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출간 책 서평
<그리워서, 괜히>를 읽으면서_ 두고 온 그리운 모든 것들
한종호
2021. 12. 10. 08:30
저녁 늦게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포장을 열어 보니, <꽃자리>에서 출판된, 최창남 작가의 유년 회고록 <그리워서, 괜히>다. 책을 읽기 전에, 표지의 책 제목의 생김새가 범상(凡常)치 않아, 표지에 잠시 머문다. 표지 날개를 펼쳐보니, 임종수 화백의 캘리그라피다. 글이라기보다는 한 컷 그림이다
이 책은 저자 최창남 작가가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 2학년 시절까지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살아온 시대가 저자와 부분적으로 겹치는 이들은 최창남의 유년 회고록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만이 아닌, 독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대신해서 말해 주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우리 세대의 우리의 자서전 격인 사회적 전기를 읽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아빠”로 부르지 못했던 세대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한 아버지가 아니었던 것은 저자의 아버지만이 아니다. 자식을 매로 키웠던 것도 그렇다. 그래서 노년의 아버지들이 일찍이 자식들에게 회초리를 거둔 다음부터 자식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곁길로 들어선 자신들의 좌표를 뒤늦게 확인하면서, 자기들의 잘못을 아버지의 회초리 그친 것에 핑계를 대기도 한다.
어머니가 아끼어서 감추어 두고 조금씩 쓰는 설탕을 조금씩 덜어 먹다 들켜 혼난 이야기도, 내가 꿀을 몰래 먹다가 들킨 이야기와 흡사하다. 나의 어머니는 꿀 병을 벽 높은 곳, 천정 밑에 걸어두곤 했다. 드디어 어느 날 나는 밥상을 옮겨놓고, 그 위에 이불과 베개를 겹쌓아, 발꿈치를 한껏 들어 꿀 병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나의 어머니는 꿀을 먹고 취해 혼수상태에 빠진 나를 병원으로 업고 가서 겨우 깨운 적이 있다.
작가는 먹거리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다.
“내 기억 속의 유년 시절은 대체로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불행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행복에 더 가까웠습니다. …사탕을 먹을 수 없었던 시절에는 메뚜기를 잡아먹었습니다. 구워도 먹고, 튀겨도 먹었습니다. 한 번은 왕잠자리의 몸통을 갈라 그 살을 먹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약간의 비린 느낌만 있을 뿐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후로는 왕잠자리의 살을 먹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커다랗고 누런 쌀방개도 튀겨 먹어볼까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맛이 괜찮을 듯하였지만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쌀방개까지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먹을 것도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탕을 사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서도 별로 불행해하지 않았던 것은 메뚜기 등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중글 “잃어버린 이야기”).
작가보다 16년 앞서 이 땅에 와서, 1951년 1.4 후퇴 때 부산 범일동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나는, 부산에서 메뚜기 구경은 못했고, 미군부대 식당에서 수채에 내다버리는 음식을 건져 먹곤했다. 미군군수품을 실은 기차가 하얄리아 캠프 가까운 범일동을 지날 때부터 속력을 줄인다. 그러면, 기다리던 아이들이 앞 다투어 기차 위로 오른다. 기차가 부대 쪽으로 다가가면, 기차가 부대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우르르 뛰어내려 부대 취사장에서 흘러나오는 수채로 달려가, 도랑 양쪽에 힘센 서열대로 엎드려, 두 팔 뻗어 물컹한 액체 속을 휘저어 먹거리를 낚는다. 이빨 한가한 주둥이들이 바쁘게 손을 핥는다. 아, 텅 빈 여물통과 가득 찬 여물통의 이 즐거운 해후(邂逅)라니! 그러나 달리는 기차에서 미처 못 뛰어내린 굼뜬 아이는 이미 기차가 철조망을 지나 부대 안으로 들어선 다음에는 내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부대 안에 잠입한 군수품 도둑으로 몰려 문초를 받고 나서, 구금이 끝나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부대 밖으로 내팽겨진다. 난생처음 영어 문초를 받으며, 통역장교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 아이는, 나중에 커서 통역장교가 되고 싶었는데, 보병장교로 근무하다 예편되었고, 훗날 성경 번역자가 되었다.
작가가 어린 시절에 살던 집과 마당의 구조는, 지역이 전혀 다른 곳에서 살던 우리 집과 마당의 구조와 똑같다.
“다락방은 부엌 위에 있습니다. 다락방 문 아래쪽에는 부엌에서 방으로 물이나 음식을 바로 들일 수 있는 작은 쪽문이 있습니다. 미닫이문입니다. …다락문을 엽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조심스레 밟고 다락방으로 오릅니다.… 다락방 작은 창에서 보는 밖의 모습은... 마당 저쪽 구석에 토끼집, …문 옆에 대추나무”(첫째 이야기, “원승이 똥 구멍은 빨게”).
내가 살던 집 마당에는 이 밖에도 우물이 있었고, 우물 옆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작가가 만난 여성들은 어머니 말고도, 못난 남편에게 구타당하며 사는 이웃집 예쁜 새댁,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보살펴주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여교사, 자기를 귀여워해 주는 멋쟁이 양색시 누나들, 극장 앞에서 같이 좀 데리고 들어가 달라고 애걸하면 엄마인 양 손잡고 함께 데리고 들어가 주는 맘씨 좋은 아줌마들에 대한 그리운 기억을 떠올린다. 휴전 직후의 사회상이다.
작가는 어리광을 한껏 부릴 수 있는 막내아들이었으면서도 아버지와는 사이가 소원(疏遠)했고, 아버지는 그러기에 늘 경원(敬遠)의 대상이었고,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어느 해 장마 때 온통 천지가 물바다가 되었을 때 작가는 아버지의 어깨에 얹혀 이동할 때 느낀 아버지의 힘과 체온을 기억한다(넷째 이야기, “아버지와 장마”).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 간 사이 아버지가 형사들에게 잡혀가 1년 동안 갇혔다가 돌아온 이야기에서 작가는 아버지와의 애틋한 관계를 회고하고 있다(열한째 이야기, “아버지와 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