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순례'
제발 멈춰주시오!
한종호
2023. 5. 30. 11:36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32 제발 멈춰주시오!
마태수난곡 2부 60~61번 | |||
음악듣기 : https://youtu.be/PfFiCKJA0vE | |||
60(51) 코멘트 |
알토 서창 | 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 구주께서 묶인 채로 있습니다 오! 그 채찍질, 구타, 그리고 그 상처여! 형리들이여 제발 멈춰 주시오 당신들의 마음은 아프지 않습니까? 저 아파하는 영혼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 그렇군요 당신들의 마음은 저 고문기둥 같이 단단하군요. 아니, 그보다도 더 무자비하군요 그래도, 자비를 베푸시오. 제발 멈춰주시오! |
Erbarm es Gott! Hier steht der Heiland angebunden. O Geißelung, o Schläg', o Wunden! Ihr Henker, haltet ein! Erweichet euch der Seelen Schmerz, Der Anblick solchen Jammers nicht! Ach ja, ihr habt ein Herz, Das muß der Martersäule gleich, Und noch viel härter sein. Erbarmt euch, haltet ein! |
61(52) 기도 |
알토 아리아 | 내 뺨의 눈물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오, 내 마음이라도 그 자리에 함께 있게 하소서 내 마음이라도 흐르는 피의 곁에 있게 하셔서 그 상처에서 흐르는 거룩한 피를 보혈의 잔에 담도록 허락하소서. |
Können Tränen meiner Wangen nichts erlangen, Oh, so nehmt mein Herz hinein! Aber laßt es bei den Fluten, Wenn die Wunden milde bluten, Auch die Opferschale sein. |
오 그 채찍질이여!
이제 바라바는 풀려나고 예수는 채찍질을 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집니다. 잔혹함에 있어 형리들은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채찍질하는 이들은 냉철한 고문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유대인들은 감정이 앞선 어설픈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의 몸뚱어리가 던져졌을 뿐, 그들에게 넘겨진 이상 그가 누구이며 그곳에 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우 익숙한 자세와 또 하나의 일감을 해치우려는 무표정의 얼굴, 그리고 숙련된 손길로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아들의 죄 없고 선한 몸을 기둥에 묶고 가차 없이 채찍질을 시작합니다.
카라바조의 ‘채찍질 당하는 예수’
이탈리아 나폴리시 북쪽으로 작은 산이 있습니다. 산 뒤편으로는 부르봉 왕조 양시칠리아왕국의 사냥터 숲이 펼쳐져 있고 그 산꼭대기에는 이름 그대로 ‘카포 디 몬테/Capodimonte/산의 머리’ 궁전이 있습니다. 현재 나폴리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쓰이는 그곳의 2층 복도 끝 코너에는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그린 ‘채찍질 당하시는 그리스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채찍질을 시작하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예수의 흠 없는 몸에 곧 가해질 채찍질을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떨려옵니다. 왼쪽에서 예수의 머리채를 잡고 채찍질을 준비하는 사람의 포악한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힘줄이 굳게 선 목 위에 놓인 그의 얼굴과 힘없이 꺾인 예수의 얼굴이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카라바조 자화상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실재로 카라바조는 39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지는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이라는 그림에 자신의 얼굴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607년에 카라바조는 로마에서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인하여 나폴리에 피신해 있었습니다. 도망자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유명한 화가였던 그는 나폴리에서도 작품의뢰를 받았습니다. 나폴리의 신흥 귀족 로렌조 데 프란치스로부터 산 도메미코 마조레 성당의 가족 경당에 걸기 위한 성화를 의뢰받은 그는 이 그림을 그립니다. 카라바조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처벌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스도 앞에서의 죄책감을 이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예수께 채찍질하는 잔혹한 형리의 얼굴에 자신을 그려 넣은 것이지요. 이 연재의 열 번째 시간 ‘주여, 나는 아니지요?’ 편에 나오는 코랄이 떠오릅니다. 그 코랄은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몹시 근심하여 “Herr, bin ich's?/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각각 여쭙는 장면 다음에 나옵니다. 카라바조는 바로 이 코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포악한 형리의 얼굴에 자기 자신을 그려 넣었습니다.
Ich bin's, ich sollte büßen,
An Händen und an Füßen
Gebunden in der Höll'!
