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잘 지내고 계시지요?
이제 장마철이 되어서인지 대기가 축축한 게 후텁지근해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몸은 나른해져요.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마당가에 심겨진 여러 식물들과 눈맞춤을 하지요. 요즘은 나리꽃과 백합화가 한창입니다. 키 작은 옥매(玉梅)나무에는 오종종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포도도 많이 맺혔습니다. 초가을이 되어 보라색으로 익어갈 것을 생각만 해도 흐뭇해집니다. 매실은 따지 않고 두었더니 하나 둘씩 저절로 떨어지더군요. 가을에 알밤을 줍듯 화초 사이에서 매실을 줍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매실을 손에 쥐어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보고 그 오묘한 빛깔과 모양에 눈길을 주다가 가만히 베어물기도 합니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지면 기분도 따라 상쾌해집니다. 그럴 때면 이현주 목사님의 시구를 떠올리며 혼자 좋아합니다.
유자차를 마신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아무도 몰래
어느 유자나무 위로
내려앉은 햇살을
물에 풀어 마신다.
즐겨 마시는 유자차 한 잔이, 입에 머금은 매실 한 알이 햇빛과 바람과 물이 어울려 빚어낸 것임을 생각하면 삶이 신비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매 순간을 온새미로 누리기에는 우리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요. 그럴수록 잠시라도 멈추어 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질주하다가도 잠시 멈추곤 한대요.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영혼을 기다리는 것이라지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 깊은 지혜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새벽 3시면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말했지요? 얼마나 힘들까. 진중하면서도 편안하게 사람을 대하는 예의바른 분인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은 몰랐어요. 어째 조금 지쳐 보인다 생각만 했지요. 우체국 택배 일을 하면서도 저녁에는 대학에서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잠이 부족할 수밖에요. 그런데도 조금도 힘든 내색은 하지 않더군요. 문득 오래 전 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을 마친 후 가장이 된 나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대학원생 신분으로서 야간대학에서 기초 독일어를 가르치고,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느 여학교에서 성경 과목을 가르치고, 교회에서는 교육전도사로 일했지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나날이었습니다. 잠은 늘 부족했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실존적인 질문으로 인해 마음이 늘 무거웠더랬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모셔야 했고, 태어난 아이들도 잘 돌보아야 했기에 쉴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 해 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그림 한 점을 만났습니다.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만났다고 굳이 말하는 것은 그 그림이 준 충격에서 한 동안 벗어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그림 앞에서 나는 붙박인 듯 오래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로데(Anne-Louis Girodet, 1767-1824)가 1806년에 제작한 '대홍수'(The Deluge)였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살았던 그는 어쩌면 그 시대의 혼란을 대홍수에 빗대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면의 좌측 하단에는 거센 물결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물에 익사한 것인지 이미 시체가 되어 물 위에 떠오른 이의 모습도 보입니다. 한 사내가 나직한 절벽에 서있는 고목을 붙들고 아내와 자식들을 건지기 위해 절망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바위에 완강히 버티어 선 그의 두 다리는 터질듯 긴장되어 있고 공포에 사로잡힌 두 눈은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그는 넘실거리는 물결 위 바위 턱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여인의 오른손을 꼭 붙든 채 끌어 올리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인은 왼손으로 역시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린 어린 아기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습니다. 여인의 몸은 활처럼 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아이 하나가 일렁이는 물살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여인의 목과 머리채를 뒤에서 꼭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기력이 다 빠졌는지 축 늘어져 있습니다.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는 오른손은 피가 통하지 않는 듯 퍼렇게 보입니다. 꽤 긴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내의 등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노인이 매달려 있습니다. 노인의 발은 허공 중에 늘어져 있고 눈뜰 기력조차 없는지 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왼손에는 주황색 돈주머니가 들려 있습니다. 그 완강한 움켜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설상가상으로 그 사내가 의지하고 있는 나무는 그 가족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무게를 다 짊어진 채 심연의 공포를 견뎌내고 있는 그 사내의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요? 뭐라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아팠습니다. 그리고 얼토당토않게 삶이 참 고단하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삶은 참 위태롭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그렇게 난감하게 뒤엉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짊어지고 있는 짐이 무겁다고 투정할 것 없습니다. 훌훌 벗어던지면 시원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금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정성균의 시에 장사익이 엮어 부른 '삼식이'라는 곡입니다.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소낙비는 내리구요 허리띠는 풀렸구요
업은 애기 보채구요 광우리는 이었구요
소코뱅이 놓치구요 논의 뚝은 터지구요
치마폭은 밟히구요 시어머니 부르구요
똥오줌은 마렵구요 어떤 날 엄마 어떤 날 엄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광경이 떠올라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래, 우리 어머니들은 그렇게 사셨지' 하는 생각만 듭니다. 4·4조의 리듬에 "~구요"라는 각운이 이 노래를 듣는 이들의 마음을 다급하게 몰아칩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절창인 것은 그 다음 대목입니다. 갑자기 어린 아이들이 등장하여 맑고도 투명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떼 뿅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오수경 선생의 동시에 박재훈 선생이 곡을 붙인 동요 '봄'입니다. 어머니가 처한 다급한 상황과 무관하게 터져나오는 저 천진한 노랫소리는 마치 삶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합니다.
지로데에서 장사익으로 생각이 마구 춤을 추고 있네요. 힘겨운 조건 속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스란히 자기 삶으로 수납하며 사는 ooo 님의 모습에 내가 적잖이 감명을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투덜거리는 것은 약자의 버릇이라지요? 이 세상이 만들어놓은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뛰어넘어 누가 뭐라든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또 하루 해가 밝았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잘 전달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청안청락하시길 빕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