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서리를 녹여줄 햇살 한줄기

  • 한줄기 햇살의 은혜를 구합니다~♡

    한길 2019.12.10 10:33

신동숙의 글밭(28)

 

아침 서리를 녹여줄 햇살 한줄기

 

겨울이 되고 아침마다 서리가 하얗게 차를 뒤덮고 있는 풍경을 본다. 딸아이의 등교 시간을 맞추려면 바로 시동을 걸고서 출발을 해야 하는 시각. 시동을 걸면 2~3초 후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그 시간의 공백 만큼 자동차는 밤새 속까지 싸늘하게 차가웠다는 신호겠다. 우선 와이퍼 속도를 최대치로 올리고 워셔액을 계속 뿌려 가면서 앞유리창에 낀 얼음을 우선 급한대로 녹이기로 한다. 뒷유리창과 옆유리창까지는 어떻게 해 볼 여유는 없다.

 

차를 출발 시킨 후 골목을 돌아 나오는 동안에도 좌우로 와이퍼의 힘찬 율동과 워셔액 분사는 계속된다. 아침 기온이 그런대로 영상에 가까운 날씨엔 뚝뚝 살얼음이 떨어져 나가듯 그대로 물이 되어 녹아서 흐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침 기온이 영하일 경우에 대략 난감해지는 것이다.

 

하얀 서리를 녹이기 위해 분사한 워셔액이 찬바람과 만나면서 도로 얼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와이퍼의 부지런함까지 가세를 한다. 영하의 날씨에 와이퍼의 노력이란 앞유리창에서 순간적으로 얼음이 된 워셔액을 라이스 페이퍼처럼 얇게 도포하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자꾸만 하얗게 시야를 가릴 뿐이다.

 

골목을 빠져 나온 후 큰 도로로 접어들 때까지 앞유리창이 하얗다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그때가 언젠가. 바쁜 출근 차량들이 이쪽저쪽에서 엉켜 들었다 풀리기를 멈추지 않는 러쉬아워의 시각. 큰 도로에 차를 멈출 수도 없고, 가려진 시야에 자칫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 운전을 하는 일이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아 운전대를 잡은 두 손엔 잔뜩 힘이 들어간다.

 

이때 믿는 것은 오로지 한가지 밖엔 없다. 태양빛이다. 다행이 딸아이의 중학교 방향이 동쪽에 있다. 아침해와 마주보며 달리는 것이 마지막 보루가 된다. 와이퍼의 율동과 워셔액의 힘겨운 노력이란 따뜻한 햇살 한줄기에 미치지 못함을 절절히 깨닫는 순간이다. 가리게로 눈을 살짝 가린 후 마주보는 태양빛의 찬란함이란. 감사와 감탄의 기도가 터져 나온다.

 

 

 

아. 그렇다면, 밤새 싸늘히 식은 가슴으로 맞이하는 아침이란. 그런 날엔 내 눈에도 잔뜩 하얀 서리가 끼어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이 거기에 닿는다. 얼음장 같은 가슴을 채 녹이지도 못하고 하얗게 서리가 끼어 앞도 분간 할 수 없는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하늘과 가족과 만나는 사람들과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는 것이다. 내 마음이 얼음장처럼 차갑다면, 내 시선도 서리가 낀 유리창이었을 테니까. 선명하게 볼 수 없는 그런 시선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 수 없는 시린 가슴을 견디지 못해 나 스스로가 만들어 내었을 와이퍼의 율동과 같은 힘겨운 노력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워셔액과 같은 눈물이 흐르고 또다시 얼어 붙는. 그런 노력에도 내 가슴이 계속해서 싸늘하다면, 순간의 시선을 녹일 수는 있을지언정. 정작 영하의 날씨처럼 가슴이 녹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스스로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에는 다시금 하얗게 서리가 끼었을 테지. 싸늘한 서리가 내 시야를 가리고, 누군가에겐 얼음 화살을 쏘았을지도 모를 차가운 아픔.

 

딸아이를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렇게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다. 백미러로 본 뒷유리창엔 아직도 서리가 하얗다. 중앙선 너머로 달려오는 차들의 앞유리창이 십 여 분 전의 내 모습과 어딘지 닮아 있다. 겨우 눈만 내놓은 모습들. 뱅뱅이 안경을 낀 듯한 모습에 살풋 웃음이 일다가도, 이내 기도한다. 부디 목적지까지 다들 무사히 도착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차가 집에 당도할 무렵엔 뒷유리창도 녹아 있을 테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태양을 향해 있었으니까.
 
