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의 벽이 없는 집

 


사방의 벽이 없는 집
바람의 벽이 있는 방

오랜 세월을 견뎌낸 나무들이 
네 개의 기둥이 되고

나이가 비슷한 나무들이 
가지런히 지붕이 되고

누구는 신발을 신고서 걸터 앉아 
손님이 되기도 하고

누구는 신발을 벗고서 올라 앉아 
주인이 되어도 좋은

에어컨도 필요 없고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벽이 없는 집

부채 하나로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면
스스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신선도 되고

먼 산 흘러가는 구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물 같이 구름 같이 그리 흘러가는 운수납자도 되고

자신의 내면을 고요히 보고 있으면 
그대로 보리수 나무 아래 앉은 부처가 되는 

지고 가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서
십자가 나무를 생각하는 바람의 방

이곳에 머무는 사람은
누구든지 길 위의 나그네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집

바람의 벽이 있는 방
바람이 주인이 되는 방에서 

한 점의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가
흔적 없이 지나는 순례자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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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그릇과 찻잎 찌꺼기

 

 

엄마가 일하러 나간 후
배고픈 아이들만 있는 빈 집으로

짜장면, 짬뽕, 마라탕, 베트남 쌀국수, 떡볶이 국물이
이따끔 지구를 돌고 돌아가며 다국적으로 배달이 된다

늦은 밤 높이 뜬 달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면
한 끼니용 플라스틱 그릇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공장에서 기름으로 만든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에
먹다가 남긴 배달음식들도 죄다 기름투성이들

주방세제를 열 번을 뭍혀가며 제 아무리 문질러도
기름과 기름은 서로 엉겨붙어 미끌미끌 나를 놀린다

그냥 대충 헹구어 재활용 폐기물로 버릴까 하다가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썩지 않는다는 플라스틱이라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나 하나라도 
하나의 쓰레기라도 줄이자는 한 생각을 씨앗처럼 숨군다

주방세제를 뭍히고 또 뭍히고 
씻겨내고 또 씻겨내어도 미끌미끌

저 혼자서 기름과 씨름하다 보면
이렇게 쓰는 물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집 앞으로 흐르는 강물과 바다한테까지 
내가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자연한테 미안한 마음에 속울음을 울면서도
그렇게 미련한 짓을 쉬 멈출 수 없는 이유를 찾느라

기름과 물 사잇길로 사색의 풀숲을 헤치며 나가다 보면
저 멀리 사색의 길 끝으로 한 점의 별빛이 보인다

농사의 신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름 모를 풀을 먹고서 죽어가는 민초들을 불쌍히 여겨
백 가지의 풀을 먼저 먹어본 후 알려주었다는 신농

그 자신도 독초인 줄 모르고서 뜯어먹은 후 죽어가다가
우연히 바로 옆에 있던 나무의 잎을 뜯어먹게 된 신농

그 잎으로 해독이 되어서 다시 살아났다는
신농과 차나무의 이야기가 해처럼 떠오른다

차를 마신 후 무심코 버리던 찻잎 찌꺼기를 
그냥 개수대 한 곳에 모아두기로 한 후

기름으로 엉겨붙은 플라스틱 그릇을 살살 문질렀더니
찻잎 찌꺼기 점잖게 지나간 자리마다 맑게 갠 하늘이다

깨끗하게 씻긴 플라스틱 그릇에는 무엇을 담을까?
앞으로 기름기가 있는 음식은 되도록이면 피해야지

여름날 수박과 토마토를 잘라서 담아두기로 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갈증도 나고 배가 출출한 아이들 

가볍고 밀폐도 잘 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은
아이들이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는 과일 그릇으로 딱이다

그리고 물로 기름때를 씻느라 설거지를 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어 있는 내 몸속의 길이 아득하다

지구를 세 바퀴 돌고 도는 만큼의 길이라는
내 몸속의 길로 무엇을 흘려보낼지 말지 생각하게 된다

문득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도
마음은 이렇게 씻기어 흐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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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나면 <조국의 시간>을 읽기로 했다




요즘은 학생들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한다. 학교에서도 코로나 안전 수칙을 잘 지키느라 등교하는 날이 많지 않다. 

고1이 된 딸아이가 가끔 침대에 모로 누워서 귀로만 듣는 온라인 수업이 절반이래도, 돌아오는 시험날은 나가는 월세와 월급처럼 어김이 없다.

