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톺아보기

대지에서 솟아나는 영성의 향기

한종호 2015. 7. 30. 14:01

김기석의 톺아보기(10)

 

대지에서 솟아나는 영성의 향기

-장 피에르 카르티에, 라셀 카르티에의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기적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원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종교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신이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풀들을 밀어 올리고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자각하고 경험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속적인 기적에, 그 생명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39-40쪽)

 

경계인의 운명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은 늘 이곳과 저곳 사이를 떠돈다.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현실이 자기 동일성에 대한 내적 확신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 참과 거짓, 희망과 절망 사이를 갈마들면서 우리는 자기 나름의 서사를 구성한다. 삶은 만남이고, 만남은 우리 삶의 무늬를 다채롭게 구성한다. 그러므로 나만의 정체성이란 허구이다. 그것은 공동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인간을 가리켜 ‘세계-내-존재’, ‘서로-함께-존재’라 말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 속에 낯설음 혹은 두려움의 감정을 자아내는 타자들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이다. 타자가 없다면 정체성에 대한 물음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타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현존한다. 그들은 가족일 수도, 가까운 친구일 수도, 사회일 수도, 아주 낯선 문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도 주목해야 한다. 시간과 장소는 강한 규정력으로 우리 삶을 조건 짓는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과 오지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상상해보자. 사막에서 태어나 도시 문명을 경험하고 다시 오지로 돌아간 사람은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저널리스트이며 르포르타주 작가인 장 피에르 카르티에 라셀 카르티에 부부가 유럽과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환경 운동가 피에르 라비와 한 주간을 함께 보낸 후에 마치 그의 말을 받아 적듯 저술한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우리의 이런 물음에 답을 주고 있다. 피에르 라비는 1939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남부의 케낫사 오아시스에서 태어났다. 사막 한복판에 섬처럼 떠있는 그 오아시스야말로 피에르 라비라는 존재의 뿌리이자 고향이었다. 어머니는 네 살 때 세상을 떠났지만, 대장장이였던 아버지는 강한 근육과 강철보다 단단한 의지의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눈길을 사로잡던 사막은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의 연속이지만, 그 허허로움은 오히려 내면으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사람을 깊은 침묵에 빠뜨리는 사막의 광대함은 종교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겠다. 지평선, 낙타를 몰고 느릿느릿 걷는 대상들의 모습, 마치 신전의 기둥처럼 수직으로 솟아오른 종려나무,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그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 무늬였다. 절제된 열정과 빈틈없는 논리의 사람인 그는 동시에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하나에 감동할 줄 아는 드문 감성을 갖게 된 것은 그 단조롭지만 굳건한 삶의 리듬이 몸에 배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유년 시기는 프랑스인 교사 부부에 입양되어 오랑으로 떠나면서 끝이 난다. 그의 삶은 두 세계로 분리되었다. 그는 원주민도 아니었고 프랑스인도 아니었다. 도시와 오아시스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경계인일 수밖에 없었다. 옛 세계로부터 벗어나면서 느끼는 상실감, 새로운 관습에 적응해가며 느끼는 고단함을 그는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양부모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이슬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피에르 라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삶은 그에게 정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1954년 알제리 독립 전쟁이 벌어지면서 그의 삶은 풍랑에 휩싸인다. 열렬한 드골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아주 사소한 일로 그를 집에서 내쫓았다. 사막의 아이였던 피에르 라비는 아무런 보호막조차 없이 파리 인근에서 고단한 생존을 이어가야 했다.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하면서 그는 점점 도시적 삶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식비, 차비, 방세를 내기 위해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것, 조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시의 삶은 인간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를 그나마 지탱해주었던 것은 위대한 저자들의 책이었다. 그는 레옹 블루아, 베르나노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테이아르 드 샤르댕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저서를 탐독했고, 대중을 위한 철학 강연회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도시 탈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에 자칫하면 공격적인 사람으로 변할 위기로부터 그를 구원해준 것은 같은 직장의 상사였던 미셸이었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채 살고 있던 미셸의 눈에 피에르 라비는 시인이고, 사색가이고, 문학 천재였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또 다른 자기(alter ego)를 본 것이다. 결혼하던 날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의식의 성장이라는 데 동의한 둘은, 도시를 떠나 고요와 아름다움을 누리는 새로운 삶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피에르와 미셸은 풍요의 환상에 빠진 세계, 덫에 걸린 세계가 의식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제 피에르는 제도화된 종교에 매이지 않게 되었다. 그에게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이 기적임을 자각하는 것이며, 영원이 지금 이 순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에게 신은 “풀들을 밀어 올리고 나무들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40쪽)이었다. 밀알 한 알 속에 대지 전체에게 양분이 될 모든 에너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일까?