어쩌면 싸늘히 식은 가슴이 오로지 구할 수 있는 것은 따스한 햇살 한줄기가 아닌지. 스스로가 등을 돌리지만 않는다면, 태양을 마주 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날 아침마다 자동차 앞유리창의 서리를 녹여 줄 한줄기 햇살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함으로. 밤새 식었을 내 시린 가슴은 아침마다 따스한 한줄기의 햇살을 구한다. "빛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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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점원이 되는 꿈

  • 커피나 차와 간단한 빵과 과일을 늘어 놓고, 여럿이 둘러앉아 예수를 나누는 그런 동네 서점~♡ 제 주변에도 그런 서점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가져봅니다 마음 편안해지는 글 고맙습니다

    한길 2019.12.09 14:45
    • 저도 그런 서점이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동숙 2019.12.10 08:52 DEL

신동숙의 글밭(27)

 

서점 점원이 되는 꿈

 

소망이 하나 생겼다. 서점 점원이 되는 꿈. 머리가 복잡한 주인이나 서점의 건물주가 아닌 그냥 점원이다. 새책이 들어오면 제자리에 꽂아 놓고, 서점 안을 두루 정리도 하고, 손님이 원하는 책이 있으면 찾아 드리고, 선뜻 책을 고르지 못하는 손님이 계시면, 미안해 하지 않도록 말없이 곁에서 기다려 주는 그런 마음 따뜻한 점원. 물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설명해 드릴 수 있는 친절한 점원. 그리고 주어진 여건에 따라서 그 사람만을 위한 책을 추천해 줄 수도 있는 능력 있는 점원.

 

이쯤 되면 서점 점원은 거의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몸이 아닌 마음에 대한 처방이 될 수도 있기에.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말은 종종 매스컴에서 들어온 말 이다. 물론 신문의 책 광고란이 제일 많이 인용하는 문구이긴하지만. 나는 언제든 그 귀여운 말에 속아 넘어가 줄 수 있는 그 정도의 넉넉한 마음은 있으니까.

 

 

 

방금 다른 손님에게 했던 설명을 또 해야 될 경우에도 매번 처음인 듯 새롭게 얘기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나를 만나 본 주위 사람들의 평가 중 하나니까. 오히려 듣는 쪽이 지겨워할 수는 있겠지만. 일 년 동안 그 이상 반복하래도 지겨워하지 않을 자신이 내겐 있다는 게 핵심이다. 거짓말처럼 들린다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 보면 영 엉뚱한 얘기도 아닌 것이다. 아침마다 어김없이 하나님이 띄워 주시는 태양이 지겨웠던 적이 있던가. 단지 그 앞에 내가 작아졌을 뿐이다. 거듭 나를 내려놓을 뿐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매 순간마다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매 순간이 새로울 수 있을 것이기에. 똑같은 말이라 해도 그건 흐르는 냇물에서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이치와 같기에.


밥을 먹고, 세수를 하는 일이 반복되지만 똑같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 로 주시는 하루처럼 그 마음 한결같을까, 그러면서도 또 매 순간이 이토록 새롭게 다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에겐 반복되는 일상이 곤욕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날이 왜 없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반복을 조금은 견딜 수 있는 내 나름의 힘이 있다. 돌아보면 내겐 시를 쓰는 일이 그 힘의 원천이다. 샘물처럼 속에서 우러나는 힘. 그리고 가슴에 품은 예수가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설명했던 말을 또 해야하는 일. 그것도 매번 새로웁게 기쁜 마음으로 전달하는 일. 그래서 상대가 행복을 느끼도록 하는 일. 그건 알고 보면 건물주가 되는 일보다 더 대단한 재능인지도 모른다. 매 순간 깨어 있으려는 의식엔 호흡처럼 쉼이란 없기에.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가 더불어 즐거울 수 있는 일이니까.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책 정리와 책 소개에 대한 대목이다. 그정도 능력을 갖추려면 서점 안을 내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여기서 사장님과 점원인 내가 서로소통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아야 하는 지점이다. 서점 안에 있는 책은 무엇이든 읽어도 좋다는, 그리고 나도 점원으로써의 예의는 최대한 지킬 것이다. 심지어는 의리까지도. 서점에 있는 책을 읽게 될 때면, 종이를 접거나 활짝 펼치지 않는다는 예의와 만일 책에 손상을 끼쳤을 경우에는 기꺼이 구매하리라는 의리.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한 노력을 한시도 쉬지 않았다는 헤르만 헤세. 그는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자신의 개성에 눈을 뜨면서 시인을 꿈꾸기 시작한다. 신학교 생활을 견디지 못해 탈출한 그가 제일 먼저 선택한 직업이 서점 점원이었다고 한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방 안에 앉아서 읽었던 헤세의 <데미안>. 그 내용은 기억에 없지만, 데미안이라는 이름과 의식의 심연은 어떠한 깊이로 내게도 각인이 되어 있다. 그 뒤로 다시 펼치진 않았으니, 소설보다는 수필이 먼저 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마도 내 관심사를 눈치 채셨으리라. 책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말과 글. 이 말과 글이란 어디까지나 사람과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될 때 진정한 생명력을 얻으리라. 고로 내 관심사는 서점을 찾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