그 옛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리면, 혼자서 집으로 걸어가는 밤길이 어둑했다. 동대신동 영주터널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멈추어 서면, 언제나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먼저 살피다가, 머리 위에는 달이 혼자서도 밝고, 바로 옆으로 우뚝 보이는 혜광고등학교 창문들마다 그 늦은 시간까지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거기서 그대로 북녘 하늘로 가로선을 그으면, 저 멀리 대청공원 6·25충혼탑 꼭대기에 작은 불빛들이 마치 작은 별빛 같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두 눈도 따라서 깜빡이다가 지우듯 고개를 돌리고, 언제쯤 저 학교 창문에 불빛들이 꺼질런지, 달이 가는 길을 궁금해하다 보면 잠시 무서움도 잊을 수 있었다.

밤새 어둡고 쓸쓸한 시간을 어떻게 견디나, 방바닥에 누워서도 그런저런 생각을 꽃 피우다가 잠이 들던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서대신동과 동대신동은 산새와 지새가 둥그런 교육 마을이라 불리었다. 그대로 둥근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던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무분별한 재개발로 인해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볼썽사납게 세워지면서, 나의 어린 시절 그 끝없는 한 폭의 하늘을 뚝뚝 끊어놓았다. 하지만 가슴속에선 언제든지 어릴적 뛰놀던 서대신동 바위산 위에서 바라보던 그 커다랗고 밝은 하늘이 펼쳐진다.

고향 마을을 감싸 돌던 구덕산과 푸른 부산항 앞바다도 밤에는 잠을 자는지 늘 깨어 있는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오늘밤에도 달은 어김없이 그 밤길을 혼자서 걷고 있겠다.

 



고1 딸아이가 얼마 전에 <나철 평전>을 다 읽었는데, 기말고사가 끝나면 <조국의 시간>을 읽기로 했다.

남편이 온라인 예약으로 주문한 6쇄 본을 단숨에 내가 먼저 읽고, 그동안 가슴에 옮겨 붙은 불꽃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저 혼자서 가슴 먹먹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2주도 안 지나서 25쇄을 찍었다는 기사를 본다. 아마도 대한민국 출판 역사 이래 처음 찍는 놀라운 기록일 것이다.

흔들리며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때론 길을 잃고 헤매이기도 하는 이 땅의 길이, 내가 걸어온 길이고 또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이 풍진 세상이다. 

다른 한 쪽에선 진실과 정의를 덮으려 기를 쓰고 있지만, 이제는 조국이라는 한 사람이 그저 한 점의 불쏘시개와 촛불을 넘어서, 바른 마음으로 바른 눈을 뜨게 해주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맑은 별빛 같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마음의 짐을 편히 내려놓으시고, 가족들과 함께 그저 평안하고 자유롭게, 이 땅 어느 곳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그 마음 만큼은 자연인과 자유인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랄 뿐이다.

상록수의 푸른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져온, 이 한 점의 별빛을 묵묵히 생각하면서 그리고 가슴에 먹먹히 씨알처럼 품고서 살아가려는 이들이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다.

지금도 밤길을 걷는 듯 이 어둔 세상, 오래 쉬지도 못하고서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또 걸어가야 하고 살아가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 진실과 정의와 사랑이 불꽃처럼 번지고 있는 모습을, 내가 있는 곳에서도 평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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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섬나라가 아닌, 대륙과 하늘의 나라다

해외 여행이라 하면 비행기가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코로나 비상시기로 출입국이 엄격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하늘길이 아니고선, 지구상의 그 어느 다른 나라든 갈 수 없는, 땅의 길이 막힌 처지가 현재 한국의 입장인 셈이다. 

세삼스레 이런 현실을 떠올리다 보면 가슴 한 구석이 갑갑해진다. 마치 지구촌의 대륙으로부터 한국이라는 나라가 뚝 떨어져 섬처럼 고립된 것 같아서 스스로의 입지를 돌아보게 된다. 

