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통도사, 시월의 나한들
한종호
2023. 10. 5. 10:36
무풍한송로를 걸어서
통도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맨발의 산책길은
나와 너를 지우는 기도의 순례길
절마당 가득한
가을 국화꽃 틈새로
가족들의 이름을
공양 올리려는 염원은
시월의 하늘에 닿아 푸르고
인파에 떠밀려도 홀로 고요해
대웅전 유리창으로 보이는
금강계단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갈빛의 좌복에 깃들어
오늘의 백팔배 숙제를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발이 멈춘 곳은
길바닥을 구르다가
홀로 멈춘 듯한
조막만 한
마른 잎 하나
새벽 빗자루질에 쓸리지 않은 듯
용케 인파에 밟히지 않은 듯
몸이 저절로
허리를 구부려
손끝으로 집어든
갈빛 마른 잎 하나
어디로 돌려보낼까
그제서야 옆을 봅니다.
좌측으로 난 돌층계를 오르며
가지 않은 길을 갑니다.
작은 나무 아래 풀섶이 좋아 보여
허리를 구부려 조심스레 내려놓고
고개를 드니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저기서 걸어오시는
자그마한 노스님 한 분
두 손은 저절로 모아져
합창 반배를 하고
또 새로운 글귀가 보입니다.
박상언의 '도자 나한의 미소'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명월료 안으로 보이는
나한의 얼굴들
불빛을 입은 표정들
아라한 앞에
나를 멈추어
시간을 잊고 우두커니
잠시 마애불이 됩니다.
바위가 쪼개져 돌이 되고
돌이 부서러져 흙이 되는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려는 손길이란
흙이 돌이 되려는
나가 나한이 되려는
아라한에 깃든
고려인의 숨결이란
흐르는 생각을 따라서
깃든 마음을 읽으려
나한의 얼굴
언저리에 머물다가
주시는 발효차 한 모금에
나한의 미소가 어리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