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지극히 평범한 한나, 비범한 노래를 부르다

한종호 2016. 12. 14. 13:22

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7)

 

지극히 평범한 한나, 비범한 노래를 부르다

 

2016년 12월의 대한민국, 평범한 시민들은 광장의 평화로운 촛불 혁명을 이끌고 있다. 평범함은 지리멸렬하지 않았고 지배 세력들의 사악한 동맹과 결탁을 부끄럽게 만들며 비범함을 드러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광장의 촛불이 비범함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사무엘서의 한나의 기도와 중첩되었다. 한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었다. 때는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가 거의 끝나고 왕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역사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끝자락은 암울했다. 안으로는 영적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의 타락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였고, 밖으로는 강력한 철제무기로 무장한 블레셋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제사장들은 올바른 예배에는 도무지 관심 없었고, 물질적인 욕심과(사무엘상 2:12-17) 그릇된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에 바빴다(2:22-26). 이 혼란의 시대를 뚫고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세워진다. 새로운 시대를 잉태한 위대한 인물 뒤편에는 불임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견딘 여성 한나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사회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슬픔은 고통이었건만, 한나의 남편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로 인해 그녀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었다. 그녀의 괴로움과 간절한 기도는 사무엘의 출생으로 응답되었다.

 

 

 

 

이후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일평생 여호와를 섬기도록 하나님께 드리기로 다짐한다. 놀랍게도 그녀의 기도는 개인적인 감격과 감사를(2:1-5) 넘어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고 예고하는 노래가 되었다(2:6-10). 그래서였을까. 한나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훗날 ‘마리아 송가’(누가복음 1:46-55)의 원형이 된다. 그렇게 한나의 기도는 신앙공동체 속에서 읊조리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이며 노래였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2:6-10).

 

사무엘의 출생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렸던 감격의 기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며, 주님의 구원으로 인해 기뻐하는(2:1) 목소리는 불임의 고통을 끝내고 삶의 반전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노래였다(2:5).

 

그러나 그녀의 기도 후반부는 개인적인 고통의 경험을 넘어서 기존의 세상 질서를 엎으시고 반전의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 선포로 확장된다. 한나에게 여호와는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이다(2:3). 때문에 그녀에게 여호와는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교만한 자들의 삶을 엎으셔서 평등과 균형을 만드시는 분이다. 풍족하던 자들, 많은 자녀를 가진 자들, 귀족 계층들과 대비되는 넘어진 자들, 임신하지 못하던 자들, 굶주리던 자들, 가난한 자들, 빈궁한 자들의 삶이 반대로 뒤집혀진다. 기존의 사회 질서와 권력을 옹호하는 자들에게는 혁명적이다. 그러나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2:6) 여호와는 인간의 체제 안에 갇히신 분이 아니라 언제든 자기 뜻에 따라 반전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이다.

 

한나는 기존질서를 해체시키려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타락의 민낯을 드러낸 제사장들의 수치스러운 행태들이 빚어낸 현실을 지켜보며 변화의 주도적 힘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노래했다. 한나는 삶의 밑바닥에서 도무지 탈출할 수 없는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행동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했다. 그녀는 “땅의 기둥은 여호와의 것”(2:8)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으니 새로운 변화의 바람도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는 새로운 질서 개편이 있을 것을 꿈꾸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악인들을 암흑 속에서 잠잠하게 하실 여호와, 그러나 경건한 자들을 지키시는 여호와를 한나는 믿는다. 하여 한나는 자연의 힘을 통제하시는 여호와가 재판관이 되셔서 땅 끝까지 심판하실 것을 선포했다. 그녀의 기도 끝에 느닷없이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2:10)라는 선언이 이상하지만, 이 말에는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는 혜안이 담겼다.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해 높아졌다”(2:1)라는 첫 절의 고백과 어울리게 기도의 끝맺음은 장래 일을 기대하는 선포적인 언어였다.

 

아직 왕이 없던 시대였지만, 한나는 장차 세워질 왕을 기대한 것이다. 그녀는 기름부음 받은 왕이 누구라고 이름을 지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엘서 끝에 이르러 다윗 집안을 통한 영원한 왕권을 약속받은 다윗의 노래는(사무엘하 22:1-51)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듯 마주보고 있다. 결국 한나의 기도는 불임이라는 개인적인 문제 해결과 감사를 넘어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악한 질서를 재편하실 하나님을 선포하는 기도가 되었다. 그리고 겹겹의 세월을 지나며 억압당하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좌절되지 않도록 위대한 기도로 우리 곁에 남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시대(3:1), 평범했던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서 두 시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지금 찬바람 몰아치는 광장에는 평범함이 모여 비범함을 낳고 있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