마치 일본처럼 섬나라가 된 한국은 아닌지. 그래서 국민들의 정서까지도 섬나라의 폐쇄성을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를 내려놓지 못할 때가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구한말 한국이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겪으며, 광복 직후 열강들이 이 땅에서 일으킨 6·25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나라가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당장에 주린 배부터 채우느라 급속한 경제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한국이 한반도의 반토막 짜리 좁다란 땅에서 정신없이 몸부림 치는 동안, 섬나라의 고립된 정서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주된 원인이 주변국들의 이득권으로 갈라놓은  한반도의 허리인 휴전선과 청산되지 못한 일제와 친일 잔재들임을 거듭 잊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이 사람이 한반도의 끝자락에 살든 서울에 살 적에도 이런 생각과 마음은 변함이 없는 푸른 하늘과 같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를, 있는 모습 그대로 하늘 거울은 언제나 유유히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해처럼 떠올려 본다. 맑고 시리도록 투명한 역사의 거울은 가리워진 적이 없다.

땅에는 땅따먹기 놀이라는 것이 있지만, 하늘에는 하늘따먹기 놀이란 것이 없다. 하늘따먹기 놀이란 것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놀이가 되었던 적은 아마도 유사 이래로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엉뚱한 한 생각을 일으킨 필자가 스스로 우습기도하다. 나는 땅에서 길을 잃거나 내가 설 땅 한 켠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끝이 보이지도 않는 하늘 끝자락까지 바라보려 애쓰던 무거운 한 마음까지도 이제는 내려놓으며,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 돌이켜 내면으로 향한다. 그러면 내 안으로 그와 같은 무한의 하늘이 펼쳐진다. 우리들 머리 위에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든지 언제나 우리가 선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느님은 하늘을 펼쳐놓으셨다. 끊임없이 펼쳐진 이 크고 밝은 하늘이 우리들 머리 위에 늘 있어서 우리를 내면의 하늘로 인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정신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고 한다. 뿌리가 썩은 나무는 세월의 풍파를 거치면서, 탁하게 말라가는 어느 한쪽 가지는 잘려나가기도 하고, 또 맑은 수액이 흐르는 가지에선 새순이 돋아나기도 하는 것이 나무의 일생인 자연의 이치라는 법정스님의 법문이 별처럼 빛난다. 

일제강점기 때 <성서조선>에 실린, 김교신 선생의 '조와(弔蛙)'라는 글 속의 문장에서처럼 '얼어 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전멸은 면했던 것처럼,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말살정책과 열강들의 이권으로 인한 6·25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잔재와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던 친미제국주의의 물질만능주의의 악영향으로 인해, 단군의 한민족 정신의 뿌리가 썩었다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그래도 이렇게 다 썩은 것은 아닌 것이다.

한국은 섬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그 뿌리로부터 대륙의 나라이자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 민족인 것이다. 지리상으로 남한의 중심이 되는 황간역 2층 마실 카페 벽에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 그림이 있다. 지금은 은퇴하신 강병규 역장님의 부연 설명이 잊혀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 베를린에서 열린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의 여정이다. 손기정 선수는 양정고보 시절 김교신 선생의 제자이기도 하다. 담임선생님이기도 했던 그는 직접 자전거를 타며 손기정 선수를 훈련시켰고, 동경 예선전까지 따라가서 그를 코치했었다고 전한다.

황간역장님의 이야기를 옮기면, 손기정 선수가 일본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역을 경유하여, 독일의 베를린까지 열차표 한 장으로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순간 깨어났다. 한국은 애초에 대륙의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라도 통일의 날이 오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 훌쩍 기차표 한 장을 끊고 기차에 몸을 싣고서, 울산을 출발해서 서울과 평양을 거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서 만주와 울란바토르 대평원을 지나며, 끊임없이 펼쳐지는 대륙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헤아리다가 잠이 들고, 또 북인도를 경유해서 윤동주 시인이 사랑한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고향까지도 갈 수 있는 입장에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셈이다. 

스무 살 중반에 인도 전역을 6개월간 둘러본 적이 있다. 뭄바이에 내려서 방갈로르, 뿌네, 첸나이, 캘커타, 비하르, 델리, 리쉬케쉬, 티벳의 임시정부 다람살라까지. 그냥 잠시 스치듯 어느 마을을 지나치기도 하고, 마음이 머무는 곳에선 방을 빌려서 한 달여간 머물기도 하면서, 요가 아쉬람과 요가 센터 등지에서 명상과 아사나 수행을 익히던 시절, 그때는 한치의 앞날도 알 수가 없는 마치 망망대해 망망대천을 표류하던 시절, 잠시 머물고 떠남을 반복하며 길 위에 선 나그네처럼, 가슴으로 마른 모래바람이 지나가던 순례길을, 암흑 속에서 언뜻 보이는 별빛을 따라서 걷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그렇게 떠돌며 책과 수련 경험을 통해서 여러 구루들을 알게 되었지만, 가슴에 남아 있는 한 분은 라마나 마하리쉬다. 그는 언제나 한 장소에서 오래 앉아 있으면서 깊이 내면으로 들어간 수행자다. 언제나 떠올리면 떠오르는 그의 평온하고 인자한 얼굴과 눈빛이 평온을 준다.

