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베트남 여성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의 부끄러움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1970년대 세계반전 운동의 푯대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맞서 오랜 항불 투쟁을 해왔던 호지명은 이미 당시 제3세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에도 굴하지 않았고, 잠시 이 나라를 점령했던 일본에도 항복하지 않았던 호지명과 그의 조국 베트남. 미국은 이 나라를 침략했지만 결국 손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1953년,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축출된 이후 베트남에서는 제네바 회의의 결과로 평화적인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프랑스가 지배했던 남베트남과, 이미 해방이 된 북베트남의 통일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렇게 해서 베트남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베트남을 어떻게든 다시 식민지 상태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 세계의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점령전쟁이었고,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성격이 분명하게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애초에 이 전쟁을 지지했던 언론들도 하나 둘씩 돌아섰다. 베트남 침략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여지없이 땅에 떨어뜨렸다.

 

 

 


미국은 내외적으로 이렇게 몰리자 뒷감당을 하기 어렵게 되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이를 집행한 권력이 되었다. 우리사회 일부에서는 이른바 베트남 특수로 우리의 경제가 발전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고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도 된다는 식의 풍조를 가져올 수 있는 반인류적 선택이다.

당시 한국군은 그곳에 가서 미군의 전략에 따른 용병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우리와는 아무런 적대적 관계가 없는 곳에서 살상의 현장을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 책임은 물론 일차적으로 미국과 이에 동조한 박정희 정권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책임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모한 양민학살의 증거는 이후 밝혀졌고, 이러한 기록들은 우리가 베트남에게 이후 국가적 사죄를 해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아직도 베트남에게 국가적 차원의 공식 사죄를 한 바가 없다. 국가 수뇌의 유감 표명 정도로 그쳤을 뿐이지, 진지하게 역사적 차원의 사죄를 밝힌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의 강요에 의해 그렇게 했다는 논리로 이해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경제관계를 진전시키는 쪽으로 미래지향적 선택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베트남의 자세를 깊이 성찰하고 우리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말았다. 베트남에 남겨 놓은 한인혼혈 라이 따이한의 문제도 내팽개쳐 버린 지 오래이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마치 한국에 시집오는 것이 환상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베트남 여성들을 능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최근 일어난 베트남 아내에 대한 한국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 동영상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명백한 인권침해에,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 나라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이다.

베트남은 강대국을 차례차례 이겨낸 강인한 나라다. 지금은 아직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지만 수십 년 전쟁의 폐허와 고난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것만 보아도 놀라운 민족이다. 이런 나라의 여성들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가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과 자책이 훨씬 더 깊어져야 우리는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나라가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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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카잔차키스의 영혼

 


 

어떤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원시적 힘을 가진 사나이 <그리스인 조르바>와 인간적 유혹 속에서 마침내 자신을 지켜낸 예수를 그린 <최후의 유혹>은 서로 다른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하나로 묶인다. 그건, 무수한 고난과 좌절 그리고 절망 앞에서 결국 무너지지 않은 인간에 대한 갈망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그리스 출신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세상에 충격을 준 글이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그는, 터키에 지배받아왔던 그리스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가계의 자손이었다. 그는 강인해야 했고,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내야 했다. 두려움을 정복하고, 희망의 봉우리에 올라서야 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년에 집필한  <영혼의 자서전>에서 카잔차키스가 어떻게 자신을 뜨겁게 일구어냈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서전이 얼마나 문학적이고 철학적일 수 있는가도 함께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폭우로 온 마을의 포도밭이 다 떠내려가면서 모두가 비통해하고 있었을 때, 입을 꽉 다물고 미동도 하지 않고 “우리는 남아 있잖니”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카잔차키스는 이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평생의 버팀목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생명의 철학자 베르그송과, 인간의 초월적 책임을 일깨우면서 인간 내면에 있는 위대한 힘을 이끌어 낸 니체의 제자인 그는 인간의 영혼이 가진 용맹함에 대해 깊은 신뢰를 부여했다.


