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하얀 감기약 한종호 2022. 4. 5. 13:33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아이들의 감기약은 가장 쓴 인생의 쓴맛이었다 봄날에도 기침이 잦았던 나는 약을 먹지 않으려고 목련 꽃봉우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달아나지도 못하고 나뭇가지 끝에 앉은 듯 아빠 다리를 하고서 요지부동 앉아 있으면 아빠는 밥숟가락에 하얀 가루약과 물을 타서 큼지막한 새끼손가락으로 푹 무슨 약속이라도 하시려는 듯 휘휘 가루약이랑 물이 풀풀 날리니까 나중엔 젖가락 끝으로 휘휘 살살 약을 개어서 먼저 맛을 보셨다 아빠는 그 쓴 약을 설탕처럼 쪽쪽 드시며 쩝쩝 소리까지 내시면서 "아, 맛있다! 감탄사까지 타신다 세상이 다 아는 하얀 거짓말까지 하시는데 아빠 얼굴을 아무리 살펴 보아도 구름 한 점 없이 웃기만 하신다 나는 속으로 걱정이 되어서 감기도 안 걸린 아빠가 내 감기약을 드셔도 되는지 사실은 미안한 마음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서 "아" 했다 하얀 목련꽃 같이 하얀 기침처럼 내 입이 달아나느라 남긴 약숟가락을 사방 돌려가며 아빠는 입으로 말끔히 닦아드신다 발우공양 하듯이 약숟가락 아니 밥숟가락이 반짝 아빠 앞머리처럼 빛난다 저작자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