 

요즘도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들판이 펼쳐진 시골 마을을 볼 수 있다. 외곽에는 공장이나 식당이 즐비해 있긴 해도, 시골 마을이란 으레 농사를 지으며 터를 일구며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 그런 마을 어귀에는 언제나 마을을 지키는 당산 나무가 서 있다. 지금도 시골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당산 나무는 그 덩치에 먼저 감탄하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견디었을 그 꿋꿋함에 숙연한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잠시 땀을 식히는 그늘이 되어 주고.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는 곳.

 

언젠가부터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들에 밀려 문을 닫고 있는 작은 서점들. 중학생 시절 내가 처음으로 내 손으로 골라서 샀던 법정스님의 <인도기행>과 도올 김용옥의 <중·고생을 위한 철학강의>. 이 두 책과 인연이 된 곳도 동네 작은 서점이었다. 가끔 마을의 당산 나무와 같은 동네 서점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모습에 잠시 안타까운 마음긴 했으나. 그럼에도 어디선가 꿋꿋이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작은 서점이 우리 곁엔 더러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지난 가을 어느 날 언양 시장을 지나다 작고 허름한 서점을 발견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선뜻 들어갔다. 인사를 하고는 서점을 한 바퀴 돌면서 눈에 들어오는 대로 대여섯 권의 책을 골랐다. 헌 책방에서나 만날 법한 이미 오래 전에 출판된 노천명, 천상병 시인들의 시집들. 얼마나 오랜 시간 책장에 꽂혀 있었던지 먼지가 하얗다. 하지만 내게는 보물을 발견한 기쁨이고, 소장하고픈 책들이다.

 

마을의 당산 나무 그늘처럼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네 서점이 그립다. 마음 맞는 이들이 언제든 찾아들 수 있는 당산 나무 같은 동네의 작은 서점. 시골에선 당산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들판과 먼 산과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일상에 지친 마음들을 나누었으리라. 마을의 동네 서점에선 나무를 깎은 종이에 마음의 결을 손질한 꿈과 희망과 사랑이 담긴 책을 보면서 일상에 지친 서로의 마음들을 나눌 수 있으리라.

 

그런 동네 서점에선 좋은 책이 천장까지 쌓여 있을 테고, 가끔은 좋은 벗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면서 마음을 나눈다면 이 겨울이 얼마나 따뜻해질까. 토담집 화롯가에 둘러앉은 듯 때론 좋아하는 작가로부터 이야기 한 자락 듣는 날의 겨울밤은 짧기만 할 텐데. 커피나 차와 간단한 빵과 과일을 늘어 놓고, 여럿이 둘러앉아 예수를 나누는 그런 동네 서점이 그립다.

 

나중에 혹시 내가 서점 점원이 되는 꿈에 그리던 날이 온다면. 주인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요구한다면, 이 글이 자기소개서가 되리라. 20년 전, 대학 졸업 후 뭐한다고 서울로 취업을 하러 그렇게들 꾸역꾸역 올라갔던가. 나도 그 중에 한 명이었으니. 그때 내 고향에서 서점 점원이란 직업을 생각치 못한 건 어디까지나 그 당시에 내 지성이 부족했음의 소치다.

