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인심





물 한 잔 드릴까요?
하고 얼른 물으면

바빠요!
하며 냉큼 달아나신다

택배 기사님도
배달 기사님도
집배원 아저씨도

물 한 모금
삼킬 틈없는

나무 꼬챙이 같이 
삐쩍 마른 뒷모습에

넉넉한 물 인심이
가슴 우물에 먹먹히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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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 새




무한한 날갯짓으로 
몸무게를 지우며

무심한 마음으로
하늘을 안으며

새가 난다
하늘품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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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와 길상사




한겨울을 지나오며 언뜻언뜻 감돌던 봄기운이 이제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요즘입니다. 길을 걸으며 발아래 땅을 살펴보노라면 아직은 시들고 마른 풀들이 많지만 그 사이에서도 유독 푸릇한 잎 중에 하나가 로즈마리입니다. 

언뜻 보아 잎 모양새가 소나무를 닮은 로즈마리는 개구쟁이 까치집 머리칼을 쓰다듬듯이 손으로 스치듯 살살살 흔들어서 그 향을 맡으면 솔향에 레몬향이 섞인듯 환하게 피어나는 상큼한 향에 금새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로즈마리를 생각하면 스무살 중반에 신사동 가로수길과 돈암동 두 곳의 요가 학원에서 작은 강사로 수련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던 고시원 방이 삭막해서 퇴근길에 숙소로 데리고 온 벗이 바로 작은 로즈마리 묘목입니다.

언제나 로즈마리와의 인사법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듯 손으로 잎을 살살살 쓰다듬으며 향을 맡는 일입니다. 작은 화분에 담긴 로즈마리에게 물도 주고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날이 더해 갈 수록 로즈마리는 언뜻 보아 위로 키가 자라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왠지 키에 비해서 잎은 살이 찌지 않고 오히려 풀이 죽은 듯 보였습니다. 어떻게 살릴까 몇 날 며칠 궁리를 하였습니다.

 



낮에는 요가를 가르치고, 길벗처럼 원성스님의 그림책에서 본 해맑은 동자승의 얼굴을 마음에 담기도 하고, 법정 스님의 삶과 월든 숲 소로우의 삶을 생각하면 혼자 길을 걸으면서도 외롭지 않던 맑은 나날입니다. 

요가를 공부할 수록 명상과 생명과 생태에도 관심이 가게 된 것은 요가의 대체의학인 아유르베다와 한의학에 깃든 자연의 진실하고 선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자연히 섭생은 자연식에 가까워졌고 몸도 따라서 저절로 기울어 순응하듯 물처럼 도시에서 자연으로 흘렀습니다. 

당근과 감자와 오이와 사과만 먹고도 몸이 만족해 했습니다. 물통이 있고 찻잎이 있으면 어디든 평안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언제나 물통과 찻잎을 지니고 다니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때는 요가 수련을 마치고 나오면 원장님이 다려주시던 따끈한 보이차가 몸을 보호해 주던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작은 방에서 로즈마리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자니, 작은 화분에 담긴 로즈마리의 처지와 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즈마리가 이 작은 화분이 아닌, 산속이나 산자락 어디쯤에다 뿌리를 내렸다면 훨씬 더 생기를 뿜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빽빽한 도심 속에서만 살아온 나의 처지도 작은 화분에 담긴 로즈마리의 생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런 한 생각이 들고부터는 마음이 더욱 자연과 산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휴일날, 로즈마리라도 먼저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이른바 로즈마리 출가를 시키자는 결심을 낸 것입니다. 생각 끝에 지하철을 타고 마을 버스를 갈아 타고서 도착한 곳은 법정 스님의 성북동 길상사입니다. 길상사의 시민선방으로 오르는 길 우측 화단 나무 아래에 작은 로즈마리 묘목 하나를 허락도 없이 모셔둔 것입니다. 

