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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길 위의 교회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by 한종호 2018. 11. 1.

길 위의 교회(2)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 제 1회 임진강 민통선 생태탐방로 트레킹 후기 -

1.

날이 흐렸다. 꾸무럭한 하늘이 먹구름 새로 간간이 빗방울을 떨어뜨리는 이른 아침 식구들과 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일산까지 내처 달리는 동안 비가 많이 내리면 어떻게 할까 의론들을 했다. 자유로에 들어서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급기야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단톡방에 날씨 관계로 9km 코스를 6km로 줄였다는 임진강 트레킹 안내소 측에서 알려온 소식이 떴다. 그래도 뭐 그 정도 걸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닌가.

 

다행히 임진각에 도착할 쯤엔 비가 멎었다. 일찍 출발한 관계로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임진각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몇 년 전 가족들과 와 보았다. 망배단이며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노래가 새겨진 노래비며, TV에서 많이 보았던 통일의 염원을 담은 노란 리본들이 매달린 울타리며 6.25 이후 국군 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임시로 가설됐던 자유의 다리며, 탄환에 벌집이 된 채 멈춰진 녹슨 기차며 경의선 철로 분단선의 자취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중국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몰려들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이며 강의 이쪽저쪽에 설치된 철조망 울타리며 강을 따라 펼쳐진 젖은 산과 논 다락과 마을들의 풍경은 아스라한 게 뭔가 아득한 비현실처럼 느껴진다. 분단이고 민간인 통제고 너무나 오래 된 나머지 자연의 일부분처럼 이제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현실이 돼버린 아득함과 아스라함이다. 철조망을 뺀다면 손에 닿는 거리에 펼쳐진 이 풍경에 이상스러운 점은 없다. 이 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그저 흔한 가을 풍경일 뿐이다. 이제 경의선이 복원되고 기차가 운행된다면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까? 남과 북 모든 곳의 역사는?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는 시조도 있지만 의구한 산천이란 눈앞의 이 산천은 아닐 것이다.

 

현재 경의선의 민통선 이남 최북단은 임진강 역이고 민통선 너머에 도라산 역이 있다. 남북한 관계자들의 통행은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도라산을 지나면 비무장지대 너머 장단 역, 판문 역, 봉동 역, 손하 역 다음이 개성 역이니 하나, 둘, 셋, 넷 겨우 다섯 정거장이다. 거기서 26개의 역을 지나면 평양이다. 우리는 이 철도를 경의선이라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평양과 부산을 잇는 철도라 평부선이라 한다. 이름을 뭐라 붙이든 그것이 뭔 상관이겠는가 마는, 이 작은 나라에서 분단이 이렇게 고착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의아스럽다. 작아서 가능한 것인가? 작은 것들의 고집스러움? 모든 이러한 의아스러움들아 빨리빨리 사람들의 뇌리를 흔들어다오.

 

2.

일행은 속속 도착했다. 자유인교회와 지혜교회에서 모인 사람은 35명. 이들이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뭘 시작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로선 막막하기도 하거니와 사실 무얼 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설마 무엇을 안 하자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겠나. 무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안 하자는 것도 아닌 그 사이에 무엇을 함이 있다! 있으려나? 도무지 쑥스러워 말장난 같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함과 그렇다고 무엇을 아니 하고자함도 아니라함 사이, 두 부정 새에서 모종의 긍정이 출현하리라는 믿음이 있다.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한답시고 길을 나선 것이 무슨 캠페인도 아니고 거창한 프로그램이랄 수도 없다. 그냥 걷는 것뿐이다. 탈(脫)예배당이라든가 탈(脫)교의라든가, 호연지기(浩然之氣)라든가 길 위의 사상, 무위(無爲)의 위(爲)라든가 하는 말들을 불가피하게 갖다 대 봤지만, 그건 그저 끌어다 붙인 것이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길 위의 교회를 위해 그럴듯한 한마디를 내놓음으로써 걸음을 시작해야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또 자라목 들어가듯 난감해지리라. 그러나 사람들을 모아 길 위에 나섰으니 화두(話頭) 비슷한 걸 던져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하는 조바심으로 생각해둔 게 있긴 있었다.

