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
‘얄팍한 수’를 쓰면
한종호
2022. 5. 23. 08:00
“히브리 사람 가운데 더러는 요단 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지역으로 달아났다. 사울은 그대로 길갈에 남아 있었고, 그를 따르는 군인들은 모두 떨고 있었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대로 이레 동안 사무엘을 기다렸으나 그는 길갈로 오지 않았다. 그러자 백성은 사울에게서 떠나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사울은 사람들을 시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한 다음에 자신이 직접 번제를 올렸다. 사울이 막 번제를 올리고 나자, 사무엘이 도착하였다. 사울이 나가 그를 맞으며 인사를 드리니”(사무엘상 13:7-10).
사울의 통치가 40여 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전의 쓰라림을 겪게 된다. 승승장구하고 용맹했던 그와 그의 군대가 오합지졸과 같은 모습으로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사무엘상 13장은 기록하고 있다. 사태는 위급했고, 이제 더 이상 버틸 여력도 없었다. 그러면서 민심은 흩어졌고, 탈주자들은 급증했으며, 목숨 걸고 그를 호위해야 할 군사들도 두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울의 체제가 경각의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이 위기관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지도력이 판정나는 것이었으며, 이 순간을 돌파해내지 못하면 사울 자신의 명운도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어디에도 그를 지켜줄 것은 없었고, 그나마 믿고 기다리던 사무엘도 도착했다는 기별을 들을 수가 없었다. 허물어지는 민심의 뚝을 방어할 도리가 그에게는 이제 없었다. 떨고 있는 군대의 마음을 강하게 붙잡아 격려할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 그에게 섬광과도 같은 계략이 떠오른다. ‘위엄을 조작하는 것’이다.
사울이 사무엘을 대신해 제사 지내는 것을,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종교의 영역에 사울이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침범하여 월권행사를 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 대목의 의미를 매우 좁고 종교주의적인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해석의 결과는 종교의 영역을 수호하는 논리로 이어지며, 종교적 기득권의 관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의 문제는 월권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울의 문제는, 사울이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동요하는 법 없이 바위처럼 버티지 못하고,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제사장의 권위를 그럴싸하게 뒤집어 쓰고 민심을 수습하려 ‘얄팍한 수’를 썼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