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최초의 여성 예언자 미리암을 잊지 마오

한종호 2017. 4. 15. 10:04

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7)


최초의 여성 예언자 미리암을 잊지 마오


사람이든 사건이든 기억은 약속과 다짐을 동반하곤 한다. 지나간 역사의 인물을 기억하여 지금여기로 불러내는 것은 현실의 경험을 새롭게 하여 공공의 반성적 성찰을 위함이다. 주전 8세기 폭력과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미가 예언자가 기억해낸 인물들이 있었다. 12 소예언서들 중 가장 중심에 위치한 미가는 ‘남왕국의 아모스’, 또는 ‘작은 이사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남 유다의 사회정의를 파탄으로 몰고 간 당대의 정권(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 미가 1:1)을 향해 거침없는 고발을 퍼부었던 예언자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변론하겠다는 여호와의 뜻을 전하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묻혔던 첫 여성 예언자 미리암의 존재를 사람들의 잠자던 기억 속에서 불러낸다. 모세의 누이로서 출애굽과 광야의 여정이후 언급되지 않았던 이름 미리암이 거명된다. 그것도 모세와 아론의 이름과 함께 나란히(6: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종노릇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미가 6:4)


이 신탁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예언 전통에서 미리암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계시의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한 예언자였음을 똑똑히 밝힌다. 그러나 대체로 신앙의 독자들은 미리암을 모세의 누이로만 기억할 뿐, 그녀가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활동한 것을 지나쳐버리곤 한다.


왜 우리는 미리암을 최초의 여성 예언자로 즉시 기억해내지 못할까? 미리암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자로 기록되었지만(출애굽기 15:20), 사사시대의 예언자이며 사사였던 드보라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경 이야기에서 일곱 번 등장하지만, 모두 간결하게 언급되고 무대에서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출애굽기 2:4, 7-9; 15:20-21; 민수기 12:1-16; 20:1; 26:59; 신명기 24:8-9). 그러나 비록 작은 분량의 기록일지라도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미가 예언자의 입을 통해 다시 전해진 것처럼, 미리암의 예언자적인 사명은 가볍지 않았다.





미리암의 이름은 그녀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듯 보이는 구원의 중요한 시점들을 서로 연결시킨다. 미리암의 정확한 히브리말 발음은 “미르얌”이다. ‘쓰다’ 또는 ‘모질다’라는 뜻의 “마르”와 ‘바다’라는 뜻의 “얌”의 합성된 형태가 “미르얌”이다. 출애굽기 내러티브 흐름에서 ‘물’은 중심적인 은유다. 미리암은 어릴 적부터 물과 인연을 끊을 수 없는 모질고 혹독한 바로의 폭압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성장했다. 이집트의 바로가 히브리 노예들의 폭발적인 인구성장에 두려움을 느끼고 인구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태어나는 모든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나일 강물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다(출애굽기 1:22). 바로의 영아대학살 정책이 실행되는 절체절명의 시점, 어떤 레위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다(2:2).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모세였다


레위인 부부는 바로의 명령에 불복종했지만, 더 이상 아기를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아기의 어머니는 갈대 상자를 만들어 방수 처리하고, 거기에 아기를 눕혔다. 그리고 남자 아기의 누이는 상자를 나일 강에 띄우고 따라가며 지켜보았다(2:4). 아슬아슬한 상황, 마음 조리며 따라갔을 아기의 어린 누이는 결정적 순간을 만나게 된다.


때마침 바로의 공주가 강가에 나와 있었다. 공주가 갈대상자에서 울고 있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를 발견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것을 지켜보던 소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주에게 가서 유모를 소개하겠다고 제안한다(2:6-8). 소녀는 대담했다. 한참 후에나 이름이 밝혀질 소녀 미리암이 대화의 주도권을 갖고 공주를 설득했고, 자신의 어머니를 공주에게 소개시켰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소녀 미리암의 민첩한 판단력과 지혜는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할 어린 생명을 구했다. 그뿐인가, 단절될 뻔한 가족관계를 묶어주는 도구였다.


