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2024. 1. 8. 23:07



출입문 구석에 놓인
작은 접이식 탁자 위에는

기도비
삼만 원 

종이접기로 만든 
돈봉투가 있고

명단을 적는
출석부가 있고

그런데
사람이 없다

기도비를 받는 사람도 없고
돈봉투를 지키는 사람도 없다

각자의 기도비를 종이 돈봉투에 넣고
스스로 자기 이름을 적을 뿐

겨울 밤하늘이 까맣도록
새벽녘 별빛이 또록해지도록

접었던 두 다리를
폈다가 다시 접는 철야정진

법당 안엔 백여 명이 훌쩍 넘는 대중의 
독경소리 침묵 간간히 꽃피는 웃음소리 뿐

기도비는 저 혼자서
밤새 제 청정 도량을 지킨다

이제 산등성이 너머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데
어제 치운 눈길 위로 또 쌓이기 시작하는 하얀 눈

새벽 예불 길에 싸리 빗자루를 제 몸인 듯 놀리며
눈을 치우는 사람은 있는데

밤새 수북이 쌓인 기도비를 
치우는 사람 아무도 없네

기도비는 참 좋았겠다
동틀 때까지 오롯이 참선 정진

한순간도 자리를 뜨지 않고
좌복을 지킬 수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