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
그랭이질
한종호
2025. 2. 8. 08:14
한옥을 떠메고 앉은 우직한 머슴, 주춧돌을 가리켜 그렇게 부르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보았는데 참 적절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집이 제대로 서려면 물론 기둥이 중요하지만 그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 역시 중요하다. 사람들은 기둥에는 눈길도 주고 그 우람함에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은 별로 눈여겨보지 않는다. 어찌 생각하면 서운할 것도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니, 주춧돌을 두고 우직한 머슴이라 부른 것은 제격이다 싶다.
한옥을 지으며 기둥을 세울 땐 맨땅이 아닌 주춧돌 위에 세워 나무로 된 기둥이 비나 습기에 상하지 않도록 했다. 주춧돌을 놓을 때 당연히 돌의 표면이 반반한 모양이어야 쓸모가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그대로 써도 기둥을 세우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바로 ‘그랭이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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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이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려면 돌을 반반하게 깎아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돌을 다루기보다는 나무를 다루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돌의 울퉁불퉁한 모양을 따라 기둥의 밑동을 깎아내고 파내면 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일을 그랭이질이라 하는데, 생각해보면 간단하면서도 절묘한 이치다. 서로 성질이 다른 돌과 나무가 그 어떤 접착제가 없이도 빈틈없이 서로를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랭이질을 제대로 한 두 개의 기둥 위에 널판을 얹으면 그 위를 목수들이 올라가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가 있었다 하니 감탄할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만큼 그랭이질은 고도의 기술을필요로 하기에 대목수 중에서도 눈썰미가 뛰어난 도편수가 맡아서 했다고 한다.
믿음에 있어 정말로 필요한 것이 그랭이질 아닐까? 내 뜻에 그분의 뜻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에 나를 맞추는, 영혼의 그랭이질을 위해서도 나를 잘라내고 깎아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나무 대신 돌을 깎아내려는 것은, 내 뜻은 두고 하늘의 뜻을 바꾸려 하는 것은 서툰 목수의 생각일 뿐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정릉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