 

유럽에는 동네의 작은 서점에서 열리는 독서모임과 작가와의 만남이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동화책의 유명 작가가 동네의 작은 서점에서 어린 독자들과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사실은 동네 작은 서점이란 의식이 깨어 있어 앞서 가는 나라들에선 꾸준히 지켜가고 있는 만남과 사랑의 샘터가 된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집 주변에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한 마을에 있어서 도서관의 역할이 있다면, 작은 서점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도서관이 정숙해야 하고, 대중적인 행사에 치중한다면, 서점은 어찌 보면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언제든 빵이라도 사들고 가서 주인과 직접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때론 도서관에선 할 수 없는 두런두런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랑방과 같은 작지만 보다 더 따뜻한 공간일 테니까. 누구보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을의 작은 서점은 곁에 두고픈 그런 곳이다. 마을의 당산 나무처럼 그늘이 되는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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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신동숙의 글밭(26)/시밥 한 그릇

 

먼 별


 

눈을 감으면 어둡고
멀리 있습니다

아스라히 멀고 멀어서
없는 듯 계십니다

 

내 마음에
한 점 별빛으로 오신 님

 

바람에 지워질세라
내 눈이 어두워 묻힐세라
눈 한 번 편히 감지 못하는 밤입니다

 

 

 

 

먼 별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그 별 아래 서성이며 머뭇거리기만 할 뿐

 

얼마나 더 아파야 닿을 수 있는지요

얼마나 더 깊어져야 그 마음에 들 수 있는지요

 

내 마음에
빛으로 오신 예수여

 

가까이 보라시는 듯
제 발아래 두신 작은 풀꽃들

 

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저에겐
작은 풀꽃 또한 그리운 먼 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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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 내면의 풍성함을 위하여 사색과 묵상의 삶을 다시 결단하며 시작해 보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한길 2019.12.08 08:27
    • 결단하심이 지금껏 한결같이 그리 해오신 분의 다짐으로 보입니다.

      신동숙 2019.12.09 05:12 DEL

신동숙의 글밭(25)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예쁜 찻잔을 보면, 순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먼저 마음으로 가만히 비추어 봅니다. 찻잔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사색의 원을 천천히 그려보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가짐으로 인해 지구 한 켠 누구 하나는 못 가질세라. 희귀하거나 특별한 재료보다는 주위에 흔한 흙이나 나무 등 자연물로 만든 찻잔인가.

 

나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에 오는 손님이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내놓을 수 있는 평등한 찻잔인가. 간혹 놀러온 어린 아이에게도 건넬 수 있는, 설령 깨어진대도 아까워하거나 괘념치 않을 마음을 낼 수 있는가.

 

만약에 깨어진대도,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 후손에게 쓰레기를 남기지 않을 자연물의 찻잔인가. 이렇게 찻잔 하나로 사색과 묵상의 둥근 그림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찻잔을 만든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입니다. 단지 돈과 생산만이 유일한 상위 목적이 되어 만든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게 애써 잘 보이기 위해 기교를 부려 억지스레 만든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그 찻잔에는 그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그 파장은 알든 모르든 사용하는 이의 마음에까지 어딘지 불순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흙과 찻잔이 좋아서 즐겁고도 무심한 듯 평온한 순간의 마음으로 빚은 것이라면, 사용하는 마음에도 알든 모르든 좋은 파장이 전해져 평화로운 마음이겠다 싶은 것입니다. 이어서 찻잔의 형상을 그대로 따라서 선을 그려봅니다. 잔잔한 마음으로. 마음에 비추어 보고 또 비추어 보는 무심한 일.

 

이런 사색과 묵상이 좀 별스럽고, 쓸데없는 짓이라 탓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이런 사색이 제게는 습관이 되버렸기도 하지만, 경험상 손해보다는 유익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내면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러한 사색과 묵상의 힘은 때때로 일상 생활과 일터에서 창의력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누군가는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은 느리고 퇴행적이고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사색과 묵상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바쁜데, 할 일도 많은데, 그럴 시간에 청소를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뭔가 눈에 보이는 일로 소중한 일상을 채우는 게 더 낫지 않나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런 시간 밖에 시간, 사색과 묵상으로 깊어지는 시간은 그대로 기도와 예배로 이어집니다.

 

비로소 마음을 내는 일, 마음을 주는 일이 되니까요. 어쩌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만나는 길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는 일. 내면을 의미로 채우는 일은 마음과 영혼을 채우는 일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재미는 덤으로 따라올 테지요. 이런 시시해 보이는 사색과 묵상을 즐기게 된다면, 그럴 수 있다면 영 먼나라의 얘기는 아닐 테지요.

 

이렇게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찻잔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은 스르르 저절로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고도 꼭 필요하다면 사야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음으로 인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따뜻하고 잔잔한 평온함이 제겐 더 소중하니까요.