 

 

 대충 ‘트레킹이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준비해 두었다. 이 뜬금없는 질문은 얼마 전 화제를 모았던 누군가의 칼럼에서 표절해온 것이다. 사실 무슨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니라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함에 있어, 메뚜기 한 무리 같은 우리들 모두의 조바심을 덜어주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다른 말로 바꿔도 그 말이 그 말인 ‘트레킹이란 무엇인가?’는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다. ‘걷는다는 건 무엇인가?’ ‘길이란 무엇인가?’ ‘몸이란 무엇인가?’ ‘고독이란 무엇인가?’ 대답이 있을 리 있나. 그러나 이러한 대답 없음으로 모든 의문을 차단하고 그야말로 닥치고 걷는 행위 속에서, 과연 이러한 걸음이 쌓이고 쌓이면 거기서 뭔가 스스로 떠오르고 생각하게 되는 의미가 저절로 생겨나리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의 대회당이 아닌 광야의 한적한 길에서. 모든 앎(소유)의 서사가 끊어진 자리에서 태초와 이어지는 시원(始原)의 첩경, 그 가벼움과 신비와 신선한 상쾌함! ‘아! 이런 것도 있네.’라는 식으로. ‘아! 이런 것도 예배가 되네.’ ‘아! 이런 것도 기도가 되네.’ ‘아! 자기 발견이 곧 자기부인이네.’ ‘아! 이런 것을 통해 발견하는 재미가 있네.’ 온갖 ‘맛있군(MSG)’에 중독돼 혀의 감각을 상실해버린 사람이 어쩌다 먹게 돼버린 박한 음식에서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깨달음으로 본래 있음으로 충분한 고유의 맛을 느끼고 상실된 미각을 회복하듯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또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는가. 하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아부할 대상도 없이 말장난을 해대는 아첨꾼이 되긴 싫다. 하긴 교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 하면 세상 어떤 사람들은 그딴 걸 이제 따라하느냐 웃을지 모르니 더욱 하기 싫어진다. 뭘 해도 새로운 걸 해보려면 이런 주눅이 든다. 무책임한 주변머리 없음이거나 실력 없는 아마추어만 같아 곤혹스럽다. 트레킹이란 고독한 것. 마음속에 있는 것. 나를 구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임진강 올레길 안내소의 안내원이다.

 

3.

안내원들은 대개 초로(初老)의 남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해설사’라 소개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이런 해설사들을 볼 수 있다. 능숙하게 일정을 설명하더니 일행을 3열종대로 세우고 인원점검을 한다. 끼어들 여지가 없다.(그래 그냥 가자. 허전하긴 하지만 의미 진지 설명은 여기서 체념이다.) 우리 35명에 개별로 온 부부가 끼어 있었다. 트레킹을 자주 해온 듯 준비된 옷차림이었다.(한 팀이라지만 탐방이 끝날 때까지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사탕을 주었을 때 손을 짧게 내밀어 받으며 고맙다 했을 뿐,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충실했다.) 일행은 가슴에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라 새겨진 노란 천을 두르고 안내원을 따라 민통선 통문으로 갔다. 철조망이 쳐진 울타리 문이 열리고 양쪽에서 소총을 멘 초병 둘이 나타났다. 철모 밑 희멀건 얼굴에 볼 살이 통통하다. 삼엄한 곳을 지키는 군인들인데 웃음이 난다.

 

강변을 따라 타작 철에 내린 비로 하루 드팀 열흘 드팀이 돼 놀고 있는 황금빛 논 다락이 펼쳐져 있다. 강둑을 따라 철조망이 쳐있고 비포장 탐방로가 개설되었다. 순례자들의 발길에 패이고 빗물이 고여 질척인다. 해설사는 앞과 뒤 두 사람이 붙었으나 서로 조율이 잘되지 않았다. 앞선 초로의 남자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다는 데 설명 해주고 싶은 열의가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비가 뿌려 대면서 우산을 펼쳐든다 비옷을 꺼내 입는다 하는 통에 대열은 길게 흩어지고 해설은 무용이 돼버렸다. 모든 게 이렇다. TV 다큐로 보았던 임진강 생태탐방로로 이미 해설은 충분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둘둘 삼삼오오 혹은 혼자. 일행은 추적거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사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민통선 내에는 촬영이 금지인데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군인 한사람이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삭제하는 걸 확인하는 임무를 띠고 파견 됐다.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굽니까? 모두의 집중된 궁금증. 접니다, 벌써 삭제했어요. 그래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 길 위에서 가끔 상영되는 소동은 오늘도 싱겁게 끝났다. ‘여군(女軍)이 다 지켜봤는가보다’며 함께 웃었다. CCTV는 여군들이 지켜보는 데 가끔 나이든 남자들이 아무생각 없이 소변을 참지 못해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는 민망한 희극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해설사는 여군이 다 보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었다. 그것도 풀 칼라(full color)로! 다시 걷기 시작. 비속의 길은 질척해 일행의 행로는 묵묵해졌다. 마치 이런 순례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다행히 6시간짜리 길을 3시간으로 단축한 트레킹은 적당한 중간에 끝났다.