그때의 일로부터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작은 로즈마리가 여전히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벌써 뽑아버렸는지, 아니면 저절로 그 자리에서 생을 마무리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길상사를 떠올릴 때면 저와 잠시나마 벗이 되었던 로즈마리의 향기가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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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보스 차와 아버지



아버지는 루이보스 차가 좋다고 하셨다. 딸이 드리는 이런 차 저런 차를 다양하게 맛보시더니 그중에 루이보스 차를 드시면 속이 가장 편안하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식사는 되새김질로 마무리를 하셨다. 풀밭에 앉은 황소가 우물우물 풀을 씹어 먹듯이 소눈을 닮은 아버지의 큰 눈망울은 끔벅끔벅 먼 고향 하늘가 어드메 쯤인가를 그리시는 듯 보였다.

그러면 함께 밥을 먹던 엄마의 입에서 툭 튀어나오던 한소리가 "추잡구로" 아버지의 되새김질에 뒤따르는 엄마의 추임새였다. 그러면 아버지는 소처럼 점잖구로 어릴 적에 소여물을 먹이시던 묵은 얘기를 또다시 처음처럼 풀어놓으셨다. 

그러면 어린 내 눈앞으로 누런 황소가 보이고, 우물우물 움직이는 소의 되새김질이 보이고, 순한 소의 눈망울 속으로 푸른 풀밭을 닮은 푸른 하늘이 넓게 펼쳐졌다. 

그리고 시골의 어느 작은 초가집이 우리집이 되고, 저녁밥 짓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 옆으로 지붕 위에는 하얀 박이 밤하늘의 달님을 닮아 있었고, 달님의 순박한 얼굴은 엄마의 얼굴이 되고 아버지의 얼굴이 되고, 순한 한국 사람의 얼굴이 되고 하나의 커다란 얼, 하늘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장이 약한 조카 아들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처럼 루이보스 차를 좋아한다. 한참 성장기에 있어서 생우유를 물처럼 마시는데, 간혹 고모집에 놀러올 때면 루이보스 차를 우려서 루이보스 밀크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조카 아들에게도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차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스스로의 몸으로 자기의 체질에 맞는 똑같은 차를 찾았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루이보스 차 티백 하나를 찬물에 담궈두었다. 가족들이 잠자는 동안 밤새 잘 우러나서 아침이면 투명한 보리차 빛깔로 반기며 아침에 가족들의 빈 속을 깨워줄 것이다. 

내 체질에 맞는 차를 하나 알고 있다는 것은 편안하고 좋은 길벗을 곁에 둔 것과 다르지 않다. 몸이 잠을 자는 동안 밤새 비운 속으로 물처럼 순해진 루이보스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의 첫물길을 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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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 참빛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모여
빗살 촘촘한 참빗이 되어

머리카락처럼 헝클어진
생각의 결을 가지런히 빗겨준다

한 권의 책
한 개의 사상
한 개의 종교만 내세우는 건

한 개비의 꼬챙이로
머리 전체를 빗겠다며 날을 세우는 일
나와 너를 동시에 찌르는 일

나와 너를 살리는
이 땅에 모든 생명을 살리는 공기처럼 
공평한 참빗의 빗살은 누구도 해치지 않는

촘촘한 햇살
촘촘한 빗줄기
촘촘한 바람의 숨결

하늘의 그물은 회회(恢恢) 성글어도
어린 양 한 마리도 빠뜨리지 않는 법

오늘을 빗는
빈 마음의 결마다
참빛으로 채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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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쑤시개 세 개

네 살 때부터 다섯 살까지 
엄마 손에 붙들려
어린이집 대신 
다도원에 다닌 딸아이

엄마는 개량 한복 입고 
고무신 신고 앵통 들고
차 수업 받으러 가는 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

밀집 모자 쓰고 
호미랑 삽이랑
딸아이랑 
차밭에서 살며 놀며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신기한 잡초도 신나게 뽑고
어린 찻잎도 신명나게 따느라
찻잎 삼매경에 빠져 살던 엄마

