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2. 4. 11. 08:16
멍 한 순간
멍해지는 순간은
내 안으로
하늘이 들어차고 있는 시간
보이지 않는 손짓으로
나를 지우시고 있다는 신호
하얀 백지처럼
푸른 창공처럼
이렇게 또 나를 어린 아이로 데려가신다
이어서 태초의 없음으로 데려가신다
그러면, 나는 그냥 말없이
하나 둘 셋, 몸에 힘을 빼면서
귀를 열고서
그냥 숨만 쉬면 된다
허공 중에 반짝
한 톨의 먼지가 일어
한 점 숨이 된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게
지나가는 바람이
한 톨의 말씀을
이미 하늘로 가득찬 너른 땅
내 마음밭에 떨구어 주시며
낮아진 가슴으로
숨을 불어 넣어주신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아득히 먼 깊은 데서부터
알 수 없는 고마운 마음이 출렁이어
샘솟듯 눈물이 차올라
빈 방에 촛불 하나 켠 듯
가슴이 따뜻하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