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출간 책 서평
영혼의 때를 밀고 오만과 위선을 벗는 일
한종호
2023. 7. 28. 09:18
저자 지강유철 선생이 장기려 선생에 대해 쓴 평전을 잘 읽었다. 이 책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먼저 장기려 박사와 필자가 교제한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겠다. 필자는 장기려 선생을 생전에 두어번 뵌 적이 있다. 1970년대 중반에 부산 산정현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장 박사께서 내게 오후에 잠시 말씀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순종한 적이 있다. 또 1990년대 초에 일가 김용기 선생을 기리는 일가상위원회에서 장기려 선생을 수상자로 결정하고 손봉호 교수와 나를 부산 장기려 선생께로 보냈다. 장기려 선생이 일가상 수상을 거부할 수도 있으니 먼저 두 사람이 가서 장 박사를 설득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가 내려가서 말씀드렸지만 장 박사는 이제 세상의 어떤 상도 받지 않켔다고 하시면서 거절했다.
이 기회에 평소 내가 묻고 싶어한 것을 두어개 확인하려고 했다. 이광수 소설에 나타난 안빈의 실제적인 모델이라는 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북한에서 김일성의 혹을 수술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첫 질문과 둘째 질문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 전후하여 문익환 목사의 방북 후에 장 박사와 서신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1995년 12월 25일 장 박사가 서거한 직후에 나는 기독교방송(CBS)의 아침 칼럼에서 장 박사를 주제로 방송한 적이 있고, 그 뒤 ‘장기려 박사 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기념강연 요청에 두어번 참여하여 강연한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지강유철 선생과도 인연이 있다. 지강유철 선생은 김진홍 목사와 내가 발행인이 되어 시작한 『복음과 상황』의 인터뷰란에 인터뷰어로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저자의 인터뷰어로서의 날카로운 질문이 그 인터뷰난을 빛내게 했다. 그때 인터뷰어로서 시의적절하고 진지한 질문이 그 인터뷰 기사들을 빛냈던 것을 기억한다. 또 20여년 전에 지강유철 선생은 『장기려 그 사람』을 출간했는데 그 때 내가 서평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을 계기로 그가 근무하고 있는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여러번 만날 수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그 때 『장기려 그 사람』간행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많이 모았을 테니까 먼저 ‘장기려 전집’을 간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의 전기나 평전을 쓰려고 하면, 먼저 그가 남긴 자료를 수집 검토 정리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당시 저자는 『장기려 그 사람』을 쓰기 위해 수집한 많은 자료들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료집에 해당하는 ‘전집’을 먼저 간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이뤄지지 않은 채 이번 『장기려 평전』이 나오게 되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평전(評傳)’ 붐이 일어나고 있다. ‘평전’이란 그냥 전기가 아니다. 말의 뜻 그대로는 ‘비평(비판)적인 전기’라는 뜻이다. 칭찬 일변도의 전기나 주인공(혹은 그 후손이나 친척)이 주문하여 만드는 그런 전기가 아니다. 주인공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곁들이는 전기를 말한다. 그런데도 문필가 중에는 벌써 수십권의 평전을 남긴 분도 있다. 주로 최근세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평전’을 쓰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작업이 있다. 먼저 그 주인공이 남긴 자료나 그 주인공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쓴 자료를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가능하다면 먼저 출판하는 것이 좋다. 그런 출판물을 보통 ‘전집(全集)’이라고 부른다. 그런 전집이 나오게 되면 그 대상자에 대한 자료가 제대로 모아졌는지를 알게 되고 제대로 모아졌으면 그것을 토대로 ‘전기’나 ‘평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자료가 제대로 모여지지 않았는데 ‘평전’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평전’ 붐을 이루고 있다. ‘평전’이 단순한 ‘전기’와 다른 것은, 말 그대로 그 인물을 비평적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그냥 상찬 일변도의 전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자료뿐만 아니라 작가의 박통(博通)한 식견과 균형잡히고 비판적인 인격이 그 작품 소게 투영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자료수집이나 ‘전집’ 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평전’부터 먼저 내는 경향이 많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온당한 방법 같지 않다. 『장기려 평전』도 평전에 앞서 그에 대한 자료집이 먼저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료집을 제대로 내 놓으면 전기든 평전이든 후세는 이를 제대로 쓰거나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려 선생에 대한 평가는 여러 곳에서 행해졌지만, 필자는 최근 감신대를 은퇴한 기독교윤리학자 박충구 교수의 평가에 공감한 적이 있다. 그는, “장기려는 슈바이처처럼 퍽 고독한 의사였다. 타협 없이 인간을 사랑했고, 타협 없이 신앙의 길을 걸었으며, 무리 속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 평생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았다. 의사로서 웬만하면 편히 살 수도 있었으나, 오만과 탐욕과 쾌락에 한눈을 팔지 않고 언제나 그는 자신을 의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규정”하며 살았다. 