첫날 다실에 보물처럼 가득 쌓인 
예쁜 다구들과 노리개들을 보면서
호기심 대장 개구쟁이 딸아이에게
딱 한 마디 했지요

"여기 있는 건 하나도 만지면 안된다"
2년 동안 단 한 번도 손대지 않은 기적이 
딸아이한테서 일어난 건 
신기하고도 고마운 일

그러던 어느날
평소에 다식꽂이로 
한 번 쓰고 버리던 이쑤시개
노랑 분홍 파랑 리본이 달린 예쁜 이쑤시개

어느날 우리집에서
색색깔 이쑤시개 세 개를 본 엄마
다음날 딸아이의 손을 잡고서
원장선생님을 찾아갔지요

몰래 가지고 가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드리고서
이쑤시개 세 개를 되돌려 주고 온 
엄마와 딸아이의 이야기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옛속담이 
어둔 세상 별자리가 되어서
엄마와 딸아이가 걸어가는 길을
언제나 반짝반짝 비춰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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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동무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나
이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돈과 건물과 권력과 명예와 인기와 성공을 위한 
일이 우선이라면 얼마나 힘 빠지고 
재미없는 걸음 걸음인가

돈이 있든지 없든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인기가 별로 없어도
성공이라 부를만한 것 딱히 없어도

말이 통하는 
동무 하나만 별처럼 있다면 

말이 통하는 
말동무 하나를 만나고 싶어서

아무 책이나 읽으면 
아무 동무나 만나게 될까 봐 겁나

밥은 굶어도
책은 아무 책이나 읽지 말자

어려서부터 
굳은 마음 먹었지

말문이 막히고
숨통이 막히는 

오늘 같은 날에도
말동무 삼아서 글을 읽는다

먹먹함 한 줌 고이면
가슴 웅덩이 물길 터주려

차 한 모금 
홀짝 홀짝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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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



가끔 누군가를 만나
소화되지 않는 말이 있지

목에서 걸리고
가슴에 맺히는 말 한 마디

저녁답 쪼그리고 앉아 군불로 태워버릴 
부뚜막 아궁이도 내겐 없는데

한겨울밤 문틈으로 바람 따라 보내버릴
엉성한 문풍지도 내겐 없는데

사방이 꽉 막힌 방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숨통이라도 트려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다가

몸을 지으실 때 가장 연약한 틈
눈물샘으로 흐른다

가슴이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해서 말없이 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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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雪害木) - 겨울나무 (73)




솔가지 주워서

불을 살리고


밥 지어 드시던

오두막의 수도승


깊은 산 속 

한밤 중에 홀로 깨어


소리없이 내리는 눈송이처럼 

연약하고 아름다운 생명들 


품고 품고 품다가

꺾이신 설해목(雪害木)


나는 법정스님한테서

십자가 예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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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교회, 교회당을 나오면서

신동숙의 글밭(317)


달콤한 교회, 교회당을 나오면서

- 교회가 맹신앙과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지가 되지 않기를 -



코로나 바이러스와 탐진치 삼독의 전파지가 된 일부 교회와 선교기관들로 인해서, 교회가 더욱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요즘이지만, 한 시절 교회에 몸 담았던 나에게 있어 교회 생활은 참 달콤했다. 


그런 달콤한 교회당을 떠나온 일을 비유하자면, 카필라 왕국을 떠나오던 석가모니의 일에 비할 수 있을까. 5년 동안 뿌리를 내린 교회에서, 마지막 갈등의 순간에, 지나온 과거를 깊이 되돌아보았고, 다가올 미래를 거듭 내다보며 뼛속까지 자녀들의 영혼까지 짐작해보았다. 