 

소유하지 않음으로 잠시 마음에 선물처럼 주어지는 여백이 있습니다. 그 빈 가슴에 시원한 바람 한줄기 무심히 지나고, 따뜻한 햇살 한줄기 은혜비처럼 내리면 마음은 괜히 따뜻하고 즐거워 혼자서도 실실 실없는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발길에 흔한 마른 강아지풀이 귀엽고, 겨울날 새벽아침 출근길에 하얀 서리가 보석보다 반짝이는 모습이 생생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소소한 감사가 되고, 소박하고 행복한 노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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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신동숙의 글밭(24)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식구들이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데려와 키우자고 했을 때 결사 반대를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에게 강아지는 오롯이 꼼짝 못하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던 어느날 집에 오니 아들이 드디어 자기한테도 동생이 생겼다며 신이 나서 눈까지 반짝인다. 성은 김 씨고 이름도 지었단다. 김복순.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 품 안에 쏙 안기는 강아지를 아들과 딸은 틈나는 대로 안아 주고, 밥도 챙기고, 똥도 치우고, 주말이면 강변길로 오솔길로 떠나는 산책이 즐거운 가족 소풍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서너 달이 못갔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지는 복순이. 일년이 채 안되어 복순이의 덩치는 아들만큼 커진 것이다. 똥도 엄청나다. 한 학년씩 올라간 아이들은 집으로 오는 시간도 늦어졌다. 예상했던 일들이 하나 둘 현실로 일어나고. 개밥을 주는 일도, 똥을 치우는 일도 나와 친정엄마의 숙제가 된 것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하루도 빠질 수 없는. 한 생명 살리기.

 

문제는 겨울이 되고부터 고민이 생겼다. 늘 마당에 묶여 있어야 하는 복순이. 개집에 안 입는 옷가지를 깔아 주면, 복순이는 도로 물고 나온다. 왜 그런지 나는 아직도 몰라서 답답하다. 밤새 비라도 내리는 날엔 기어이 축축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러길 수차례. 춥든가 말든가 포기를 했다가 또다시 헌옷가지를 새로 깔아준다.

 

 

 

 

묶여 있는 짐승에게 겨울나기란 어떤 경험일까? 털이 있어서 추위를 덜 타는지. 요즘 나에겐 숙제다. 찬물을 주다가 12월이 되면서 온수를 타서 따뜻하게 온도를 맞춰 개밥과 흰밥을 섞어 말아주고 있다. 혹시나 혀라도 데일까 봐, 싫지만 개밥그릇에 손가락을 살째기 담근다. 따뜻한 정도로 바로 먹기 좋게 온도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2년 동안 나는 복순이를 안아준 적이 없다. 매정하다 여길지 모르지만, 동물의 몸이 영 어색한 것이다. 기껏 큰 맘 먹고 쓰다듬어 주는 정도. 그렇다고 미워하지는 않는다. 개가 싫어하는 짓을 안할 뿐. 동물보다는 식물이 좋은 것이다. 나무가 좋고 꽃이 좋고 달과 별이 그저 좋은 것이다.

 

처음엔 사람만 보면 좋아서 펄쩍거리며 덤비듯 앞발을 들던 복순이를 똑똑하다고 인정하게 된 것은 집에 온지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밥을 주려고 다가가면, 여지없이 앞발을 세워 안기려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는데, 그러기를 수차례 어느샌가 복순이가 얌전히 앉아서 밥을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복순이에게 마음이 열린 것도 그 일이 있고부터다. 복순이도 점점 내가 싫어하는 짓은 안하는 것이다. 마치 내 마음 안다는 듯한 그 순한 눈으로.

 

나는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복순이 눈을 쳐다보며 인사를 하곤 한다. 그러면 복순이는 그 순한 눈으로 슬쩍 나를 봤다가 눈두덩이를 찡긋거리다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곤 한다. "복순아, 갔다올께", "복순아, 잘 있었어?", 겨울이 되고부터 하나 더 늘어난 인사말, "복순아, 안 추워?". 먼저 말이 없으니, 먼저 물어볼 수밖에.

 

하나님이 개를 만드실 때, 야생의 개가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개는 겨울이라도 물을 끓여 먹진 못했으리라. 그러니 짐승에겐 찬물이 자연스런 마실 물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얼마 전까지도 찬물만 줬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칠 못했던 것은. 옛날 어른들이 소죽을 끓여줬다는 얘기가 있지않던가. 한겨울에도 마당에 묶여서 추운 개한테 찬물을 줘도 되는지 고민은 이어지고 깊어지고.