 

시골에 정착하기 위한 자금을 융자 받기 위해서는 농업 관련 학위가 필요했기에 피에르 라비는 농업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대지를 수탈하는 농법을 가르치는 학교교육에 절망하고 만다. 농부들조차 산업화의 물결 속으로 몰아넣어 자신들의 뿌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세상이었다.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은 농촌 인구를 흡수해 가면서, 남아 있는 농부들에게 화학 비료, 살충제, 우량종자, 기계 농업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 결과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땅은 오히려 황폐해지고 말았다.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에겐 그것을 오염시킬 권리가 없다. 동물들은 살아 있는 존재이며, 존중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51쪽) 그가 자연을 존중하는 농사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꿈을 이룰 자신만의 장소를 찾던 피에르와 미셸은 허물어진 농가가 딸린 불모의 땅을 구입하면서 마침내 아르데슈에 정착하게 되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의 땀방울이 스며들면서 밭은 살아나기 시작했고 오두막집은 인간미를 띠게 되었다. 흙을 만지며 일을 하는 동안 그들은 밭과 자연 그리고 계절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56)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그들 곁에 역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피에르는 자기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지구의 신성함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고, 몇 가지 혁명을 역설했다. “지구를 수익성이라는 단 한 가지 관점으로 보는 것을 중단하고, 기적으로 이해”하는 의식의 혁명이 그 첫째이고, 대지가 우리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지에게 속해 있음을 자각하는 영적 혁명이 그 둘째이고, “조화로움 속에서 땅을 경작할 다른 방법”을 찾는 기술 혁명이 그 셋째이다(60-61쪽).

 

생태친화적 영성

 

피에르 라비는 서양인들이 1칼로리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 12에서 15칼로리에 이르는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 3톤의 비료를 만들어 내기 우해서 3톤의 석유를 사용해야 하는 등의 값비싼 농업을 창조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피에르는 수익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농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약탈농업과 가축들의 집단적 사육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는 결국 생명의 아름다움을 찬탄할 줄 아는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잠식할 것임이 분명했다. 이런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그가 꼭 붙든 가치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는 자각뿐이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물이든 모두 신성합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그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성스러움은 우리의 심금을 울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행복입니다.”(76쪽)

 

환경론자인 피에르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환경 보호론자들을 거부한다. 그들은 일쑤 합리성을 강조하지만 세계의 신성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생명에게 ‘예’라고 대답하는 일”이라는 시몬스 목사의 말은 피에르 라비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의 환경 농업 혹은 환경 운동은 생명 운동이고 영성 운동이다.

 

피에르 라비는 홀로 자족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죽음을 향해 치닫는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몽상가이다. 하지만 이런 몽상가가 많을수록 세상은 건강해진다. 피에르는 시골에 정착해 살며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정에 1헥타르 운동’을 제시한다. 사방 100m의 땅만 있으면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농업의 열쇠는 퇴비 만들기이다.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만을 이용해 만든 퇴비는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인류, 겸손함이라는 단어의 뿌리가 부식토를 뜻하는 ‘humus’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르데슈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에 대한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나누어주기 위해 ‘대지와 인간애’라는 단체를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자기 밭을 일구는 방법, 퇴비를 만들고 장소에 맞는 품종을 고르는 방법, 그리고 농사 달력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피에르는 ‘모든 곳에 오아시스’ 운동도 시작했다. 삶의 안전이 보장되던 오아시스, 거주자들에게 늘 풍부한 생명을 공급해주고 거주자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던 오아시스를 되살리는 것이 그의 꿈이 되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값비싼 물건들로 가득 채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는 곳, 노인이 소외되지 않고 아이들이 병들거나 부모가 없을 때 공동체가 돌봐주는 곳, 오아시스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피에르 라비의 ‘오아시스 운동’은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 스와라지’와도 통한다. 둘 다 도시의 산업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 끝에 얻은 결론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산업사회는 경쟁과 착취를 구조화하게 마련이고, 그 속에서 인간성은 더욱 황폐화할 수밖에 없다. 공을 이룬 후에는 머물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처럼 피에르 라비는 늘 새로운 변화를 향해 투신한다. 그는 이후에도 ‘교육과 실천을 위한 국제 모임(CIEPAD)’, 재래종 씨앗들을 보존하기 위해 조직된 ‘피에르 라비의 친구들’을 통해 생명 농업 전문가들과 환경 운동가들을 연대해내는 역할도 했다.