이대로 교회 생활을 계속해 나간다면 두 자녀들은 겉으로는 순조롭게 자랄 것이고, 우리 가정은 평안할 것이었다. 하지만 맹신앙으로 영혼은 잠들 것이고, 마음은 거듭되는 기복의 욕망에 젖어들어 비대해질 것이었다. 성경은 '마음이 깨끗한 자가 하느님을 볼 것임이오.'라고 마태복음 팔복은 말한다. 다른 것보다 내게 두려운 하나는 눈이 가져려 하느님을 볼 수 없게 되는 일이다.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는 전혜성 박사님의 자서전을 읽었던 때는 큰 아이가 두 살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섬김'이라는 단어는 내게 화두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큰 아이가 7살이 되던 해에 유치원 선택을 앞두고 또 한 번 깊은 인생의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 불교 유치원과 개신교 선교원을 두고 어디를 보낼까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앞으로 삶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는 인생의 중대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때까지도 가슴에서 내려놓은 적 없던 화두인 '섬김'과 '사랑'으로 인해 자연히 선교원으로 기울게 되었다. 큰 딸아이의 유치원 선택을 두고 갈등하던 당시에 라디오 불교 유나 방송에 사연을 올린 어느 지체 장애인을 대하던 비구니 스님의 답변이 내게 브레이크를 밟고서 기독교로 노선을 바꾸게 한 계기가 되었다. 장애 인식에 대해서 모난 불교와는 달리 기독교에선 장애인을 대할 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 은총의 몸이라 했다. 그런 둥근 시선이 내 본성이 가리키는 진리에 더 가까웠다.


큰 아이를 선교원에 보내면서도 엄마인 나는 그 뒤로도 라디오 불교방송을 들으며 일 년을 보냈다. 이미 힉창시절부터 도서관에서 읽어오던 책들은 기독교와 불교의 종파를 초월해 있었고, 동서고금의 양서들을 넘나들고 있을 때였기에 내면에 별다른 혼돈과 갈등은 없었다. 누가 물어보면 자녀는 선교원에 보내고, 엄마는 불교방송을 듣는다고 얘기하곤 했었다.


큰 아이가 선교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레나 마리아>와 이어령 선생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두 권의 책이 계기가 되어서 인생의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날 무렵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개척교회 사모님이 나를 전도하기 위해서 3년을 기도했다던 그 시기에도 그분들의 유혹적인 도움의 손길을 조심스레 거부했었다. 도움을 받으면 교회를 나가야할까봐 매이고 싶지 않았다. 친정과 시댁이 멀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섬처럼 고립된 집에서 혼자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비록 몸이 상했지만, 내가 손길을  내밀기만 하면 지척에 있었던 교회지만 도움을 받았던 적은 없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분들의 보이지 않는 기도가 고마운 터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두 자녀의 손을 잡고서 제 발로 주일날 교회를 나가게 된 것이다. 교회를 정하기 위해서 작은 개척 교회와 집에서 가까운 대형 교회와 집에서 조금 먼 중형 교회 중에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앙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중형 교회를 선택하게 되고, 5년 간 그곳에 몸담았다. 


처음 교회를 방문한 그때가 빼빼로데이를 앞둔 11월의 주일이었기에 선물로 빼빼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두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진정한 섬김을 배우기 위해서, 이 결심은 이미 20대 가슴에 품은 뜻이기도해서,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자 혼자 가슴에 품었던 씨앗이 맺은 하나의 결실과도 같았다.


예수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섬김을 받으러 교회에 간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배우며 섬기기 위해서 교회에 간 셈이다. 그 섬김이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세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랬다. 부끄럽지만 교회의 환영식은 떠들썩했다. 새신자 교육을 받던 4주 동안, 문자 몇 통을 주고받던 어느 집사님의 추천으로 문서사역부로 가게 되었다. 교회에 다닌지 한 달 뒤부터 교회 안에서 꿈꾸던 나의 섬김이 작으나마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교인들을 만나서 '칭찬 원고'를 의뢰하고 글을 받아서 원고 교정을 보고 담당 집사님께 이메일로 넘기는 일이 내가 담당한 일이었다. 그 사명은 내가 교회당을 떠나올 때까지도 계속된 섬김이었다. 그리고 더 커다란 교회로 나아가는 걸음이었다.