 

그러다가 한 생각에 가닿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에덴동산에서 살 때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후, 추운 겨울이 생기게 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짐승은 사람으로인해 겪지 않아도 될 혹한의 겨울을 겪게 된 건 아닌가 하고.

 

그렇담 털이 있는 복순이라도 나처럼 추위를 오롯이 느낄 것이기에, 개밥을 데워 줘야 하는 게 맞는 것이다. 사람으로인해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면. 그것도 우리집처럼 목줄에 묶인 채로 어쩔 수 없이. 복순이에게 밥을 주면서도 늘 미안한 마음이 강물처럼 내 마음 밑바닥으로 흐르는 이유를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오늘 저녁에도 싫지만 개밥그릇에 손가락을 담근다. 너무 뜨겁거나 차지 않도록. 혀로 먼저 감지하는 복순이가 혹시나 피치 못해 약간이라도 뜨거워 혀끝이라도 데이면 말 못하는 짐승이 밤새 추운 마당에서 영문도 모르고 혀까지 얼얼해선 안될 테니까.

 

말 못하는 짐승, 말 못하는 갓난아기, 표현 못하는 아이들.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의 이야기들이 나는 신경이 쓰인다. 말이라도 할 줄 알면 그대로만 해주면 될 텐데, 관심을 기울이고 살피고 또 살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겨울 나무가 그렇고, 들에 꽃이 그렇고, 밤하늘 먼 별이 그렇다. 어째서 자연은 이렇게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곁에 말없이 한결같이 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말없이 선하고 아름다운 생명들, 게중엔 여린 생명 앞에선 더 마음이 작아져 내려앉는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사랑만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그 좁은 마음길을 따라서 오늘도 살째기 한 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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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 한 알

신동숙의 글밭(23)/시밥 한 그릇


풀씨 한 알

  

발길에 폴폴 날리우는
작고 여린 풀씨 한 알

 

풀섶에 이는 잔바람에도
홀로 좋아서 춤을 추는
하늘 더불어 춤을 추는
작고 여린 풀씨 한 알

 

낮고 낮은 곳으로
내려갈 줄만 알아
그 어디든 발길 닿는 곳
제 살아갈 한 평생 집인 줄을 알아

 

작고 둥근 머리를 누이며
평온히 눈을 감는다

 

 

 

 

 

땅 속으로
사색의 뿌리를 내리며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작은 생명들의 소리 들으려

 

가만히 귀를 대고
가난한 마음이 더듬으며
사람들 무심히 오가는 발길 아래로
고요히 기도의 뿌리를 내린다

 

발아래 피어날 푸르른 풀잎
그 맑고 푸르른 노랫 소리 들으려
겨울밤 홀로 깊어지는
풀씨 한 알

 

(2019.1.9. 詩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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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신동숙의 글밭(22)/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하루를 보낸 후 내 방으로 들어옵니다. 가만히 돌아보고 둘러보는 시간. 정리되지 않은 일들, 사람과의 관계들이 때론 무심한 들풀처럼 그려집니다. 참지 못한 순간, 넉넉치 못한 마음, 후회스러운 마음은 하루의 그림자입니다.

 

무심한 들풀 사이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들꽃처럼 환하게 미소를 띄기도 하고요. 이런 저런 순간들이 모여 색색깔 조각보의 모자이크처럼 하루를 채우고 있답니다. 낮 동안에도 잠시 잠깐 틈나는 대로 차 안이나 어디서든 홀로 적적한 시간을 갖지만, 밤이 드리우는 고요함에 비할 수는 없답니다.

 

우선 천장의 조명을 끕니다. 그래도 간간히 책을 읽고, 글도 쓰려면 책상 위 작은 스텐드 조명은 켜둡니다. 종지만한 유리 찻잔 안에 티라이트 양초를 넣고 심지에 불을 붙입니다. 쑥병차 한 개를 찻잔에 넣고서 쪼로록 뜨거운 물을 가득 부우면 찻잎이 빙그르르 춤을 춥니다.

 

그윽한 쑥향이 피어오르면 어수선하던 가슴에 한줄기 아득한 그리움이 흘러 물길을 냅니다. 따뜻한 차를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거칠던 숨결이 가지런해지고요. 또다시 마음이 순간 어수선해지려 들면 작은 촛불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비좁던 가슴 한 켠이 조금씩 여백으로 차오르는 것입니다.