 



 

카잔차키스는 젊은 시절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한다. “목표를 향해 나가라. 멈추거나 소리를 지르지 마라. 너에게는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가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 한계점이 무엇이든 간에 너는 앞을 향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그는 고독과 우울함과 좌절에 맞서 격투를 벌어나갔다.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영혼에 언제나 싸워야하는 쟁투의 기운만 가득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운명하는 자리에서 남긴 이야기는 이러하다. “소와 양, 당나귀들을 잘 돌보아라. 짐승들도 인간이다. 우리처럼 영혼을 가졌지만 가죽을 쓰고 말을 못할 뿐이다. 옛날에는 다 인간이었다.(...)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잘 돌봐라. 열매를 얻고 싶으면 거름과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한다. 나무들도 옛날에는 인간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거냐?“ 인간이란 삼엄하거나 가파른 산을 끝까지 올라야 하는 일과 사랑하는 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격전의 현실 속에서도 그 영혼이 거칠어지거나 무자비해지지 않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다. 나비가 되려는 유충을 억지로 나비가 되게 하려다가 실패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 카잔차키스는 생명의 법칙을 넘어서 서두르지 않는 지혜를 일깨운다. 결국, 모든 것은 통과해야 할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수한 싸움을 치러 오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때로 우린, 격투에 몰두하며 사랑을 잃었고, 다급한 마음에 순서를 지키지 않고 억지를 부렸던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당장의 일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강인하면서 너그럽고, 멀리 내다보면서 깊이 있게 기다릴 줄 아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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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5월의 능선에서

 

 

우리에게 5월은 유난히 격동의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필 5월인가 싶은 질문을 굳이 던져본다면,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그런 계절의 지점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이 때를 그냥 보내면 여름이 다가오고, 그러다보면 무언가 계기를 잡아내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5월은 그런 점에서 어떤 고비를 힘겹게 넘어서는 경계선에 있는 듯 하다.

이런 느낌은 달리 말하자면, 초조감과 통한다. 이후의 시간은 너무나 쏜살같이 흘러서 그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연말의 지점에 자신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건 당혹스러운 일이다. 마땅한 결실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또다시 새롭게 오는 일년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일 년의 이 시점에 이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압박감을 경험하게 되는 모양이다. 날씨도 좋고 자연도 아름답고 바람도 맑고 흙냄새도 풋풋하다. 그렇게 계절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면, 아차 하는 사이에 5월도 지난 달력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렇게 5월의 향기에 취하는 것이 실수는 아니다. 도리어, 그걸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 실수가 아닐까.

 

 



빠르게 다가오는 시간을 의식하는 일에 신경을 집중시키면 준비에 철저할 듯 하다. 하지만 그건 그 계절마다 우리 안에 마련되어야 할 바를 놓치고 마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다급함과 초조감으로 이루어낸 일들이 올바로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우격다짐이 되거나 두루두루 살펴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해가 시작된 1월에 품어야 할 마음이 따로 있고, 얼었던 강이 풀리는 3월에 먹어야 할 마음이 있다.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4월에 떠올려야 하는 생각이 있고, 신록(新綠)의 풍경이 산하(山河)를 물들여가는 때에 갖추어야 할 성찰의 내용이 있다. 다짐이 필요한 때가 있고, 반성이 요구되는 시간이 있으며 다시 한번 자신을 신선하게 자극시켜야할 시각이 있는 법이다.

아무 상념 없이 하늘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여유가 절실한 경우가 있고, 가파른 언덕을 정신없이 달려 올라가야 할 순간이 있기도 한 것이다. 그때 마다의 개성과 요구, 그리고 적절한 마음가짐에 눈을 돌리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나 당장 닥친 일에 허겁지겁 몰두하는 하루살이 인생이 될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길러지는 내공이 없어 그걸 발휘해야 할 때에 무력해지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린 불필요하게 초조해지고 마는 것이다. 결국 실패하고 말 격동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만다. 다 허무해지는 첩경이다. 자신을 낭비하는 길이다. 계절마다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지혜가 있는 자는, 인생의 그 어느 순간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서 하루가 되고 한달이 되고 일년이 될 것이다.