함께 문서사역을 담당했던 이 권사님은 지금도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한다. 이 권사님은 서울의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신 후, 울산대 교수인 남편을 따라서 울산으로 내려오신 분이다. 교직에 있다보니 총 열한 분의 목사님을 모셨는데, 학교에서 가까운 교회를 선택하다 보니 지금의 교회로 오시게 되었고, 권사님은 인간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물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교회당을 떠나온 후로 일 년에 한 차례씩 잊지 않으시고 나를 불러내셔서 밥을 사주신다. 작년엔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하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재작년 가을엔 이 권사님을 만나서 통도사 앞 식당에서 사주시는 산채비빔밥을 먹고 무풍한송로를 함께 산책하면서 한희철 목사님의 <어느 날의 기도> 시집을 선물해드렸었다. 


우리 딸아이를 위해서 닭을 잡아주시던 장 집사님은 우리 가정을 위해서 목장의 목자 가정이 되어줄 테니, 교회에 다시 나오라고 하신 게 코로나 펜데믹 전의 말씀이다. 성가대실에 함께 있어도 별다른 대화를 나눈 적 없던 방과후 아동 쉼터 '반올림'의 이집사님은 지금껏 일 년에 한 두 차례 안부 전화를 주시는데, 지난 주 아침에도 전화를 받았다. 내겐 고마운 분들이고, 여전히 교회다.



2016년 교회당을 떠나올 때의 답답한 심정을 가슴에 담아둘 수 없어서, 2017년 4월에 시작한 페이스북, 내게 온 첫 친구 신청은 같은 교회에 다닌 박 집사님이다. 교회 안에선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서, 처음엔 친구 신청한 분이 누군지 몰라서 프로필과 포스팅을 살펴보니, 교회를 떠나오기 직전 주보에 실을 원고를 문자로 의뢰했던 분이었다. 박사 학위를 받으신 후 울산대 교수로 가시게 된 사연을 전교인들과 함께 나눌 신앙 간증이 주보 원고 청탁의 내용이었다. 


그렇게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나와 우리 가정이 삶과 마음을 나눈 교회의 성도들 한 분 한 분이 내겐 교회에 내린 뿌리였다. 삶의 중심에 두었던 뿌리를 뽑아내는 일은 또 한 번의 죽음과도 같았다. 석가모니가 카필라 왕국을 떠나올 때의 심정이 이와 같았을지 어땠을지 지금도 가끔 헤아려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자본주의의 물질과 문명 사회를 벗어나서 스스로 20대에 산과 인도로 향하던 떠남이 내겐 먼저 있었다. 그것은 이 생에서의 성공과 풍요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나그네 길이다. 사실 나는 아주 어려서도 마음에 성공과 풍요를 꿈꾸어본 적이 없다. 굶기를 밥 먹듯이 보낸 유년기였지만, 하늘을 보면서 자랄 수 있었고 나에겐 늘 마음이 문제였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 후 목장을 선택할 때에도 또래 자녀를 둔 가정이 아닌 선교원 원장이신 권사님이 계신 목장을 선택했다. 그곳이라면 섬김을 더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섬김'이 나에겐 화두였기에, 목장 생활에서 받을 수 있는 섬김과 혜택은 애초에 접어두었다. 우리 가정은 목장 식구들과 따로 나들이를 간 적이 없다. 그전에 목장 생활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다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 고지식한 엄마로 인해서 자녀들에겐 목장의 추억이 없다. 목장 모임은 나 혼자서 낮시간에 선교원에 잠깐 들러서 가졌던 짧은 기도와 식사 모임이 전부였기에.


어려서부터도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아온 삶이다 보니, 목장 생활에서 오는 재미와 안락은 관심 밖이었다. 주일 학교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교사의 역할까지 사역을 담당하시고, 주중엔 선교원의 원장님이기도한 권사님은 늘 바쁘셨고 나는 그분의 뒷모습에서 섬김을 배웠다. 함께 점심을 먹을 가정도 안정적이진 못해서 주일 예배가 끝나고 목장별 점심식사 시간엔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나에겐 외로울 틈이 없었다. 외로움은 나에겐 이미 익숙한 옷이었고, 내 곁엔 언제나 책이라는 좋은 길벗이 있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지금도 내겐 고마운 선물이 된다. 


