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3. 8. 4. 09:17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34 오라 소중한 십자가여!

 

마태수난곡 264~66
(마태복음 27:31~32)
음악듣기 : https://youtu.be/SSZAHhl67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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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1. Und da sie ihn verspottet hatten, zogen sie ihm den Mantel aus, und zogen ihm seine Kleider an, und führeten ihn hin, daß sie ihn kreuzigten. 32. Und indem sie hinausgingen, funden sie einen Menschen von Kyrene, mit Namen Simon; den zwungen sie, daß er ihm sein Kreuztrug. So hilf du mir es selber tr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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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베이스 서창 맞습니다! 마땅히 우리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십자가가 험하면 험할수록
우리 영혼에 더욱 좋은 것입니다.
Ja! freilich will in uns das Fleisch und Blut zum Kreuz gezwungen sein;
Je mehr es unsrer Seele gut,
Je herber geht es 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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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베이스 아리아 오라 소중한 십자가여. 그렇게 말하겠노라
나의 예수여! 언제든지 내게 십자가를 주소서.
나의 고통 견딜 수 없을지라도
주여 나를 도우사 그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Komm, süßes Kreuz, so will ich sagen,
Mein Jesu, gib es immer her!
Wird mir mein Leiden einst zu schwer, So hilf du mir es selber tragen.

 

희롱을 당하신 후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끌려나갑니다. 사람을 매달 정도이니 그가 지고 있는 십자가의 크기와 무게는 상당했을 것입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기력이 다하여 쓰러지기를 여러 번, 채찍을 가해도 진행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성질 급한 로마병사들은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을 골라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합니다.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Simon von Kyrene)’입니다.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마태복음 27:32)

 

그 고통의 와중에서도 예수는 시몬을 바라봅니다. 저들의 주먹질에 퉁퉁 부어 반쯤 감기우고, 피눈물로 앞을 가린 그 눈을 기어이 떠가면서도 구레네 시몬을 알아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사람으로 살아갈 그와 초대 교회의 중요한 믿음의 가문으로 쓰임 받을 그의 가족들을 이미 아는 듯 황당하고 떨리는 맘으로 십자가를 지고 있는 시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과 예수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처럼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 모두가 그와 같이 예수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십자가의 예수가 기다렸던 그 사람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르간 연주자

마태복음 2731~32절을 낭송하는 에반겔리스트의 레치타티보를 보십시오. 우리는 그동안 내러티브 레치타티보를 에반겔리스트의 노래 위주로 살펴 보았지만 이번에는 오르간과 콘티누오 반주 부분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에서 레치타티보의 반주는 주로 오르간과 콘티누오가 담당합니다. 콘티누오는 현대악기 연주에서는 첼로나 더블베이스가, 원전 연주에서는 비올족 악기가 담당합니다.

 

 

위 악보에서 아랫단이 레치타티보의 반주 부분입니다. 화음의 기본이 되는 음에 숫자를 적어서 화음을 표시합니다. 이러한 표기와 연주를 일컬어 통주저음이라고 합니다. 이 통주저음은 바흐나 헨델의 동시대의 음악에 널리 쓰였고 그러한 이유로 음악사에서는 바로크 시대통주저음의 시대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오르간과 콘티누오 연주자들은 그 표시를 보고 화음을 만들었고 특히 오르가니스트는 오늘날 대중음악의 기타연주자들처럼 그 화음 안에서 여러 음을 자유롭게 펼쳐냈습니다. 그래서 바흐의 교회음악에서는 오르가니스트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실재 바흐는 작곡가이기 전에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습니다. 바흐 당시에는 지휘자라는 직업 자체가 없었습니다. 마태수난곡을 연주할 때 바흐는 오르가니스트로서 직접 통주저음을 연주하면서 곡을 이끌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음반의 지휘자 칼 리히터 역시 음반 역사상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로 손꼽힙니다. 물론 칼 리히터가 이 음반을 녹음할 때에는 지휘를 전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요 바흐 음악 전문가로서 오르간 연주에도 많은 관여를 했을 것입니다. 특히 위 악보의 셋째 줄에 있는 ‘und führeten ihn hin, daß sie ihn kreuzigten/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부분의 마지막 오르간 소리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음반의 오르가니스트는 그 부분에 십자가에 못박다라는 의미의 ‘kreuzigten’다음에 지난 시간에 들었던 코랄 오 거룩하신 주님을 떠오르게 하는 선율을 집어넣었습니다. 이 표현은 리히터의 음반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짧은 부분에서 마태수난곡을 대표하는 십자가 코랄을 순간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굉장히 창의적이고 예술적이며 신앙적인 표현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

구레네 시몬은 예수의 수난 이야기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그가 남긴 영적 여운은 초대교회의 역사에 널리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 주변에서 서성이던 구경꾼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십자가를 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얼떨결에 아니 억지로(zwungen) 예수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게 된 십자가임에도 그는 십자가의 사람이 되었고 그 일이 그의 삶에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요 가문의 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이스의 레치타티보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지요.