Die Geißeln und die Banden,
Und was du ausgestanden,
Das hat verdienet meine Seel'.
그것은 나입니다. 회개해야 할 이는 나입니다.
지옥에서 손발이 묶이고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채찍질도 묶임도
당신께서 견디신 그 모든 것은
나의 영혼이 짊어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한편, 다른 집행자 두 사람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예수를 기둥에 묶고 있습니다. 그가 곧 겪게 될 아픔을 알고 있기에 쓰러지지 않고 계속 채찍질을 당하도록 매우 숙련된 자세로 줄을 튼튼하게 묶고 있습니다. 왼발로는 물건을 다루듯 예수의 종아리를 밟아 지탱하며 손으로는 줄을 당겨 묶고 있는데 사람을 고문하며 단련된 다부진 몸과 늘 하던 일을 하는 듯한 무표정한 얼굴이 역설적인 섬뜩함을 자아냅니다. 왼쪽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채찍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신참 같습니다. 위의 두 사람과 달리 동작도 어눌하고 무슨 이유인지 사뭇 긴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 형리의 손에 이미 채찍이 있음에도 그의 지시를 받은 듯 또 다른 채찍을 만들고 있습니다. 채찍이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가혹한 채찍질이 시작될 것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고문 기둥에 묶이며 몸이 비틀릴 때 내뱉는 예수의 신음에 놀랐는지 그의 눈길은 발 앞의 채찍에서 예수를 향해 급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의 형리들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모습으로 예수의 거룩한 몸에 상처를 입혔고 그를 십자가로 내몰았습니다. 또한 코랄 가사의 고백처럼 정작 손발이 묶이고 모욕과 채찍질을 당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였습니다. 그는 우리를 치유하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바흐가 표현한 채찍질
오늘의 마태수난곡 음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알토 레치타티보의 시작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오케스트라의 부점 리듬은 예수께 가해지고 있는 살점이 튀고 선혈이 낭자한 채찍질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다 못한 알토는 하나님께 제발 개입해 달라고(Erbarm es Gott!), 형리들에게도 제발 멈춰달라고(haltet ein!) 애원합니다. 울부짖듯 저들의 마음에 애원하기도 하고 카라바조의 그림에 있는 고문 기둥처럼 단단한 저들의 마음을 비난하며 윽박지르기도 합니다(Ach ja, ihr habt ein Herz, Das muß der Martersäule gleich).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잔인한 채찍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겪고 있는 수난과 아픔과 잔인함에 보는 이가 먼저 기절할 지경입니다. 절망감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이제 아리아가 시작합니다. 부점의 리듬은 레치타티보와 똑같지만 템포가 두 배 이상 느려집니다. 채찍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그 장면이 슬로우비디오 처럼 느려지면서 알토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섭니다.
채찍질의 부점은 어느새 간절한 애원의 부점이 되고 알토 솔로는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은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그렇다면 내 마음이라도 그 고난의 자리에 들어가 그의 곁에라도 있게 하게 하옵소서/Können Tränen meiner Wangen nichts erlangen, Oh, so nehmt mein Herz hinein!'라고 노래합니다.
알토 솔로는 이어서 노래합니다. ‘Aber laßt es bei den Fluten, Wenn die Wunden milde bluten, Auch die Opferschale sein./내 마음이라도 흐르는 피의 곁에 있게 하셔서 그 상처에서 흐르는 거룩한 피를 보혈의 잔에 담도록 허락하소서.’
아리아 ‘사랑 때문에/Aus Liebe’에서 소프라노 목소리가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나타낸다면 알토는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사랑입니다. 칼 리히터의 음반에서는 알토 여성 성악가가 이 노래를 하고 있지만 바흐시대의 악기를 사용한 원전연주 음반에서는 남성 카운터테너가 알토 파트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카운터테너의 노래는 보다 풍부한 감성과 고결함을 전달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카운터테너가 참여한 마태수난곡 음반으로는 마이클 챈스(Michael Chance)가 노래한 1990년 가디너 음반과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이 노래한 1998년 헤레베헤 음반을 추천합니다. 다양한 음반의 표현을 비교하며 듣는 것도 마태수난곡을 감상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예수께 가해지는 숨막히는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카라바조의 그림을 깊이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때마다 그 장면을 목도 해야 합니다. 그의 고난과 그의 십자가 없이는 우리의 참된 치유와 참된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