주중엔 한 번도 쉬지 않고 '말씀 공부' 과정을 빠짐없이 반복해서 참여했었다. 그리고 5년 간 매 주 있는 목장 모임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비교적 단순한 삶을 살아오던 내겐 따로 정리할 생활이나 버릴 습관이랄 것도 없어서, 내 생활은 교회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었고, 그외 자녀의 학교와 가정과 집안 일들은 자연히 교회 일정을 중심으로 순조롭게 조정이 되었던 것이다. 신년 다이어리에는 예배와 기도 모임과 목장 모임과 말씀 공부 날을 일 년 단위로 먼저 표기해두고 교회를 중심으로 나머지 삶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살았다.


새신자였지만, 일 년이 지난 무렵부터 십일조를 하기로  결심했다. 교회는 매 달 절기마다 행사는 왜 그렇게 많은지 감사 헌금 봉투와 절기마다 특정 헌금 봉투와 주일 헌금, 작정 헌금, 선교 헌금, 십일조 봉투까지 보태면 주일 아침마다 최소 서너 개의 봉투를 들고 예배당이 있는 3층까지 천사처럼 오르곤 했었다. 그래도 기쁘기만 했다. 주일이면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또래들과 함께 춤추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고 기도를 배우는 삶이 그대로 행복한 섬김의 삶으로 이어질 것만 같았기에 교회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기만 했다. 


그런 생활을 3년을 넘게 해오던 내게 목사님은 '집사'라는 안수를 주셨다. 그리고 그날 바로 고 집사님은 내 손을 잡더니 성가대실로 향했다. 40여 명의 성가대원 중 총무 집사님이 나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시더니, 바로 그날 오후에 처음으로 교회에 성가대 밴드 모임방이 만들어졌다. 그곳에 간간히 글을 올리는 일이 내겐 소소한 즐거움이었고, 교인들과도 작은 소통의 창이 되었다. 나에게 교회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얘기하라면 성가대 생활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가대원을 하면서 종교 생활에 더욱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 받은 사랑과 기쁨으로 넘치던 사랑방이었다.


주일 아침이면 싫다는 아이들을 깨워 일찍 챙겨서 성가대실에 모여 주일 예배 1시간 전에 찬양 연습 후 헌금 봉투 서너 개를 챙겨서 3층 예배실로 향했다. 성가복이 내겐 천사의 날개옷 같았다. 구두를 신고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은 경쾌했고 우아했고 마치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착각에 스스로 빠지기도 했었다. 우리 가정에게 있어 교회는 위험하고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노아의 방주가 되어있었고, 이생에서 누리는 천국이자 구원의 직행 열차였다. 


삼복 더위 복날 딸아이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닭을 먹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엄마에게 주문 통닭이 아닌 엄마가 해주는 삼계탕이 먹고 싶다는 말을 했고, 어떻게 그 얘기를 어깨 너머로 들으신 장 집사님은 밀양 시골집에서 손수 키우신 닭을 잡아서 가마솥에 넣기도 하셨는데, 성가대 전체 모임 외에도 우리 가정과 또 한 가정을 따로 초대해서 바베큐 파티를 해주시던 고마운 마음들, 어린이날 체육대회, 가을 야유회, 전교인 삼겹살 파티, 성가대 연말 음악회를 위해서 카페를 통째로 빌려 음대 교수인 바이올리스트를 초대해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려준 집사님 등등 교회 생활은 풍요로웠고 생활은 기름졌고 달콤한 나날이 쉼없이 돌고돌아서 일 년이 가고 또 일 년이 금새 흘렀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안정적이고 윤택한 생활을 해오던 나와 우리 가정의 종교 생활은 그렇게 순조로웠고 행복했다. 교회 행사 때면 반복되는 불신자 가족 초대의 자리를 통해서, 자판기 커피를 함께 마시며 얘기를 나눌 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된 남편까지도 마음을 돌이켜 온가족이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자녀들까지 각자의 주일 학교 자리에서 또래 친구들과 행복한 교회 생활을 지내고 있었다. 그랬던 천국이자 행복의 왕국과도 같았던 교회당을 떠나온 것이다. 어쩌면 더 넓은 교회, 세상으로 나아가는 열린 걸음이다.