5월의 능선에, 저 멀리 정상을 바라보며 이제 가야할 거리만 정확히 측정하려는 바보가 아니라 하늘과 바람과 별을 바라보고, 맑은 물소리를 듣는 지혜가 깊어졌으면 한다. 그런 이가 아름답게 성공할 것이다.

 

김민웅/목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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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5)

 

도리어 애틋한 시작

 

 

시간이 빈틈을 보이는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김없는 순서로 계절은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것처럼 여기기조차 합니다. “어느 새”라는 말은 우리의 무방비한 자세를 폭로하는 것이지 시간의 냉혹함을 일깨우는 말은 아닙니다.

 

활을 한번도 쏘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한해의 마지막 달력을 응시하는 순간, “세월이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낯설거나 또는 자주 들었다고 해서 구태의연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만큼 그 속도는 비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리 헛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가져오는 속도감의 격차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이보다는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도 사실 더 관건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점차 이루어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기대를 완성시키는 기쁨이 다가오는 듯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자신에게 허락된 여유를 치밀하게 측정해야 하는 초조함이 깊어질 것입니다.

 

 



한 번 이상을 살아볼 수 없는 인생에서 아쉬움은 늘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있게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이라는 가정은 현실에서 어떤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 본다 해도 실험할 수도 없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단 한번 주어진 인생의 기회는 도저히 낭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낭비라는 것도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평가할 때 비로소 생기는 후회나 억울함이라면 사전에 이를 막을 도리는 아예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오만하려 해도 도저히 전지전능할 까닭이 없는 인간의 숙명 같은 조건에 기인한 사태일 것입니다.

 

알고 보니 쓸모없는 경험, 이제 와서 보니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던 여정, 안목이 좁았던 탓에 미루거나 거부해버렸던 결정과 선택, 결코 놓쳐서는 안 되었던 인연 들 모두가 다 따지고 보면 충분히 기회를 용납해주었던 시간 앞에서 빈틈을 보인 자신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이를 뚜렷이 절감하기까지는 역시 시간의 훈련으로 마음이 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가 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잃은 듯하지만 얻는 것이 있고, 얻는 듯하지만 잃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상실했다고 슬퍼해도 그걸 넘는 깨우침이 있으면 그는 새로운 자아를 얻을 것입니다. 반면에, 무언가 성취했다고 즐거워해도 그것에 그대로 취하면 그는 황무지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영혼을 어느 날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하면 그나마 자신을 돌아보지만, 성공하면 세상의 갈채에 금세 취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기로에 서서 자기 자신을 진실 되게 채울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란 어차피 가게 되어 있으며 늙음은 오지 말라 해도 우리 몸에 미처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스며들고, 후회란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을 바에야 결국 부질없는 자기학대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면서 사실 그건 마지막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의 애틋한 시작임을 안다면, 아쉬움보다 감사함이 앞서지 않을까 합니다. “그해 12월은 내게…” 하는 아름다운 회상이 있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깊어지는 나날입니다.

 

김민웅/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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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4)

 

김광석 21주기, 그 노래 그 사람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로 시작되는 그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젖어들게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도 그의 이 노래는 마치 우리 모두가 함께 통과해온 시간들에 대한 깊은 추억처럼 남게 됩니다. 그의 특이하게 애조 띤 목소리와 아무런 꾸밈없이 말하듯 다가오는 가사, 그리고 소박한 풍경화 같은 곡들은 한 시대의 눈물과 사랑을 일깨운 것입니다.