 

세계화의 덫에서 벗어나는 법

 

그의 활동 영역은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가 부르키나파소의 농부들과 함께 이룬 생명 농업은 가히 아프리카의 희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르키나파소인들은 백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크든 작든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비참하지는 않았다. 백인들의 소유에의 욕망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서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주입되면서 그들의 삶은 황폐하게 변해갔다. 농부들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그런 작물들은 비료와 살충제 없이는 재배될 수 없었다. 세계화된 시스템은 약탈과 비료와 살충제 값을 제하고 나면 그들 손에 쥐어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피에르 라비는 농부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전통적 삶을 배우는 것으로 생명 운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을 설득해 작은 댐을 쌓아 빗물이 흙에 스며들게 하자 말랐던 우물이 되살아났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고, 퇴비를 만들어 땅에 뿌리자 땅이 비옥해졌다. 부르키나파소의 농부들의 가슴에 심어진 희망의 씨앗은 민들레 홀씨처럼 국경을 넘어 모리타니, 튀니지, 나이지리아, 말리까지 번져갔다.

 

튀니지 동쪽 가베스 만에 인접한 오아시스를 되살린 일은 특히 인상적이다.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고, 인산염을 생산하기 위해 화학 공업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하수는 바닥이 나고 오폐수는 지중해 연안으로 흘러들고 있는 상황을 목도한 피에르 라비는 오아시스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만성적인 유기물 부족에 시달리던 오아시스 주변의 땅은 잘게 부순 종려나무에 염소 똥을 섞어 발효시킨 퇴비를 뿌려주자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퇴비를 머금은 흙이 습기를 더 오래 간직하게 되자 물줄기도 되살아나게 되었다. 피에르는 그런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현지 농부들과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진척시켜 나갔다. 문제의 해결책은 발전된 기술이 아니라 대지를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영성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우리들도 경청할만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영성이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 몸과 손은 내 영혼이 하고자 하는 일에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172쪽)

 

피에르 라비가 우리 시대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소박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소박한 삶은 그가 유목민들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습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마음이야말로 유목민의 생존을 위한 지혜였다. 사막의 순례자였던 테오도르 모노는 사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한 사람에게 하루 2.5ℓ의 물, 간소한 음식, 몇 권의 책, 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 저녁은 전설, 이야기, 웃음 가득한 밤샘으로 이어진다. 나머지 시간은 명상과 정신 수양으로 보낸다. 두뇌는 오직 한 곳을 향하고, 드디어 우리는 하찮은 일, 쓸데없는 것들, 수다스러움에서 벗어난다.”(테오도르 모노, 《사막의 순례자》, 2003, 현암사, 71-71쪽) 성서의 인물들이 생의 고빗사위를 만날 때마다 광야를 찾았던 것은 어쩌면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잃어버렸던 생명에 대한 직관을 얻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더 많이! 당신에게는 소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는 무너지고 맙니다!”(184쪽)

 

이것은 피에르 라비를 가장 화나게 하는 슬로건이다. 세계가 조화로운 곳이 되기 위해서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현인인 노자는 “내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면서 자비심과 검소한 삶과 중뿔나게 세상 앞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 했다. 검소한 삶, 혹은 소박한 삶은 단순히 물자에 대한 절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物)의 근본이 우주의 중심과 이어져 있음을 자각하는 마음과 관련된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피에르 라비는 ‘농부 철학자’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땅에 깃든 신성함을 일깨우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의 문제는 물이나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그것을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정신의 타락이라고 지적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써 먹을 지식이 아니라, 경외감이다. 만물 속에 깃든 생명의 신비에 눈을 뜬 사람은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종교인들은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조심해요! 살아 있는 것들을 건드려선 안 돼요. 흙과 숲, 그리고 물론 물도.’”(192쪽)

 

“우리는 이 행성을 착취하고 동물들을 지배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지와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199쪽)

 

인간은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한다. 이것이 이 단어의 본래 뜻과 관계없이 욕심의 크기를 일컫는 표현이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영장靈長’의 말 뜻 그대로 ‘영묘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라면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카르티에 부부가 들려주는 피에르 라비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계-내-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새겨진 오아시스의 기억이 어떻게 새로운 오아시스를 향한 꿈으로 진화해 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에덴의 동쪽에서 방황하던 가인은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도시는 수많은 가인들을 빚어냈다. 그들이 이루어내는 일상의 풍경은 폭력과 부패이다. 피에르 라비는 새로운 시작이 가능함을 삶으로 증언해 보이고 있다. 책장을 덮기 전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찬탄이나 하고 있다니…”라고 써넣었다. 피에르 라비는 새로운 세상의 이정표로 우뚝 서있다. 그를 가리켜 “이 남자는 성자와 같다. 그는 분명하고 맑은 정신의 소유자이며,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시적 아름다움은 저마다의 삶에 열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던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지휘자인 예후디 메뉴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피에르 라비, 그의 이름은 이제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