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잠언 9:17-18)
*마중물(말씀 묵상)
왠지 그럴 것 같다.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을 것 같다는 죗성이 있는 인간의 본능이. 잠언 기자도 이 점에 천착했는데 같은 인간이라는 동일선산에 있는 자로 느끼는 극복할 수 없는 나약함이 발동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동의만해서야 어찌 그리스도인일 수 있으랴. 잠언을 기록한 지혜자의 그 다음 말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알지 못하느니라.’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을 향한 ‘야다’에 대한 무지다. 인간의 죗성이 안겨다주는 비극은 하나님에 ‘야다’를 차단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제임스 패커가 말한 그대로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으랴!
*두레박(질문)
나는 오늘 하나님에 대해 ‘야다’ 하기 위해 어떤 영혼의 진보를 나타내고 있는가?
*손 우물(한 줄 기도)
간절한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배설물을 언급했던 바울의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하나님에 ‘야다’를 내 마음의 가장 중심 자리에서 용솟음치게 하소서.
*나비물(말씀 실천)
‘야다’의 은혜를 얻기 위해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하고 독서하자. 공부와 독서가 하나님을 ‘야다’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가자.
*하늘바라기(중보기도)
내 사랑하는 한국교회가 진정성이 있게 하나님과 ‘야다’의 관계를 형성하게 하옵소서. ‘ism’ 이 아닌 ‘야다’의 은혜가 넘쳐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