 

“김광석” 우리 노래의 역사 속에서 너무도 일찍 아쉽게 사라진 하나의 별 같은 존재. 그의 21주기가 바로 오늘입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배우 송강호가 북한 인민군 장교로 나와, 남한 군과 어울려 이 노래를 듣다가 “광석이 갸는 와 길케 일찍 갔네?”하고 난데없이 슬프게 읊조릴 때 관객들은 모두 그 말에 하나가 되고 맙니다. <이등병의 편지> 마지막의 “이제 다시 시작하자 젊은 날의 꿈이여”가 열창되는 순간, 어느 누구의 청춘도 결국 남루해지지 않게 됩니다.

 

 

 

 

그의 노래 <내 사람이여>는 이런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 줄 수 있다면/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너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 너의 길을 비추겠네./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 줄 수 있다면/이름 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음 눈물이 고운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

 

“김광석”은 그렇게 자신의 시와 노래와 눈물, 그리고 사랑이 그득히 담겨 있는 영혼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났습니다. 1964년 생으로 1996년에 세상과 작별을 고했으니 겨우 서른넷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였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아 인생을 좀더 맑게 살아야겠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서 지내야겠구나, 이 세상에 사랑해야 할 것이 이리도 많은데, 라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입에서 창과 칼이 뿜어져 나오는 가시 돋친 설전에 익숙해가고, 침략자를 닮은 눈매를 따라 배우며 날이 갈수록 초라해져가는 영혼의 실상에 눈이 멀어가는 그런 시대를 어루만지며, 조용한 음성으로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진 한 청년 예술가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이 세월이 살만한 보람이 있는 듯싶습니다. 무대 위에서 잠시 객석을 흥분시키며 난무하는 춤은 있으나 오래도록 기억되어 따스한 피로 흐르는 몸짓은 보기 드물고, 열광하는 인기에 스스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들 역시 많으나 시간이 갈수록 도리어 뚜렷해지는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는 이는 또한 흔하지 않습니다.

 

노래 <내 사람이여>에는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내가 너의 사랑이 될 수 있다면, 이름 없는 한 마리 새가 되어도 좋겠네. 너의 새벽을 날아다니며 내 가진 시를 들려 주겠네… 내 사람이여, 내 사람이여.”

 

그는 지금 자신의 시를 들려주는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이름 모를 작은 새가 되어 우리 곁을 날아다니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받고 비틀거리며 아파하는 이들 모두에게 그의 노래가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는 그런 신비스러운 진동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좋은 노래가 살아있는 마을은 결코 황폐해지지 않습니다. 그 노래를 기억하고 부르는 이들이 많을 때 세월은 우리를 속이거나 배반하지 못할 겁니다. 아니 때로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우린, 웅크리고 숨을 죽이다가 그냥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일은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 젊은 날의 꿈이여”라는 그 애절한 열창이 못내 귀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웅/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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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4)

 

소리의 자본주의

 

요시미 순야(吉見俊哉)라는 일본의 문화 사회학자가 쓴 <소리의 자본주의>는 전화로부터 시작해서 라디오나 축음기에 이르는 사회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제목이 <소리의 자본주의>라고 붙은 것을 봐도, 저자의 인식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소리가 돈벌이가 되어가는 현실을 보여준 셈이었습니다.

전화나 라디오, 그리고 축음기는 다만 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하나의 사업이 되고 또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통신과 대중문화를 누가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지게 마련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화가 애초에 라디오 중계의 전신의 단계를 거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전화는 통신수단으로서 확대되어가기 전에 이미 오락적 요소로 그 기능을 발휘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1881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의 경우, 그 안의 두 곳에 테아트르 폰이라고 하는 전화가 놓여 있었고 이 전화기를 통해 박람회장 안의 오페라나 공연 같은 것을 그대로 실황으로 들을 수 있게 해놓았던 것입니다.