 

4.

인적 없는 시골 마을 정차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안내원 아저씨는 여기서 문산으로 퇴근한다고 했다. 또 다른 신학대학원 상담 과정을 다닌다는 안내원 여자는 금촌이 집이라 했다. 이성복의 「금촌 가는 길」이라는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그건 금촌에 대해 나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이니 몰라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따라온 차를 타고 돌아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뭔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들었는지 누군가 짧게나마 설교를 해주셔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설교를 중시하는 풍토로 신앙(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건 그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건 여기선 그것 말고는 별 볼일 없다는 말도 된다. 그 말은 다른 데서는 설교(만)를 뺀 나머지들이 설교를 빼고도 내세울만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설교(만)를 중시하는 목회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 바로 그걸 하지 않아보려는 것이다. 설교 말고도 내세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마저도 내세울 게 아니다 싶어서다. 사는 데 필요한 건 설교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설교가 사는 일에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작금의 설교만 빼고 나머지가 중요해진 교회의 현실이 증거가 아닌가. 그러나 그나마 그것도 시들해져버린 지금 새로운 길은 고전적 설교의 부흥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또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하나. 차라리 이성복의 「금촌가는 길」의 한 구절을 읽어줄까.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깨어나야 푸른 잎사귀가 될 수 있을까

기어이 흔들리려고 나는 全身이 아팠다

어디서 깨어나야 그대 내 잎사귀를 흔들어 줄까

그대 손잡으면 그대 얼굴이 지워지고

가슴으로 걷는 길

얼음장 밑 환한 집들

 

지혜교회 정 전도사가나 대신 나섰다. 독일에서 13년 공부하고 돌아와 가까이 친하고 싶은 목사를 찾다가 발견했다. 비슷한 말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발견은 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대충 그런 길을 가는 것만 같은 것이었다. 대충 그런 길을 가는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다. 여러 칭찬의 말은 민망했지만(한 팀 아닌 부부가 옆에 있어 신경이 쓰였다. 이 사람들 웃기네! 할까봐.), 고마운 부분이다. 대충 그런 길을 가는 척과 그런 길을 가는 것의 차이는 뭘까? 고독의 차이? 우리가 걷겠다고 나선 길이란 우리가 지나온 저 진흙탕 길이 아니라 본래 이런 길일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고백일지라도. 버스가 도착해 일행은 작은 버스에 꽉 기름을 짜고 들어차 마을길들을 곡예하며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임진각으로 돌아갔다. 승차장에 내리자 곧바로 우박과 함께 격렬한 비가 쏟아진다. 우리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지혜교회 교우들은 파주시내로 자유인교회 교우들은 근처 두부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포로 이사 와서 새로 피자집을 연 집사님 댁에 들러 교우들과 이야기 꽂을 피웠다.

 

 

5.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라는 책이 있다. 아는 목사님이 쓰신 전도용 책이다. 신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기 어렵고 곤혹스러운 사람들의 시대에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신에 대한 신앙을 붙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전신이 아플 때가 있다. 무력감과 함께 서러움이 밀려든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난 이미 다 수락했는데 계속해야만 하는 건가요? 그러면 차라리 돈이라도 주시든지. 아니면 사람이라도. 아니, 아니 용기(勇氣)라도.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열심히 함께 걸었던 지혜교회 병관 형님 곁에서 적당히 모른 척 걸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가슴으로 걷는 길, 고독하지만 함께 있어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리하여 대충 그런 길이 아니라 그런 길을 가는.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내달 트레킹 땐 둘러앉아 한 사람 한 사람 말을 시켜보고 싶다. 살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말들에 대하여. 우리들 작고 여린 가슴들 속에 하나님으로 깃드신 하나님에 대하여.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어린 생명 다복(多福)을 위하여.

 

*다복이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임신 중이라 약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는 건강하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씩씩하게 건강을 회복해 아기를 잘 보호하고 순산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1. 교회, 길을 걷다 http://fzari.tistory.com/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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