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화엄경은 바흐와 함께

한종호 2024. 9. 19. 09:27





일과 중
한 시간 불교서적 읽기

내 방 책장
고요한 숨을 쉬는

늘 동경하는
보물 같은 벗과 스승들

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듯
진리의 지도를 더듬어 보는, 여기는

일상의 시간이 멈춘 
시간 너머의 시간

눈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성철 스님의 산을 몇 고비 넘긴 후
법정 스님의 물을 건너가는 순례길

화엄경
화엄의 바다

"너거 엄마는 책 사는데 밖에 돈 안 쓰제?"
수년 전 내 곁에 선 딸아이가 들었던 

보수동 책방 골목에 울리던 
범종 소리

십여 권이 넘는 법정 스님의 책값을 
부르시는 대로 치른 후

책탑을 품에 안고서
좋아서 감추지 못한 환희용약

탄로 난 
나의 본래면목

그런데 무엇에 빗장이 걸려 있었을까
그동안 열지 못한 화엄의 문

오랜 숙제를
일과로 가져온 일

법정 스님의 긴 호흡에
익숙치 않은 이 화엄의 깊이에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가를 서성이다가

다행히 일과란 
해처럼 어김없이 돌아오는 일

무언가 동행이 필요했는지
둘 곳 없는 마음이 들썩이기를

몇 번이고 책장을 덮고는 
괜히 이 방 저 방 기웃거려도 보고

세상의 모든 음악을
검색해 보기도 하다가

여러 날 글숲을 헤매이다가
오늘에서야 한 줄기 별빛을 찾았다

바흐, 화엄경의 긴 호흡에 
동행이 되어 줄 길벗

바흐가 없었다면
이 넓고 깊고 장엄한 화엄의 바다로

나의 이 얕은 호흡이
내디딜 수 있었을까

명동 대성당 음악회
손민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법정 스님의 화엄경과

화엄의 바다와
화엄의 하늘과

늘 하나인
우리가 추는 이 춤을

글숲에서 일렁이던
무명과 번뇌

태초의 어둠과 혼돈이
처음으로 내딛는

고해가 고요가 되고 
거츤 숨이 평화가 되는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