 

 



어떤 극장의 주인은, 자신의 별장까지 전화선을 끌어 극장 안의 분위기나 반응도 이런 식으로 점검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라디오에서 전화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방식은 이런 과거의 모습과 사실 그리 다르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도 전화로 중계하는 경우도 생겨났고, 드디어 선거에도 그 결과를 놓고 바로 이 전화 중계가 한 몫을 하게끔 되기조차 합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전화 교환수의 목소리는 규격화되어갔고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라디오 역시 그곳에 쓰이는 목소리는 어떤 틀 속에 정형화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라디오 특유의 것으로 그 모습을 자리잡아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자연스러워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권력의 요구나 자본의 이해관계와 서로 어우러지면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주체화하기 보다는, 점점 그 규격화된 소리에 그대로 일률적으로 따라 가는, 그래서 행동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소리는 이제 권력의 도구가 되었고 자본의 상품이 되어간 것이었습니다. 파시즘이 이 라디오를 선전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경우였고, 따라서 이 소리들은 모두 “국가의 소리”가 되었으며, 또한 자본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군악대의 연주가 되어갔습니다.

결국 소리는 권력과 자본의 주도권 쟁탈의 목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의 소리가 가장 많이 울려 퍼지도록 하는가, 어떤 소리를 침묵시킬 것인가, 그리고 때로 어떤 소리는 왜곡되도록 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지금껏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소리의 자본주의> 체제 안의 현실입니다.

돈과 권력이 될 수 있는 소리와, 그렇지 못한 소리의 구별은 미디어 저널리즘의 일차적 원칙이 되어가고 있기조차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전쟁을 막고, 흔들리는 평화를 일으켜 세우며 진실을 밝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과 정의가 강처럼 흐르도록 하는 그런 미디어 저널리즘의 존재, 이런 것이 오늘날의 세상을 밝게 만들어 가는 힘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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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3)

 

고독한 바다와 마주하며

 

 


대학시절에 보았던 바다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동해 경포대의 백사장은 너무나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길고 넓게 펼쳐져 있던 모래 길은 뚝 끊어진 채, 과장하자면 손 뼘 만 한 백사장만 남기고 그대로 바다와 만나고 있었습니다. 여유와 품위를 잃어버린 해변은 우울해 보였습니다.

싸구려 유흥가로 변해버린 바다는 생존의 치열한 경쟁 끝에 기진맥진해버린 민초들의 절망을 닮아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들 그렇게 바다에 초라한 진을 치고 호객의 자리를 펴고 싶었겠냐는 항변이 들려오는 듯도 했습니다. 모두가 아귀다툼 끝에 뜯어먹은 바다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입니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던 작은 섬들은 이미 점령당한지 오래이며, 맑고 투명했던 동해의 영혼은 자신의 바다에서 쫓겨나간 채 홀로 슬피 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여전히 가시철망에 포위된 주변의 해안선은 자연도 정치와 역사의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열기에 물러설 곳이 없어진 도시에서 혹여나 하고 바다로 찾아간 나그네는 거기에서 또 하나의 작은 도시가 들어서 있음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어쩐지 갑자기 몰락해버린 도시의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린 곳이 된 셈입니다.

정작 보고자 했던 것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풍요한 풍경이었습니다. 도회지에서 몰려든 인파 앞에서 어설픈 화장을 하고 어색한 교태를 부리려는 여인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인 바다를 팔아 도시의 일부가 되려고 하는 욕망과, 그 욕망에 깔린 아픔을 마주하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소박하고 순진했던 바다의 싱싱한 육체를 마구 유린해버린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저토록 동해의 백사장을 갉아 먹을 대로 갉아 먹어버려 백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꼴을 만들어버린 이들은 대체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관동 팔경이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어도 탄식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바다는 이제 잃어버린 꿈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눈을 부비며 태양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해변은 태고의 순간처럼 정갈한 몸으로 미소 지을 수가 없게 되고 있습니다. 갯벌은 침략당하고 있으며, 모래는 약탈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며 포구(浦口)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분주한 새벽을 향해 깨어나려는 도시로의 귀환은 그러나 그렇게 두고 온 바다를 그래도 그리워하게 합니다. 아직은 회생의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릿한 바람 냄새도 사라지고, 조용하게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도 침묵해버린 곳이라도 바다가 도시보다는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바다가 고독해지는 때가 오면, 다시 바다로 떠나렵니다. 인파가 무심히 헤집고 가버린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지며 기운을 차려가는 바다를 보고 싶어서입니다. 바닷가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속에서 뱃사람들이 남기고 간 전설도 듣고, 어촌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밤도 지켜보는 겁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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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2)

