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6 요단강의 쇳소리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6) 요단강의 쇳소리 “당신은 누구요?” “나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이의 소리요”(요한복음 1:19-28). “당신은 누구요?” 예루살렘 제관과 레위지파 사람에게 광야에서 서성거리는 미치광이의 대답은 중요치 않았다. 사실이냐 아니냐,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그자가 자기들의 법망에 걸리겠느냐 아니냐가 문제였다. 그자가 누군인들 무슨 대수인가? 요컨대 어떻게 저자의 입만 다물게 할까 그것이 전부였다. 지난 30년, 한국 교회에는 많은 소리가 있었다.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있었다. 마치 양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목자는 코를 골고 있다며, 목자 대신 싸움을 벌이던 개들의 소리와 같았다. 얼어붙은 강토를 스산하게 휩싸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놀라 달빛타고.. 2016. 2. 18. 빵을 주랴, 자유를 주랴?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5) 빵을 주랴, 자유를 주랴? “여러분이 나를 찾는 것은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6:24-35). 16세기 스페인의 세빌랴 라는 도시에 예수가 나타나셨다. 종교 재판과 마녀 사냥이 판치던 그 곳, 철저한 가난을 부르짖던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아, 국왕과 성직계의 미움을 받던 개혁가가 날마다 광장에서 불타 죽던 도시에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그곳 추기경은 당장 예수를 체포하여 지하 감방에 가두고 한밤중에 예수를 찾아와 따진다. 도스또옙스키의 《카라마죠프가의 아들들》에 나오는 유명한 ‘대심문관’ 장면이다. 세빌랴의 추기경이 예수를 설득하는 교리는 이것이다. “자유와 지상의 빵과는 어떠한 인간에게나 양립할 수 없소. 자기네들.. 2015. 11. 10. 처음부터 망쳤구나!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4) 처음부터 망쳤구나!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소?”(요한복음 2:13-25). 너무도 변해 있었다. ‘빛의 아들들’과 섞여 사느라 십여 년을 멀리했던 성전이기는 하지만 이건 시장 바닥이었다. 해방절이 다가오는 때라 제관에게는 대목이라겠지만(판공에다 찰고, 십일조 책정에 오죽이나 바쁠까?) 해도 너무들 하다. 열두 살 적 추억을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정말 웅장하고 성스럽고 신기했었다. 온 겨레가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지만 내겐 정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듯한 친근감을 주는 곳이 여기 성전이다. 핏덩어리인 내가 강보에 싸여 왔던 곳, 우리 어머니가 시므온이니 안나니 하는 노인네에게 내 팔자가 기구할 테니 조심하라는 .. 2015. 8. 27. 부자는 누가 부자야?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3) 부자는 누가 부자야? “어린 친구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란 참으로 어렵구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마가복음 10:17-30). 젊은이는 슬픔에 잠겨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풀이 죽어 떠나갔다.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겉으로는 전보다 더 경건해지고 신심이 돈독해지고 기도를 더 많이 하고자 힘쓰며 정직하고 의롭고 곧은 사람으로 처신하고자 애썼다. 성전에 가고 헌금을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사도 많이 하여 참으로 경건한 인물로 흠모 받았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기분은 떨치지 못하였다. 만사가 전과 다르고 다 허전하였다. 자기가 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지, 왜 지금도 이처럼 마음이 무거운.. 2015. 7. 23. 신앙은 투기요 모험이다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2) 신앙은 투기요 모험이다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시라서…”(마태복음 25:14-30). 성서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라 한다. 머리를 끄덕거리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금언명구가 아니라 하느님과 나 사이에 일대일의 시비(是非)를 붙이는 말씀이다. 따라서 어디에다 인용을 하고 사람을 훈계하기 위해서나 겨우 성경을 뒤적거리는 일은 매우 어리석다. 더구나 누구한테나 찍어 붙여 욕하고 비난하고 단죄하려고 성경 말씀을 끌어대는 일은 너무도 위태하다.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는 예수님 말씀은 공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이다. 나는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다. 그래도 .. 2015. 7. 5.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1)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분은 예언자입니다.” “우리가 알기로 그는 죄인이오.”(요한복음 9:1-38) 제목으로 쓴 글귀는 종교화가 루오의 화집 에 나오는 어느 그림의 제목이다. 요한복음 내용에 맞춘다면 “눈먼 이가 보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여주었다”고 바꿈직하다. 참으로 성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다. “당신이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할멈, 이게 당신 아들 틀림없어?” “그렇습니다만.” “소경으로 태어났다 이 말씀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만은 틀림없읍죠.” “영감, 당신 아들이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말짱한 거야?” “글쎄요.. 2015. 6. 11. 예수의 심란한 마음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0) 예수의 심란한 마음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습니다. 지금 제 영혼이 몹시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릴까요?”(요한복음 8:1-11) 안드레와 빌립이 헬라계 백인을 데려오자 예수께서는 놀라신다. 무슨 예감이 드셨는지 모르지만 “결단의 시간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다. 어차피 양자택일하는 것이 인생이기는 하나…. 자연에도 법칙이 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는다.” 옳은 말씀이다. “그래 옳거니! 너희들 다 죽어 다오, 너희를 밑거름 삼아 내가 무럭무럭 자라나 백 배도 천 배도 결실을 낼 터이니.” 그런데 예수님의 삶은 이러한 자기 보존의 법칙을 무시한다. “이 세상에서 제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보전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 2015. 5. 22. 부처님의 미소와 예수님의 얼굴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9) 부처님의 미소와 예수님의 얼굴 “그들이 눈을 들어 살피니 아무도 없고 예수 그분만 보였다”(마태복음 17:1-9). 어느 해인가 결혼 주례를 위해 경주땅을 난생 처음 밟게 된 필자는 토함산 석굴암의 부처님 상을 보러 갔다. 의연한 본존상이 짓는 그윽한 미소에서 필자는 이제껏 세계 어느 곳에서 본 형상보다 위엄 있고 경건한 인간상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인류가 돌에 새긴 가장 위대한 작품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석굴암의 아미타불을 들게 되었다. 사람은 볼품이 있어야 한다. ‘미모는 말없는 추천장’이라는 속담도 있다. 늠름한 풍채에 멋진 외모는 여인의 눈길만 끄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선망도 일으킨다. 아리따운 여인을 바라보는 모든 남성의 눈빛에는 “아, 드디어 나타났구나!”.. 2015. 5. 10. 산 사람의 눈과 송장의 눈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8) 산 사람의 눈과 송장의 눈 “지키던 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그러자 천사가 입을 열어 여자들에게 말했다”(마태복음 28:1-10). 주님이 부활하셨다! 엊그제 골고다 형장에서 처형당하고 매장 당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 생사람을 죽이고 송장마저 무서워 무덤에 보초를 세운 사람들! 그러나 무덤을 막았던 돌은 사라지고 무덤은 텅 비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수를 썼다. 경비원을 매수하고, 제자들이 밤중 몰래 스승의 시신을 약탈했을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린 사람들!(마태복음 28:11-15) 그들은 다 어디 갔을까? 그들은 무덤 속에 있고 그들이 묻은 죄수는 2천 년을 살고 계신다. 2천 년 전에 부활하시어 지금도 살아 계신다! .. 2015. 4. 22.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