 

Ja! freilich will in uns das Fleisch und Blut

Zum Kreuz gezwungen sein;

 

맞습니다! 마땅히 우리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의 노래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대의 플루트가 화음을 이루며 한 걸음 한 걸음 힘내어 십자가를 일으키듯 함께 움직이고 비올라 다 감바는 아르페지오로 화음을 펼쳐냅니다. 그러나 십자가 고난의 발걸음임에도 불구하고 비올라 다 감바의 화음은 반짝이는 호숫가의 푸른 평원처럼 느껴지고 두 대의 플루트의 화음은 부드럽게 그 평원 위를 노니는 바람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낙원에 와 있는 듯합니다. 구레네 시몬과 그의 가족이 그랬듯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일어나는 아름다운 변화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지요. 찬송가 491장의 마지막 절 가사처럼 말입니다.

 

내 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한편, 오늘 본문의 마가복음 병행 구절은 구레네 시몬을 일컬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마가복음 15:21)

 

그 표현은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가 초대교회 마가복음을 나누었던 공동체에서 누구나 알 만한 중요한 인물로 성장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또한 로마서 16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당부합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로마서 16:13)

 

시몬의 아들들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역시 사도 바울이 어머니라 불렀을 정도의 위대한 여종이 되어 초대교회를 섬겼습니다. 제 상상입니다마는, 아마 그맘때에는 구레네 시몬이 세상을 떠났기에 그를 향한 안부가 없었을 뿐, 구레네 시몬 또한 사도 바울의 영적 아버지로서 그를 사도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얼떨결에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시몬의 가족은 그렇게 복된 가문이 되어 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 십자가는 구레네 시몬과 그의 가족의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게 된 그는 다음과 같이 아리아를 노래합니다.

 

 

오라 소중한 십자가여!

카잘스의 손에 쥐인 듯한 첼로의 활이 메마른 우리의 영혼에 활을 그으며 스파크를 냅니다. 그 작은 불꽃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하나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그 영혼의 노래에 진심어리고 진중한 고백과도 같은 베이스 목소리가 함께 하며 사랑스럽고 달콤한 십자가를 노래합니다. 그 베이스의 음성은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로 한 우리 모두의 노래입니다.

 

Komm, süßes Kreuz, so will ich sagen,

Mein Jesu, gib es immer her!

Wird mir mein Leiden einst zu schwer,

So hilf du mir es selber tragen.

 

오라 소중한 십자가여, 나 그렇게 말하겠노라

나의 예수여! 언제든지 내게 십자가를 주소서

나의 고통 견딜 수 없을지라도

주여 나를 도우사 그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이 아리아는 마태수난곡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수난곡이 한 편의 위대한 설교라고 한다면 그 설교를 듣는 이들에게서 듣고자 하는 고백이 바로 이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함께 듣고 있는 칼 리히터 지휘의 58년 음반에서 이 노래는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부릅니다. 디스카우에 대한 설명은 이 연재의 16번째 글 기꺼이 잔을 받겠나이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또한 삶 가운데 십자가를 경험했습니다. 베를린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중에 그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군에 징집되었습니다. 1945년 이탈리아에서 미군의 포로로 잡혀서 디스카우는 2년 뒤에야 고향 베를린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925년생인 그는 이 음반을 녹음할 때 33세 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노래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같은 나이의 서른세 살의 디스카우의 음성으로 듣는다는 것은 이 음반을 마태수난곡의 독보적인 명반으로 만들어 주는 또 다른 이유가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티치아노, Ca. 1565. 캔버스에 유화, 프라도 미술관

 

저는 저 스스로를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한때 음악가였던 사람으로서 종교가곡 수업 시간에 과제곡으로 받은 마태수난곡의 아리아로 인해 많은 음악인들이 어려워하고 꺼리던 바흐와 마태수난곡을 만난 것도 그렇고 이 글을 쓰게 된 과정도 그랬습니다. 아니, 제가 이렇게 목사가 된 것도, 예수를 나의 구주로 만나게 된 것도, 부모님을 통해 신앙을 같게 된 것도 구레네 시몬과 같이 항상 주변인으로 서성이던 제게 엉겁결에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우리가 쉬이 말하는 은혜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회 초년 시절,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저는 은근히 인기 많고 적당히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교회연구소로부터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관한 사순절용 작은 묵상집을 집필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얼떨결에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3개월 넘게 책을 쓰면서 저는 십자가의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의 사랑에 겨워 거의 매일 밤 혹시나 가족들이 잠을 깨지나 않을까 얼굴을 감싸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글을 썼습니다. 그 작은 책이 지금은 연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유혹에 흔들리곤 하지만, 그 후로 저의 신앙과 목회관은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얼떨결에 혹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저 같은 사람에게도 십자가의 능력은 임합니다. 십자가의 초청은 큰 은혜요 영광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중심, 우리 삶의 중심, 우리 생명의 중심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이 있어 얼떨결에 진 사람에게도, 억지로 진 사람에게도 역사합니다. 한국교회에서 큰 사랑을 받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영광의 신학을 대표한다면 바흐의 마태 수난곡십자가의 신학을 대표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십자가를 건너뛴 영광의 신학과 영광의 노래만 가득하게 될 때, 우리는 삶과 신앙의 진실과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길을 홀로 걸으심으로 우리에게도 그 길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길을 따라야 할 때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용기를 내면 그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Sieger Köder(1925~2015)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현재 전농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