 

태양과 장마가 만나면

 

태양과 장마가 서로 엇갈리면서 여름을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숨이 막히도록 더운 공기와, 축축하게 습기가 찬 날씨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것도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묘한 것은 이 두개의 세력이 서로 반목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글거리는 태양만이 존재한다면, 나무와 풀과 강은 질식하고 말 것입니다. 흙은 먼지가 되고 사막은 점점 몸이 불어나, 화산이 폭발한 뒤에 쏟아져 나온 마그마처럼 숲과 도시를 기습해 들어올지 모릅니다. 바다조차 더 이상 해초와 물고기들의 안전한 서식처가 되지 못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태양의 신”은 저주를 내리는 존재가 되고 이를 떠받들던 사제들은 모두 깊이 절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태양의 신을 위한 제단을 받들던 신화의 시대는 그로서 종식되고 재앙의 징벌만 난무하는 가혹한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온 지구의 몸속에 스며 있던 물기가 다 하늘로 빨려 올라간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닙니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땅의 물은 그렇게 태양의 광선을 타고 올라가 하늘의 물이 되어 크기가 자라고 무게가 채워지면 낙하의 준비를 완료하게 됩니다.

 

 

 

 

태양이 작열했던 까닭의 하나가 어느새 지쳐가고 있던 지상의 기력을 다시 불려 들여 하늘의 기운으로 재충전하여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인 것을 이로써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건, 산과 들, 계곡과 하천에서 산만하고 미력하게 작업을 하던 일꾼들을 소환하여 대군으로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만나면 각기 자신이 있었던 곳의 소식을 교환할 것입니다. 혼자서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할 겁니다. 흙 속 저 깊은 곳에 계속 갇혀 지낼 뻔한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고공비행을 하면서 파견임지를 바꾸는 흥분으로 들떠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름의 긴 장마는 그래서 지구의 새로운 소식과 접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는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저 파미르 고원과 아마존의 정글, 프라하의 이끼긴 시냇가와 아프리카대륙의 서안을 끼고 대서양을 막 돌아 마주치는 케이프타운의 이국적 풍경과 예기치 않게 만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비는 낙하의 순간, 지역을 따져 묻지 않고 인종을 차별하지 않으며 빈부의 격차에 따라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땅에서 쌓은 노련한 연륜과 하늘에서 다시 받은 기력과 소명으로 우리의 머리 위에, 우리의 들판 위에, 우리의 가슴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이로써 숨이 막혔던 영혼들이 기운을 되찾고 흙먼지가 되어가던 희망이 다시 녹색의 대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태양은 축복이 되고 장마는 자신의 일을 마치면 물러갈 줄 아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으로 남을 겁니다. 그런, 좋은 여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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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0)


타부의 경계선이 없는 사회


“타부”라는 말은 본래 폴리네시안 즉,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 뜻은 “금기”, 또는 “접촉하면 안 되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애초의 의미에는, “신성한 존재”, “신적 두려움”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타부”란, 그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사회적 금기로까지 확대된 문화인류학적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부”는 그 사회의 정신적 중심에 무언가 성스러운 영역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시상태에서부터 문명의 상태로 진화해나가는 과정의 현상입니다. 그것이 그 사회의 질서를 나름대로 유지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자신을 보다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스러운 영역을 내세워 금기를 과도하게 부여할 때 그 사회는 억압적이 되고 맙니다.




