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우리 인생의 출발점

한종호 2023. 9. 30. 10:57

 



국화차 한 모금에
그윽해진 가슴으로

고요히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의 출발점은 어딜까 하고

우리가 태어난 집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졸업한 학교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닌 첫 직장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혹, 저잣거리에 떠돌듯
물고 태어났다는 흙숟가락 금숟가락일까?

물음과 물음을 따라서
흐르는 생각을 따라서

깊어진 가슴으로
깊은 숨을 쉽니다.

숨을 쉽니다.
숨을 고릅니다.

날숨과 들숨이 
평화롭게 걸어갑니다.

숨을 고르는 이 순간
우리 인생의 출발점에서

날숨과 들숨 같은
생(生)과 사(死)가 사이좋게 걸어갑니다.

해인사의 장경각 법보전 주련에 새긴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時)

날마다 새롭게
숨을 고르는 이 순간마다

모두에게 공평히 내려주시는 은총과 맞닿은
지금이라는 지평선은

우리 인생의 출발점이자
순례길에 가 닿을 궁극의 도착점

인생의 첫 날숨과
인생의 마지막 들숨

그 사이에
무수히 점 찍는 숨

무량겁의 햇살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