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모를 심던 날, 할아버지는 잔 수 잊고 낮술 드시곤 벌러덩 방안에 누워 버렸습니다. 훌쩍 훌쩍, 눈물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달랠 수도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모를 심기 훨씬 전부터 할아버진 공공연히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모 심는 날을 일요일로 잡았고, 일부러 기계 모를 마다하고 손 모를 택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일곱 자식들이 며느리며 사위며 손주들을 데리고 한날 모를 내러 오기로 했던 것입니다.
두 노인네만 사는 것이 늘 적적하고 심심했는데 모내기를 이유로 온 가족이 모이게 됐으니 그 기쁨이 웬만하고 그 기다림이 여간 했겠습니까. 기계 빌려 쑥쑥 모 잘 내는 이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저 든든히 논둑을 고치고 모심기 알맞게 물을 담아 놓고선 느긋이 그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런데 모를 심기로 약속한 날, 정말로 모 심으러 들어온 건 둘째딸, 둘째딸네 뿐이었습니다. 모두 온다고, 오겠다고 전화론 그랬는데, 그런 전화 믿고 자랑도 했고 일꾼도 그만큼 적게 맞췄는데 결국 들어온 것은 둘째 딸네뿐이었습니다.
속상한 할아버지 마음, 말 안 해도 알기에 아무도 말릴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 마음 위로하듯 하루해론 벅찬 일을 벅차게 해냈을 뿐입니다.
모심기 전날 밤, 신작로 곳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식들 밤늦도록 기다리며 어둠속 줄담배 피우던 할아버지 모습 본 이는 없었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