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의 오라토리오,은밀하면서도 단호한 예술가의 저항
음악사의 거대한 이름 뒤에 숨겨진 한 인간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경이롭다. 지강유철의 『헨델 극장』은 우리에게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라는 박제된 수식어를 떼어내고,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한 인간 헨델의 생생한 삶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저자는 헨델의 ‘유언장’을 프리즘 삼아 그의 생애를 조망한다. 유언장에 적힌 이름들과 유산의 목록은 단순한 재산 분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자신과 곁을 나눈 이들을 얼마나 깊이 환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고백록이다. 유언장을 통해 만난 헨델은 멀리 있는 거장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곁의 다정한 이웃처럼 다가온다.
그는 자기 시대에 발을 딛고 살았지만, 결코 시대의 통념에 매몰되지 않았다.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헨델은 음악을 통해 시대에 응답했다. 권력의 압박과 대중의 기호 사이에서 그는 음악이라는 언어로 역사가 지향해야 할 정의로운 방향을 가리켰다. 그것은 은밀하면서도 단호한 예술가의 저항이었다. 그 저항의 가장 구체적인 무대는 오라토리오였다.
『헨델 극장』에서 저자는 성서 속에 납작하게 엎드린 채 소개되었던 인물들을 음악을 통해 입체적인 존재로 되살리는 헨델의 열정에 주목한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속에서 성서의 인물들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실존적 존재로 부활한다.
『장기려 평전』으로 한 인간의 삶을 촘촘하게 복원해낸 바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도 그 철저함을 잃지 않는다. 방대한 역사적 고증 위에 에세이적 감성을 얹은 이 책은 단순한 음악가 전기가 아니라, 한 예술가가 어떻게 시대와 불화하며 동시에 화해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길잡이다. 『헨델 극장』의 막이 오르는 순간, 독자들은 웅장한 선율 너머에 숨겨진 인간의 고귀한 품격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ㅡ 김기석/청파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