 

어둔 방, 촛불 하나와 쑥차 한 잔으로 따뜻하고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내 곁에는 마음에 맞는 좋은 책이 있답니다. 제게 좋은 책이란 고독과 묵상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익어간 마음과 삶이 담긴 책입니다.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지만, 차 안이나 혼자 있을 땐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음악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바람과 숲과 별의 소리로 들려오는 것입니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내면에서 무르익은 자연의 소리. 클래식 음악과 고전 속에는 언제나 자연과 마음이 담겨 유유히 흐르고 있기에 제 마음도 따라서 깊이 흐르곤 한답니다.

 

 

 

한밤 중 홀로 이렇게 적적하게나마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행복한 마음이 차오릅니다. 자동차와 불야성의 소음들로부터 외떨어진 덕분에 제가 사는 작은 마을엔 그러한 소음이 없는 것에도 감사하고요. 도심에서 한발짝 물러난 작은 마을이 때론 섬처럼 고립된 쓸쓸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제 내면에 흐르는 여린 소리는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입니다.

 

어느 처사님이 법정 스님에게 여쭈었다고 합니다. 세상엔 넘쳐 나는 정보와 지혜로운 길도 많은데, 그 속에서 잘 살아가려면, 사람이 나이가 들어 후회를 적게 하려면 어떻게 살면 되나요?

 

섣불리 씨앗을 뿌린 젊은 날의 기도와 꿈이 나중에 때가 되어 이루어졌을 때, 조화로운 삶 속에서 그 이루어진 꿈을 관망했을 때, 만족스러울 수 있다면 정말로 다행이지만, 이게 아닌데! 라는 후회가 밀려든다면 그만큼 안타까운 경우도 없을 테니까요.

 

그에 대한 법정스님의 답변은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저 역시 하루에도 수차례 마음이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지는, 아차! 싶은 순간들을 맞이하면서도 촛불의 심지처럼 간직하고 있는 말씀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말입니다.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저는 법정스님의 마음에서 예수의 마음을 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옛날 눈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인 줄만 알았던 구약 시대의 그들에게 예수는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마음으로 범하면 범하는 것이라며, 예수의 손끝이 끊임없이 가리키는 곳은 마음이었기에. 자연과 진리의 말씀은 그 마음, 본향으로 잘 찾아오너라고 주신 마음의 지도가 될 테지요.

 

오늘도 촛불 하나, 차 한 잔, 좋은 책 한 권이 주는 변함없는 선물은 마음에 평온과 감사와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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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 어떠한 경우에든 나를 지켜주는 것은 사랑이다~♡ 가슴에 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한길 2019.12.04 01:42
    • 늘 사랑일 수 있기를요. 감사드립니다.

      신동숙 2019.12.05 22:39 DEL

신동숙의 글밭(21)/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순환하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자연 곳곳에서 보이는 모든 움직임은 순환하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펄럭이는 돛, 흐르는 시내, 흔들리는 나무, 표류하는 바람,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건강과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나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나무 그늘에서 건강하게 뛰놀고 장난치는 것만큼 더 품위 있고 신성한 건강과 자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죄에 대한 의심 따위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이 이를 알고 있었더라면 대리석이나 다이아몬드로 성전 따위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고, 성전 건축은 신성 모독 중의 신성 모독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낙원을 영원히 잃지 않았을 것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 192쪽) 
 

고전을 읽다 보면 이렇게 종종 보석 같은 명문장을 발견한 기쁨에 가슴이 뛴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인 '자유'를 두고, 과연 나 자신이 소로우만큼 천진난만하게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소로우. 그는 1833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을 합니다. 학점에는 무관심했으나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 소로우. 그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숲 속에서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하며 밭을 일구고 자유롭게 여가를 즐깁니다. 독서와 산책과 명상과 일기를 쓰며, 숲 속 생활을 자발적으로 꾸려나간 구도자. 200여 년 전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그로 인하여 미국의 의식이 100년은 앞당겨졌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답니다.

 

 

 

 

 

소로우에게는 시인, 시인박물학자, 초절주의 사상가라는 칭호가 따릅니다. 직업으로는 지구별을 거니는 '산책가'로 불려지기를 그 자신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소로우의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 한가운데 있어서 그에게 산책이란 자연 속을 거닐면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으로 충만한 호젓한 시간이 됩니다.

 

고독과 자연과 사색에서 길어올린 그의 사유의 깊이와 영성이 주는 울림은 지금 현재도 저에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숲입니다.

