 작은 동산이 있고, 그 동산엔 제법 굵기도 하고 키도 큰 소나무 몇 그루가 어린 소나무들과 함께 서 있었다. 심심할 때면 우리는 뒷동산에 올라 나무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굵은 가지에 끈을 매달아 그네를 타기도 한다. 두툼한 소나무 껍질을 떼어 낸 후 배 모양으로 깎아 꽁무니 쪽에 송진을 바르면 송진은 이내 무지갯빛으로 퍼지며 배를 앞으로 밀어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언젠가 할머니가 꺾어준 소나무 껍질이다. 할머니는 소나무 가지를 꺾어 조심스레 껍질을 벗겨낸 후 껍질 속의 또 한 껍질을 건네주었다. 먹어보라는 것이었다. 입안으로 확 퍼졌던 송진 냄새, 소나무 껍질을 벗겨 주며 할머니는 당신이 한 평생 겪어온 보릿고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리가 났을 땐 그것도 없어 못 먹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돌아가신 이후로, 기억보다는 사진 속 모습으로 남아있는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가 건네주었던 소나무 껍질은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쉽지 않은 송진내와 함께 할머니 세대가 겪어온 가난과 배고픔이 어떤 것인지를 일러주는 기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