행복에 잠든 나를 흔들어 놓은 건, 뿌리를 내린 달콤한 교회와 교인들이 아니었다. 신약을 읽으면서 만난 예수였다. 내 양심 깊은 곳으로부터 가느다란 물줄기처럼 때론 바늘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빛처럼 사라지지 않는 한 마음이 있었다. 신약 성서의 예수에 비추어 내 양심의 거울은 더 닦여졌는지, '이게 아닌데, 신앙 생활과 섬김의 삶이 이게 다가 아닌데'하는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내게 신약 성서를 눈 앞에 펼쳐서 읽던 경험은 밝은 태양빛 아래 선 것처럼 눈이 부셔서 거듭 눈을 감아야 했으며, 가슴이 깨어나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 예수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온전한 진리의 몸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해의 바탕에는 그동안 읽어온 불교 서적과 동서고금의 인문서적과 수행서와 경전이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신약 성서는 내 가슴으로 곧바로 못이 박히듯 파고들었고, 하늘에 박힌 별처럼 지금도 못이 빠지지 않고서 나와 함께 살아서 생명의 숨을 쉬고 있다.


예수는 외식하는 자 교만하며 풍요로운 엘리트 바리새인을 두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으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가까이 하며, 지상에서 가장 가난한 자에게 대접한 것이 나에게 대접한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분명 세상과 단절된 노아의 방주 같은, 내가 다닌 교회의 담임목회자가 설교하는 기복 신앙이 되는 자녀의 성공과 가정의 부유함과 물질의 풍요와 안정된 삶과 교회의 부흥과 성공, 그것은 예수가 보여주는 마음과 내면의 세계와는 분명히 노선이 달랐다. 예수는 그렇게 나를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었다. 


교회와 목사라는 이름이 요즘처럼 욕을 먹는 시대가 종교 개혁을 꿈꾸던 루터의 중세 시대 쯤에나 있었을까? 콘슨탄티누스 황제의 야욕으로 기독교가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오늘날 개신교회의 기틀이 갖추어졌다고 하니, 괜스레 한 인간이 뿌린 탐진치 삼독의 씨앗이 이만큼 자라서 우리 사회에 이 만큼 끼치는 해악을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그래서 내겐 한 생각 일으키는 일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두려움이 언제나 있다. 그래서 기도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온전치 못한 기도가 이루어질까봐. 온전치 못한 기도조차도 이루어질 줄을 알기에.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과 머리가 무겁기만 하다. 그럴 수록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곳곳에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음을 본다. 


그 빛은 비록 작을지라도 밤이 깊고 어두울 수록 작은 별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가난을 사랑했던 성 프란치스코 신부님과 고독과 침묵을 사랑하신 법정 스님과 바보 김수환 추기경님과 무리를 떠나 홀로 산으로 오르시던 고독한 예수의 뒷모습이 내겐 어둔 세상 별이 되었고, 오늘도 우러러보면서 걸어가는 별자리가 된다. 김기석 목사님의 선한 연대처럼, 별은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며, 하늘에서 거리두기를 하며 서로가 서로를 위한 하나의 별자리가 된다.


