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출간 책 서평

질문으로 신학하기

한종호 2026. 3. 16. 10:08

텍스트를 향해 질문한다는 것은 텍스트가 전하는 메시지를 얄 팍하게 수용하기보다는 자기 삶의 정황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이 기 위한 전략이다. 질문은 일종의 묵상이다. 시편은 복 있는 사람 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2). ’묵상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하가’는 단순히 내면으로 침잠하여 자기를 살피는 것 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동원하여 그 말씀의 의미가 몸에 스며 들게 하는 행위에 가깝다. 묵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텍스트를 향해 던지는 질문의 능력이다. 질문은 사유를 심화하고 구조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태도이다. 질문의 능력이 곧 사유의 능력이다.

 

 

복음서에서도 우리는 예수가 제자들이나 무리들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을 마주한다. 예수의 질문 앞에 선 이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자기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전제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집단이 공유하던 관습 혹은 세계관에 기대고 살 때 삶은 편안하다. 예수의 질문은 그런 편안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질문은 ‘네 생각은 어떠 냐’고 물음으로 관습으로 도피하지 못하게 한다. 그 질문에 답을 한다는 것은 인격의 모험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조원태 목사가 성경에서 문제적 인물로 기억되는 ‘요나’와 그를 다룬 텍스트를 깊이 읽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 바로 질문하기이다. 정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텍스트의 심층으로 들어가기 위한 질문인 동시에 자기 삶을 돌아보기 위한 질문이다. 책 제목은 『요나서가 묻는 질문 17』이지만 실은 ‘조원태가 묻는 질문 17‘인 셈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동시에 신산스럽기 이를 데 없었던 자기 삶의 갈피에 깃든 은혜를 발견한다. 질문은 기억의 지층을 뚫는 시추기인 셈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요나서의 심층으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할 뿐 아니라 자기 삶의 실상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정념에 사로잡힌 이들이다.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온몸으로 앓아내는 존재이기에 그들의 언어는 격렬하다. 그들의 메시지는 심판과 위로이다. 요나서가 다른 예언서들과 구별되는 것은 그의 메시지보다 ‘요나라는 인물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가 니느웨에 전하는 메시지는 기껏해야 히브리어 다섯 단어였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회개를 촉구하지도 않고, 심판의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도 않는다. 이것은 전쟁 기계인 아시리아에 대해 품고 있는 예언자의 노골적인 적대감을 암시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로 부름받았지만, 여전히 민족주의적 사고의 틀 속에 머물고 있던 예언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게 한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비롯한 시스티나 천장화를 제작할 때 제단의 가장 두드러진 위치에 요나를 그렸다. 부활의 예표이기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요나는 몸이 뒤로 한껏 젖혀진 모습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경계를 넘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가 느낀 당혹감을 그린 것일까? 요나서는 분열과 적대감이 심화 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신앙인들 앞에 하나의 질문으로 서 있다. 경계선을 넘는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배타적 선민의식에 머물러 혐오의 숙주가 될 것인가?

 

김기석/청파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