이어서 박 교수는 슈바이처가 “강단을 떠나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이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었듯이, 그도 그리스도가 이끄는 대로 언제나 가난한 환자 곁에 머물렀다”고 썼다. 박 교수는 이번에 간행된 『장기려 평전』을 두고도, “이 책을 읽는 것은 독서가 아니라 영혼의 때를 미는 일이거나 덧입고 있는 오만과 위선을 벗는 일이 될 것이다”고 했다, 시의 적절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장기려 그 사람』을 쓴 저자 지강유철은 20여년간의 되새김과 사유(思惟) 끝에 이번에 다시 『장기려 평전』을 상재했다. 저자의 각오도 새로웠다. 먼저 그는 ‘장기려 선생’을 두고 ‘선생’이라는 주체높임법 호칭을 떼어내어 ‘장기려’라 함으로 대상 인물과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그렇게 해야만 좀 더 ‘평전’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사유와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장기려’를 객관화시키려는 첫째 단계의 시도였다. 이는 또한 저자 자신이 평전의 대상을 ‘인간화’시키려고 노력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장기려를 두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던 의사”라고 하면서, 평전 서술에 앞서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 관점이 이 책을 관류하고 있다고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다. 즉 차별과 경계를 허문 사람, 시대를 앞서간 사람, 전문가 주의를 경계했던 의학도, 평생 간직한 교회 개혁 열망, 한국 교회가 이단시한 함석헌․김교신과 아름답게 공존하기, 비기독교인을 위한 삶 등을 강조하려 했다고 했다.
『장기려 평전』은 두 주 전에 저자가 서명하여 내게 보냈다. 그 동안에 필자는 짬짬이 이 책을 다 읽었다. 읽으면서 많이 배웠다. '평전‘을 쓰기 위해 저자는 장기려가 쓴 자료뿐만 아니라 장기려에 관해 쓴 많은 문헌들을 섭렵했고, 장기려가 살았던 시대와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많이 수집해서 읽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평전을 통독하면서 저자와 같이 장기려를 이렇게 다방면으로 살피면서 정리 서술할 능력이 필자에게는 없다고 판단했다. 읽으면서 장기려의 생각과 삶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와 환경에 대해서도 더 접근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과 신앙은 성서를 바탕으로 실천적인 삶을 통해 체득 구축되었는데, ’평전‘ 저자는 그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해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최근 많은 ’평전‘들이 나오고 있는데 『장기려 평전』은 그 하나이면서 다른 평전이 갖지 못한 자료수집과 구성체계를 갖고 있어서 ’평전‘계의 한 전범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끝으로 저자가 서문에서 필자가 쓴 『한국 기독교 의료사』(2003. 아카넷)를 거론하면서 거기에 ‘장기려’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섭섭해했다. 장기려의 연구와 활동이 『한국 기독교 의료사』의 하한시기(일제 말)에 이미 의학사에 등장할 정도의 공적을 쌓았는데도 필자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해 필자의 저술에 등장시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저자의 게으름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때 학문 정보의 불충분 때문에 혹은 그가 기독교의료사에 남을 만한 존재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필자의 ‘기독교 의료사’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필자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점은 다시 살펴보겠다. 필자가 1995년경 장기려 선생을 뵈었을 때 두 가지 사실(이광수 소설의 안빈이라는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장기려인가, 김일성의 혹을 수술한 이가 장기려인가 하는 문제)를 확인하려고 한 것은 일제 말 해방 초기의 장기려의 행적과 평판을 확인해 보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다음에 수정판이 나오게 된다면, 1990년에 간행된, 필자의 『한국기독의사회이십오년지(韓國基督敎醫師會二十五年誌)』에 소개한 장기려를 참고해 주었으면 한다. 기독의사회가 간행한『기독의사』지에는 장기려의 의료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에 간행된 『장기려 평전』에는 『기독의사』지에 기고한 장기려의 글(의학사상 등)은 빠져 있다. 이 글들을 통해 장기려의 의학사상이 보완되어야 기독의사로서의 장기려의 정확한 위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장기려 평전』도 그만큼 완전성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지강유철이 7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 것과 관련, 먼저 저자의 노고에 대해 경하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또한 그 시기의 한국의 일반역사와 의료분야 등의 특수사도 간간히 정리해 가면서 이 책을 썼다는 것은 장기려의 신앙 의료 사상이 당시 사회의 여러 방면과 연관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소개한 저자의 노고에 더욱 경하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 책을 보완할 기회가 온다면 필자의 『韓國基督敎醫師會二十五年誌』와 거기에 인용된 자료들을 참고해 주었으면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장기려 평전』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데에만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한 기독의사의 자기 희생적인 삶을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삶이 격동기의 한국 사회에 어떤 선한 영향을 미쳤는가도 잘 그려내고 있다. 거듭 저자의 노고에 찬하의 뜻을 표한다.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전 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