내가 몸 담았던 교회의 목회자와 경상도 지역의 일부 극우 개신교의 목회자들과 일부 정치인들과 장사치들의 의식은 참 많이도 닮아 있다. 그들을 볼 때면 마치 사고뭉치 어린 아이를 보는 심정과 같다. 내가 몸담았던 담임목사의 설교도 자세히 보면, 입으로는 예수를 말하면서도 예수가 하늘로 오르시며 주고 가신 성령이 아닌 탐진치 삼독에서 허우적거리는 목회자의 독재체제로 교회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밑에서의 달콤한 안정과 풍요였다. 영혼이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하늘을 가리는 그 달콤함의 구름을 걷어낸 것이다.


내가 달콤한 교회당을 떠나온 일은 어찌 보면 때가 되어 스스로 열매가 익어서 신앙과 구도의 유치원을 졸업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예수의 이름을 간판에 두지만 예수와는 상관없는 교회, 한국 교회는 성공과 부흥을 외치는 기복 종교로써 의식 수준은 여전히 구약의 모세와 다윗과 야곱의 유치한 물질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깨어나고 있는 개신교인들과 몸부림 치고 있는 목회자들이 어느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고 별자리가 되어서, 이 어둔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빛나는 길이 되어주고 있다.


그저 성공과 부흥과 물질의 부유함과 세상과 자기 자신을 구분 짓는 맹신앙의 거룩함에 도취 되어서 스스로 세상과 둑을 쌓고 침체된 체 영혼과 생명의 심지가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든, 꺼져가고 있는 병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개신교회가 또한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그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탐진치의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 또한 나 자신이기도 하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과 겉모습을 말함이 아니다. 성도의 마음과 영혼과 내면 세계를 말함이다. 예수가 그토록 가리켰던,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함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숨처럼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로 숨을 쉰다.


그리고 지금도 개신교와 불교와 천주교와 한국의 풍류를 넘나들면서 구도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길 위의 나그네가 나의 모습이다. 마음이 가리키는 길, 양심이 비추는 길이다. 이제는 멈출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이 길은 위로 오르는 길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고, 나를 채우려는 배움이 아니라 나를 비우려는 배움이다. 탐진치의 세상과 거꾸로 가려는 몸부림이다. 내 마음으로 온전히 들어온 진리는 오직 예수의 마음 밖엔 없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내려서 등에 짐처럼 짊어지고 가는 것이 아닌, 성령의 해처럼 씨알처럼 가슴에 품고 가는 길이다. 


만약에 개신교의 담임목회자가 안정된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불경도 읽는다면, 신약의 예수가 하신 말씀을 더욱 온전히 이해함으로 성도들에게 예수의 마음과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바람과 아쉬움이 늘 있다. 진리의 구도자로써 불타 석가모니는 시대를 앞서 간 모범생이기도 했기에 나는 부처로부터도 하느님의 숨결, 공성의 하늘을 본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나처럼 종교를 넘나드는 이들이 참 많이 있다. 이런 이들에게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을 붙이기 이전에 제발 공부 좀 하시기 바란다. 욕심을 채우려는 물질의 성공과 부흥을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을 비워서 저절로 하늘이 드러나게 하는 마음 공부를 말함이다. 성경과 불경과 동양의 경전이 쉼없이 지금도 살아서 그 길을 가리키는 등불이 되고 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어야지, 목회자가 성경을 자신의 목적과 수단을 위해서 한 구절만 뽑아 읽고서 설교 시간에 팔아먹는 자는 세상에 독을 뿜는 바리새파 같은 독사의 자식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또한 나 자신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맹신앙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숙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 모든 만물에 깃든 진리, 내가 찾으며 바라보고 있는 하나는 그런 하느님이다. 신약 성서의 예수가 끊임없이 가리킨 것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이다.


이렇게 정처 없는 듯 자유롭게 종교를 넘나들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진리의 몸이 되신 예수와 성령이 있고, 구도자의 모범생인 부처의 불성이 있고, 진리와 양심의 성령이 해처럼 때론 샘물처럼 나를 비추고 있다.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집에 있든지 밖에서 누굴 만날 때에도, 자유이신 바람은 언제나 불고 싶은 데로 부는 자유의 바람이기에.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에 숨을 불어넣어 주시는 숨은 하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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