인도의 대륙은 외국인에 대해서 관대한 곳이었다. 지금은 무방비 상태로 덥쳐 오는 코로나 사태에 힘겨워하고 있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많이 애처롭다. 게중에 최근 본 고마운 뉴스가 북인도의 하이데라바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시바라는 한 남학생이 코로나19확진 판정을 받은 후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이 좁아서 스스로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자가격리를 하였다는 소식이다. 인도인들의 의식이 하늘로 그리고 우주로 열려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한 모습이다. 

오래전 인도 곳곳에서 만난 그들은 참으로 순박한 사람들로 추억한다. 각지를 순례하면서 만났던 인도 사람들과 유럽인들과 미국인 또 우리와 같은 한국인 여행자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다들 만남의 첫인사로 먼저 나오는 질문이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이었다.

"한국"이라고 대답을 하면, 곧장 되돌아오는 대답이 "북한? 남한?"이라는 또 한 번의 질문이었다. 처음엔 그러한 질문 자체가 어색했지만, 그렇게 물어보는 외국인이 어디 한 두 명이어야지. 그러면서 우리가 속한 나라 한국의 처지를 다시금 재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미있었던 건,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부터 주입되다시피한, 한국인들이 그렇게도 동경하는 미국에서 온 어느 미국인의 태도였다. 한국, 독일, 이탈리아, 이란 등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은 리쉬케쉬의 어느 식당 테라스에서 서로 나누었던 인삿말이 지금까지 화두가 되기도 한다.

다들 자기의 출신 나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미국인 샘의 차례가 되었을 때, "I'm sorry, I'm American." 그러면서 정말로 샘은 자신이 미국인인 것을, 우리가 세뇌되었던 것처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아닌,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꽁지머리의 샘은 리쉬케쉬의 요가 아쉬람에 숙소를 정하고서 그곳에서 장기간 머물며 생활하고 있던 미국인, 그의 인삿말이 내내 가슴에 남는다. 그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때부터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이 열린 셈이다.


어제는 <나철 평전>을 딸아이에게 읽어보도록 권했다. 딸아이는 책장을 펼쳐 읽기 시작하더니,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놀라워하는 눈치다. 간간히 익숙한 이름들과 사건들이 나온다며, 갑자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제 방 책장에 꽂혀 있던 중3 국사책을 가지고 온다. '나인영과 무장단체', '을사오적'이라는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함께 국사교과서를 펼쳐서 읽어보았다. 수업 시간에 국사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셔서 딸아이가 필기를 해둔 이름으로 '나인영, 오기호'라는 이름이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다. 딸아이는 '나인영'이라는 이름을 외우면서 여성의 이름인 줄 알았다며, '나철'의 옛 이름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중3 국사 교과서에는 이러한 문장이 있다. '단군 숭배 사상을 기반으로 한 단군교(대종교)는 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고 씌여 있다. '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단군교(대종교)'라는 문장은 이번에 새로 읽게 된 <나철 평전>에서도 보았던 문장이기도 하다.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에 그토록 밑줄을 그어가면서 외우고 시험 때마다 백 점을 받았는데도, '나인영'이란 이름도 '단군교'와 '대종교'라는 이름은 낯선 이름이었다. 현 국정 국사교과서에 실린 역사의 문장이 바르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인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썩은 뿌리로부터 오른 가지는 때가 되면 세월의 풍파에 저절로 떨어져 잘려나갈 테고, 맑은 수액이 흐르는 마른가지에선 새순이 돋아나리라는 자연의 이치가 수천 년을 지나온 나무의 일생이고, 우리의 역사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좁고 잘려나간 국토의 막다른 땅이지만, 이 땅의 역사를 크고 밝게 비추는 하나의 거울 같은 하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서, 언제든 땅에서 길을 잃으면 하늘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 예수와 석가모니의 손가락이 가리킨 우리의 내면으로 펼쳐진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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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입바람에 날아갈까
손바람에 흩어질까

