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은 바흐와 함께
일과 중
한 시간 불교서적 읽기
내 방 책장
고요한 숨을 쉬는
늘 동경하는
보물 같은 벗과 스승들
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듯
진리의 지도를 더듬어 보는, 여기는
일상의 시간이 멈춘
시간 너머의 시간
눈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성철 스님의 산을 몇 고비 넘긴 후
법정 스님의 물을 건너가는 순례길
화엄경
화엄의 바다
"너거 엄마는 책 사는데 밖에 돈 안 쓰제?"
수년 전 내 곁에 선 딸아이가 들었던
보수동 책방 골목에 울리던
범종 소리
십여 권이 넘는 법정 스님의 책값을
부르시는 대로 치른 후
책탑을 품에 안고서
좋아서 감추지 못한 환희용약
탄로 난
나의 본래면목
그런데 무엇에 빗장이 걸려 있었을까
그동안 열지 못한 화엄의 문
오랜 숙제를
일과로 가져온 일
법정 스님의 긴 호흡에
익숙치 않은 이 화엄의 깊이에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가를 서성이다가
다행히 일과란
해처럼 어김없이 돌아오는 일
무언가 동행이 필요했는지
둘 곳 없는 마음이 들썩이기를
몇 번이고 책장을 덮고는
괜히 이 방 저 방 기웃거려도 보고
세상의 모든 음악을
검색해 보기도 하다가
여러 날 글숲을 헤매이다가
오늘에서야 한 줄기 별빛을 찾았다
바흐, 화엄경의 긴 호흡에
동행이 되어 줄 길벗
바흐가 없었다면
이 넓고 깊고 장엄한 화엄의 바다로
나의 이 얕은 호흡이
내디딜 수 있었을까
명동 대성당 음악회
손민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법정 스님의 화엄경과
화엄의 바다와
화엄의 하늘과
늘 하나인
우리가 추는 이 춤을
글숲에서 일렁이던
무명과 번뇌
태초의 어둠과 혼돈이
처음으로 내딛는
고해가 고요가 되고
거츤 숨이 평화가 되는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