 

'소로가 고요하게 자연과 교제를 나누는 시간,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로 "주의 영"이 자신을 축복하는 시간을 서술하고 있는 일기들이 훨씬 더 신선하고 상쾌할 것이다.'(같은 책 28쪽)

 

*'파릇파릇 강둑 아래서 헤엄치는 송어처럼 맑은 생각에 잠기길 원했다.'(같은 책 359쪽)

 

*'정오가 조금 지나자 하늘이 맑아진다. 산책을 나간다. 한 열흘 가까이 무척 가볍고 물기 없는 눈만 내린다. 막 해가 나서 눈으로 덮인 숲을 환하게 비춘다. 멀리 떡갈나무 숲이 장엄하다. 온천지가 맑고 꿋꿋한 겨울의 얼굴을 달고 있다. 눈 덮인 소나무들이 의연하게 서 있다.'(같은 책 362쪽)

 

나무와 숲, 물 속 송사리, 흙에 묻힌 인디언의 화살촉을 발견한그의 시선은 어린아이와 시인의 시선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매 순간 처음 발견한 듯한 기쁨으로.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은 그의 일기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성실한 기도의 편지를 봅니다. 소로우의 일기는 에머슨의 권유로 대학을 나온 직후부터 거의 죽는 날까지 이어집니다.

 

저는 소로우로부터 자연과 최고의 지성과 그 너머의 영성과 태초의 인간을 봅니다. 톨스토이가 극찬을 하고, 간디의 비폭력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소로우. 법정스님이 돌아가시기까지 애장하셨던 소로우의 [월든]은 저에게도 보물책이랍니다. 소로우의 일기를 읽다 보면, 곳곳에서 법정스님의 삶과 사유의 모습과도 겹쳐져 빙그레 웃음 짓기도 하고요. 좋아하면 닮아간다는 이치를 시대를 달리한 두 선구자의 저서를 통해서 그대로 보게 되는 즐거움을 누린답니다.

 

소로우와 법정스님,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한 삶'을 인생의 지향점에 두었던 두 선각자들. 그 이유에 대해서 소로우는 생전에 썼던 39권의 일기장에 낱낱히 기록해 두고 있답니다.

 

성경까지 가기 전에 소로우라는 고전의 거울에다 현 기독교와 종교인과 신앙인과 영성 생활인의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연과 예수로부터 멀리 떠나왔는가 하고요. 건물 성전과 소유에 묶인 부자유한 의식과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저 자신을 돌이켜, 자연과 예수와 고전의 맑고 청정한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 봅니다. 내 마음 한치라도 더 가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든 나를 지켜주는 근거는 바로 사랑이다. 나의 사랑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에 근거해서 나를 만나라. 그러면 나도 강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남이 나를 비난하거나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순간마다 나는 지체 없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사랑하는 나의 정신에 의지하자." 그 점에서 나는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다. 이 점에서 나는 하느님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다.'(같은 책 190쪽)

 

한 인간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소로우가 보여준, 그의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을 닮았습니다. 고독과 자연과 사색으로 무르익어간 그의 심연은 맑고 깊고 밝고 커다랗습니다. 넉넉히 나누고도 남을 자연만큼이나 넘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답니다.

 

지구별을 순례하는 저와 더불어 이 글을 읽으신 분들과도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자연과 우리들의 소박한 일상 속에 숨어 계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이 겨울에도 건강함으로 평온한 산책으로 매 순간 행복한 삶이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라는 초대를 받는다."(같은 책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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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 이 새벽에 눈물로 기도합니다 ~♡

    한길 2019.12.03 06:49
    • 주님이 그 눈물 다 받으시기를요.

      신동숙 2019.12.03 09:53 DEL

신동숙의 글밭(20)/시밥 한 그릇

 

물길

 

내게 햇살의 은혜만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마음 사막이 되지 아니 하도록

흐르게 하소서

 

밤이슬 더불어 눈물 흐르게 하소서

 

새벽이슬 더불어 눈물 흐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안에 기도의 샘물이 물길을 내어

작고 여린 생명가로 흘러들 수 있도록

흐르게 하소서

 

눈물웃음꽃 피우게 하소서

햇살웃음꽃 피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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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신동숙의 글밭(19)

 

 

내려놓음

 

계단을 오르는 걸음마다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발아래로 그리고 아래로

 

 

 

더 깊이

그렇게

내 몸 가벼웁게

나의 등 뒤에서 밀어올려주는

몽글몽글 온화한 바람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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