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셋이서 잠잠히 있었지

몸으로
숨 한 점 잇는 일이

허공으로 
손길 한 줄 긋는 일이

땅으로
한 발짝 옮기는 일이

순간을 죽었다가
영원을 사는 바람의 길이라며

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셋이서 숨 한 점 나누었지

하지만 한 점도
모르는 이야기

몰라도 훌훌 좋은 
숨은 바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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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하늘, 그 원맥을 <나철 평전>에서 찾았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일본인도 사랑하는 세계 평화의 시인,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늘이 아름다운 시인, 그런 윤동주 시인의 하늘이 나는 늘 궁금했었다. 그 하늘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학술서와 문학서에선 어린 시절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마을인 북간도, 그곳 마을에 살던 이웃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라서 그렇다고들 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윤동주 시인의 하늘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 펼쳐지는 하늘은 분명히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이다. 시에서 크고 밝은 한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시인이 윤동주인 셈이다.

나는 늘 그의 하늘이 궁금했었다. 그 하늘의 원맥이 궁금했었다. 그동안 윤동주 시인과 관련한 대부분의 책들 그 어디에서도 안타깝지만 그 원맥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철 평전>을 읽으면서 북간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의 선각이 된 인물인 '나철'을 알게 되었다.


<삼일신고>, <신리대전>, <신단실기>, <천부경> 민족의 경전과 그에게로 이어지는 대종교를 통해서 윤동주 시인의 하늘 그 원맥을 찾게 되었다.

'대종교'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그 당시에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으로, 단군의 '홍익인간'과 '제세이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대종교는 독립운동의 선각이 되었다.

 



<나철 평전>을 통해서 알게 된 하늘의 원맥은 윤동주 시인만이 아니었다. 권정생 선생님이 좋아하신 올바른 역사학자 신채호, 정인보, 안재홍, 조소앙, 손기정,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지청천, 조선의 말과 글을 지킨 주시경, 지석영, 외솔 최현배. 많은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나철의 대종교인들이었다. 나철 그는 독립운동의 선각이다.

역사의 진흙탕 속에 숨어 있던 보화를 발견한 자의 떨리는 심정으로 딸아이에게 물었다. "딸아~ 3·1독립운동을 아느냐?", 딸아이는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표정을 짓는다.

"딸아~ 그러면 3·1독립운동이 있기 이전에 도화선이 된 독립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느냐?", 딸아이는 그런 것도 있느냐는 표정이다. 

"바로 일본 동경의 유학생들인 YMCA 한인 기독교 청년들에 의해서 일어난 2·8독립운동이다. 2월 8일은 너의 생일날이기도 하니까. 평생 잊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런데 그보다도 앞선 2·8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무오독립운동이 이미 만주와 북간도에서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번에 엄마가 알게 되었다며,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자녀들 앞에서 선포하었다.

3·1독립선언문과 그보다 더 앞선 2·8독립선언문에 친일 인사들의 입김이 섞여 있다면, 순수한 조선인의 입김으로 씌여진 독립선언문은 만주와 북간도에서 독립투쟁을 하던 나철의 대종교인들에 의해 씌여진 무오독립선언문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딸아이와 아들 앞에서 거듭 말해주었다. 

어린 자녀들이 당장은 그 뜻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어린 자녀들의 마음밭에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는 봄날의 가벼움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역사의 거울을 밝히지 못한 민족에게는 나아갈 미래가 선명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 온세상을 이롭게 하고 평화롭게 하는 단군의 홍익인간과 제세이화의 하늘을 통해서 나는 하느님의 얼굴을 본다. 고조선의 화랑과 선맥의 풍류를 보고, 부처의 불성을 보고, 공자의 군자를 보고, 예수의 성령을 보고, 참자아, 본성, 진리의 온전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인의 DNA 속에 유유히 흐르고 있는 크고 밝은 세계 평화의 하늘을, 나는 윤동주 시인의 시뿐만이 아니라, BTS의 춤과 노랫말에서도 본다. 