이후 미리암은 이야기 중심에서 사라졌다가 ‘홍해’(히브리말, “얌-쑤프”, ‘갈대의 바다’, 13:18)를 건넌 후에 다시 등장한다. 이때 미리암은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했고(15:19),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15:20)으로 소개된다. 미리암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기록으로 남은 여성 예언자들(사사기 4:4, 드보라; 열왕기하 22:14, 훌다; 이사야 8:3, 이사야의 아내; 느헤미야 6:14, 노아댜) 중에 첫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대의 다른 여성들과 달리 독특했다.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결혼한 여성이며 남편과 자녀를 두었기에 이무개의 아내나 어머니로 소개지만, 미리암은 결혼한 여성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은 이른바 ‘바다의 노래’(15:21)를 부르며 여성들을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예언자였고 음악가였다. 예언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탬버린)를 잡고 나서자 모든 여인들이 탬버린을 들고 동그란 원을 그리며 함께 춤췄다(15:20). 이때의 현장을 상상해 보았는가? 고단했을 두 발은 진흙으로 더러워졌지만, 구원과 자유를 얻은 최고의 순간에 미리암의 인도를 따라 모든 여성들은 춤추기로 작정했다. 이때 미리암이 회중을 향해 노래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양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5:21)


백성이 바다를 건넌 후 모세가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노래를 공동체와 함께 불렀을 때, 모세가 불렀던 첫 마디는 미리암의 노래와 같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5:1) “내가 찬송하리니”로 시작된 모세의 찬양은 미리암의 인도에 따라 공동체가 함께 불러야할 구원의 벅찬 감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름에 ‘바다’(“얌”)를 품었던 “미르얌”, 그녀는 히브리 노예의 어린 생명들에게 죽음의 강이었던 나일 강에서 동생 모세를 구하려고 민첩한 지혜를 발휘했던 소녀였다. 이제 그녀는 예언자가 되어 위협적인 바다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기뻐하며 회중을 인도하고 있다. 그녀는 확실히 모질던 옛 세월과 현재의 구원을 연결시키는 물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단한 광야 여정 때문에 이스라엘 후손들이 선물로 받은 자유와 구원의 감격은 시들해졌는가. 지금까지 조화로운 지도력을 보여준 모세, 아론, 미리암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이것은 미리암과 아론이 구스(에디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취한 모세의 결혼을 비방한 일에서 시작되었다(민수기 12:1). 모세의 아내는 미디안 족장의 딸 십보라였기에 모호하다. 마치 모세가 두 번째 아내를 맞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세의 두 번 결혼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해석자들은 십보라가 구스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여겨 구스 여자와 십보라를 동일인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뒤늦게 모세의 결혼을 문제 삼았을까. 문제는 모세의 결혼이 아니었다. 아론과 미리암의 속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가 흥미롭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12:2)라고 말한다. 지도력 문제를 둘러 싼 가족 간의 갈등인 셈이다. 이 말을 여호와가 들으셨다. 이 때문에 여호와는 세 사람을 회막으로 부르셔서 모세를 “나의 종 모세”라고 칭하시며 모세의 독보적인 지도력을 확인시키셨다(12:4-8).


아론과 미리암에게 진노하신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피부병을 앓게 하셨다(12:9-10). 미리암은 모세의 중보로 회복되지만, 이스라엘의 캠프 밖에서 일주일 동안 격리되어야 했다. 이때 백성들은 그녀가 다시 캠프로 돌아올 때까지 행진하지 않고 기다렸다(12:15). 이후로 이스라엘이 신 광야의 가데스에 머물렀을 때 미리암이 죽고, 거기에 매장된다(민수기 20:1). 그때 거기서 마실 물이 없어 온 회중이 불평했고,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쳐서 샘물이 솟아나 짐승들까지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로 아론과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통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 이른바 므리바 사건이다(20:5-13).


이후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입성하기 직전 모세의 지위는 여호수아에게(신명기31:7), 아론은 엘르아살에게 계승된다(민수기 20:26). 구원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예언자였던 미리암을 누가 계승했는가? 드보라에 이르기까지 기록이 없다. 미리암의 선지자적인 활동의 직접적인 기록이 없어 신앙의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거나 기억되지 않지만, 그녀는 모세와 아론과 나란히 백성들을 인도하며 지도력을 발휘한 예언자였다. 다행히 이것을 기억한 미가 예언자의 기록이 남았기에 우리는 다시 결혼하지 않은 자매, 최초의 여성 예언자 미리암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미리암의 뒤를 이어 예언자적인 소명을 간직하고 하나님 말씀을 나누는 벗들과 구원의 감격을 구성지게 노래하고 싶다. 그때 혼돈의 바다를 마른 땅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구원을. 그 후 1,500년의 세월 지나 죽음과 어둠의 장막을 뚫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그리고 또 다시 4월, 부활의 소망을 기다리며 혼돈과 어둠의 시간을 견디는 모든 이들과 함께.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