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설교비평 모음
자신의 욕망과 권력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의 최후
한종호
2023. 6. 1. 10:51
김기석 목사의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라”는 설교는 이번에 출간한 <말씀 등불 밝히고>에 실려 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쟁, 그리고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유다가 이스라엘을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시리아와 동맹을 맺었던 상황, 그리고 결국 그런 선택이 자기 무덤을 파는 일로 가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그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사고하기보다는, 힘 위주의 발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권력자의 비극을 보여 준다.
예언자들은 바로 이러한 권력자의 오만을 용기 있게 치고 들어가서 백성들의 진정한 안녕을 도모하는 역할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조차 권력자에 대해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 설교가 주는 메시지는 자못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기석 목사는 역대하 16장 7-10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우선 본문의 정황은 이러하다. 김기석 목사의 이야기를 하나씩 간추려 보자.
"오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사 왕은 솔로몬의 증손자입니다. 솔로몬이 세상을 떠난 후 이스라엘은 남쪽의 유다와 북쪽의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습니다. 분열의 원인은 르호보암의 강압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수많은 건축 사업에 동원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세금을 물어야 했던 북부의 지파들은,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세금을 경감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그들의 요구를 묵살했고, 그것이 북부 지파들을 자극해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조가 히브리 민족을 통일하고 강성한 국가체제를 정비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혹독한 시련과 부담이 백성들에게 부과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솔로몬 이후의 정권은 해결할 생각이 없었고 더욱 무거운 세금을 내리게 되고 이것은 국가분열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열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그러다가 이 두 분열된 국가는 적대하게 되고, 마침내 전쟁까지 치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다는 시리아를 끌어들여 이스라엘을 남과 북 양쪽에서 압박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모든 것은 다 잘 되어가는 듯 보였다. 유다의 왕 아사의 전략은 정확했고 이제 모두 승리에 들떠 기뻐했다. 용비어천가가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선견자 하나니가 초 치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왕과 백성들이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그때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 왕 앞에 등장합니다. 그는 왕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시리아 왕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시리아의 세력을 꺾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전에 벌어졌던 에티오피아와의 전쟁, 리비아와의 전쟁을 상기시킵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침공해온 두 나라를 물리친 것은 유다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한 하나니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사는 하나니의 말에 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예언자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그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아사가 그 때에 백성들 가운데 얼마를 학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가 아사가 왕이 된 지 36년 째 되던 해이니까, 아사는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권력이 그의 귀를 어둡게 했습니다. ‘불합리하다, 어리석다’는 뜻의 영어 단어 ‘absurd’에는 흥미롭게도 ‘귀머거리’를 뜻하는 ‘sardus’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누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혹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순종’을 뜻하는 ‘obedience’에는 ‘듣는다’는 뜻의 ‘audire’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니는 아사가 ‘어리석게 행동했다’고 책망합니다."
시리아의 강성한 힘에 의존하고, 그렇게 얻은 승리에 취하고, 그래서 결국 스스로 오만해지고 시리아의 권세에 마침내 짓밟히는 상황을 아사는 자초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이겼으나 시리아를 비롯해서 더 큰 전쟁 속으로 그는 빨려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아사가 애초부터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아사가 처음부터 그런 ‘귀머거리’는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사가 다스리던 처음 10년 동안은 나라가 조용했습니다. …전쟁이 없던 평안한 시기에 아사는 유다 지방에 요새 성읍들을 건설함으로써 나라의 안보를 튼튼하게 다졌습니다. 국제 정세의 변동 속에서 유다도 전쟁의 광풍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 세라가 침공했는데, 그 군세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엎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랄 인근의 많은 성읍들에서 역겨운 물건들을 없앴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불러 모아 ‘조상의 하나님만 찾기로 맹세’하게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사 왕 삼십 오년까지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승리와 권력 앞에서 도리어 위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아사가 오랜 평화 시기를 지나면서 권력의 단 맛에 취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오만한 왕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자식처럼 돌보던 백성들을 학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위기가 사라지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던 사람에서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31일 오전 5시30분쯤 경찰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고 있다.
영상 https://v.daum.net/v/20230531162602756
권력의 유혹은 맹렬하다. 그 앞에서 자기를 지키는 힘을 인간은 갖지 못한다. 어떤 인간도 권력의 유혹에 무너진다. 절대적으로 무너진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그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이다. 백성들의 하소연을 귀담아 듣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권력을 믿지 않는 것이다. 권력은 하늘의 뜻에 종속된 도구일 뿐이라는 발상을 하지 못하는 권력자는 반드시 스스로 패망한다. 그러기 전에 예언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그야말로 다행이다. 그 목소리를 억압하는 권력자는 자멸을 선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교회는 권력의 유혹에 협력하는 존재일 뿐이다.
최고의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 그래서 자신들의 의중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과 권세욕이 지배하는 곳, 그래서 웬만한 이야기는 다 그리 큰 가치를 두지 못하게 될 수 있는 곳, 진심으로 충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곳, 그런 곳에서 권력은 죄를 짓게 되며 그 죄가 쌓이고 쌓이면 역사의 정도를 스스로 배반하고 권력 자신의 목적을 위한 권력이 되는 것이다.
성서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연적인 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김기석 목사의 메시지는 아무리 괜찮은 시작을 했다 해도 하늘의 소리를 듣는 일을 게을리하는 순간, 그 권력은 세상과 하늘의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일깨우고 있다. 해서, 역대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권력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해 하늘의 응징을 받고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게 된다.
밑바닥 서민 대중들의 삶과 단절되는 순간, 그 권력은 자신의 욕망과 영광을 추구하면서 타락해갈 수 있음을 기억하며 늘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정권은 자신에게는 쓴, 예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결국 하나님의 음성,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권력이 될 수 있을까? 자조적인 어리석은 질문을 날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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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망각한 자의 비운https://fzari.tistory.com/3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