크고 밝은 하나의 하늘빛을 무지갯빛으로 꽃 피우고 있는 다이너마이트의 한국과 전세계의 젊은이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하늘과 진리의 원맥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철은 한국의 역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으로 독립운동의 선각이다. 조선인 최초로 자신의 명함에 한글과 한자와 영문의 이름을 나란히 새긴 멋스러운 이름, 아름다운 하늘을 윤동주 시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이어준 이름, 그리고 알게 모르게 오늘날의 우리 후손들에게로 유유히 이어준 원맥의 이름인 것이다. 

이곳에 다 담지 못한 숨은 보화 같은 이야기들은 새로 꽃 피운 <나철 평전>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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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다

 


펼치다
책의 양 날개를

두 손의 도움으로
책장들이 하얗게 날갯짓을 하노라면

살아서 펄떡이는 책의 심장으로
고요히 기도의 두 손을 모은다

느리게 때론 날아서
글숲을 노닐다가 

눈길이 머무는 길목에서 멈칫
맴돌다가 
머뭇거리다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내 안으로 펼쳐지는 무한의 허공을

가슴으로 불어오는 
자유의 바람이 감당이 안 되거든

날개를 접으며 
도로 내려놓는다

날개를 접은 책
책상 위에 누워 있는 책이지만

아무리 내려놓을 만한
땅 한 켠 없더래도

나무로 살을 빚은 종이책 위에는 
무심코 핸드폰을 얹지 않으려 다짐한다

내게 남은 마지막 한 점의 숨까지
책과 자연에 대하여 지키는 한 점의 의리로

하지만 내게 있어 
책은 다 책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책이란
돈 냄새가 나지 않는 책
탐진치의 냄새가 나지 않는 책을 말함이다

그러한 책 속에는
사람의 손을 빌어 쓰신 
하늘의 뜻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학급문고 만들기 숙제로 주어진
책 하나를 만나기 위하여 처음으로 들어간

동네 모퉁이 작은 서점 그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한 그루 어린 나무가 되었다

서점 안에 있는 책들의 제목을 일일이 모두 다 
제 가슴에 비추던 중학생 그때의 마음은

오늘도 한결같아서 
고즈넉이 혼자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고

자유의 푸른 바람이 펄럭이는
하늘 냄새가 나는 그런 고마운 책에게는

자유의 날개를 펼쳐주고 싶다
내게 주신 이 작고 고마운 두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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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종

 

 


좋아요
참 좋아요
너무 좋아요

우리집 마당 돌담 밑에는
엄니가 딸을 위하여 어렵사리 구해오신

올해만 세 번째로 여차저차
이렇게 심어 놓으신 어린 박모종이 살고 있어요

정말 좋아요
비가 오는 날도 좋아요
해가 쨍한 날도 좋아요

아무리 외롭고 쓸쓸한 저녁답이라도
하얗고 순한 박꽃은 새벽답까지 

어둠과 나란히 밤길을 걸어가는 
다정한 길벗이 되어주지요

초여름부터 
둥근 박이 보름달을 닮아 익어가는 늦가을까지

하루도 어김없이 
박꽃은 하얗고 순한 얼벗이 되어주지요

고마워요
참 고마워요
너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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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음의 빗소리

 

 


구름이 
운을 띄우면

하늘이 땅으로
빗줄기를 길게 드리우고

무심히 지나던 바람이 
느리게 현을 켠다

낮아진 빗소리는 
풀잎들의 어깨를 다독이는 손길로

작아진 빗소리는 
거룩한 이마에 닿는 세례의 손길로

땅에 엎드려 울음 우는 모든 생명들을
어르고 달래는 공평한 선율로 낮게 흐르는

한 음의 빗소리에 기대어
가슴으로 깊고 긴 침묵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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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폰과 지평

 


어느 날 보니
검지손가락이 아렸다

왜 그런지 몇 날 며칠
몸속을 샅샅히 돌며 역학조사를 해보니

통증의 원인은 터치폰
늘상 검지손가락만 쓴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
무딘 가운뎃손가락과 약지를 조심스레 써 보았다

이처럼 새로운 손가락을 쓰는 일은
몸이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넓혀 가는 일

그래도 새끼손가락은 먼 곳
아직은 미지의 땅

그러는 동안 가장 튼튼한 엄지손가락은
뭘 하고 있는지 문득 보았더니

언제나 빈 공간에서 홀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땅에는 머리 둘 곳 없어
깊고 푸른 하늘로 둔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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