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나무 곁에 앉아서

한종호 2022. 7. 21. 10:48




나무 곁에 앉아서
나도 나무가 되고 싶은 날

움직이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멈춤과 침묵이 이상하지 않은 
이 곳 어느 사람들의 나라에서

숨과 숨으로 
구석구석 몸을 지우며

한 톨의 없음으로 돌아가는 
좁은길 좁은문

나를
멈추어

침묵과 침묵으로 
지구의 심장으로 뿌리를 내리며

푸른 떡잎처럼 포갠 두 발끝을 돌아
맑은 수액이 냇물처럼 흐르는

숨과 숨으로
제 몸을 살라먹으며 타오르는 촛불처럼

푸르게 그리고 붉게
하늘을 우러르는 한 송이 불꽃처럼

숨과 숨으로 걸어 들어가는 
무심한 길

실핏줄 같은 뿌리와 뿌리로 
묵묵히 이 땅을 끌어 안으며 기도하는

언제나 평화로운 
한 그루 나무처럼

나무가 되고 싶은 날
나무 곁에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