“타부”가 많은 사회는 그래서 본래 의도했던 바대로 신성한 사회로 발전하기 보다는, 금기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공포를 권력과 풍속의 도구로 이용해서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현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과학적 진실이 별반 발언권이 없을 때에는, 이 타부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부당한 타부가 사라지고 진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부와의 전쟁은 달리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할 진정한 대화의 통로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 감히”, 라든가 “그러면 부정 탄다”라든가 아니면 “성역을 건드리지 마라”식으로 할 말을 못하게 막는 사회에서 그 사회의 정신과 문화가 진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모세의 예를 들면서 인간에게 두 개의 가족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자신을 낳아준 가족, 그 둘째는 그를 길러낸 가족입니다. 모세는 고대 이집트 제국의 노예 히브리 족속의 후예로서 죽을 고비에 처해 있을 때, 제국의 왕가의 딸이 그를 건져내 기릅니다. 이 두 가족의 문화와 위상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그러나 결국 모세는 그를 사회적 존재로 길러낸 제국의 가문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본래의 가족관계로 복귀합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그의 성장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2차 가족 관계라고 하는 사회적 현실이지만, 그 본심을 움켜잡게 되는 것은 1차 가족이라는 뜻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1차 가족에서 형성된 생각과 자세가 그에게 보다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1차 가족 안에 만일 소통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가족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처벌위주의 타부가 많은 사회의 현실과 동일해지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너무 무질서해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식이 되어 다시 권위를 다잡으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진로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금기가 강조되는 타부는 사라져야 마땅하며, 그 대신 그 자리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소통의 자유가 들어차야 합니다. 그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라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자유로운 생각, 그리고 제한 없는 상상력으로 자라나는 사람이 우리의 힘입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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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9)

 

<서울 1964년 겨울>, 그리고 <서울 2016년 겨울>

 

 

이제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에 너무 늙어버린다면 그것은 어떤 뜻일까요? 작가 김승옥의 단편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은 그렇게 너무 빠르게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면서, 우울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던 세대의 자전적 독백을 담고 있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군화소리가 들리면서 혁명은 안개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가난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추격자처럼 바짝 뒤쫓아 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설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 둘이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얼핏 그야말로 시시겁쩍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삼십대 중반의 사나이의 마구 헝클어진 인생과 기묘하게 얽혀 하루를 지내다가 그 사나이의 역시 돌연한 죽음과 함께 서로 헤어지게 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나이의 아내는 그날 죽었으며, 그는 그 죽은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판 대가로 주머니에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서른 중후반의 사나이란 요즈음은 청년에 불과하지만, 그때 그 즈음의 그 나이는 전후(戰後)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던 인생의 피로함으로 상당히 지쳐있을 만한 처지였습니다. 소설의 한 대목에서, 통금시간이 가까운 때에 어느 집 문을 두드리면서 월부책값을 받으러 왔노라고 절규하듯이 흐느끼며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은 비틀거리고 있던 시대의 아픈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이십대 청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대학원생이고, 다른 하나는 시골출신 고졸의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처지나 위치가 다른 둘은 엽기적인 대화를 시작합니다. “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여기서 파리는 프랑스 파리가 아니라 파리, 모기 할 때 그 곤충을 말합니다. 질문을 받은 상대는 머뭇거리다가 반문합니다. “김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둘 다 만만치 않습니다. “파리”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께 쓰다니. 괴담(怪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자 애초에 질문을 던졌던 안이라는 청년이 대답합니다. “예, 날 수 있으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파리도 날아다니는데 자신의 인생은 이렇게 날지 못하고 쭈그러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괴감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오갑니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어찌 보면 난데없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꿈을 잃어가고 있을지 모를 세대의 입에서 나온 이 “꿈틀거림”이라는 단어는 사실 사뭇 절박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 절박함의 현실을 아까의 그 삽십대 중반의 사나이는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으로 마감하는, 그러면서도 아무도 거들떠보거나 기억해주지 않을 시궁창 속의 비극이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소설의 말미에서 두 청년은 서로의 나이가 이제 기껏 스물다섯임을 다시 확인하고는 이렇게 서로 주고받습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그 뭔가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서울 1964년 겨울>의 어느 골목에서 청년의 희망은 시들어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를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었습니다.

 

25세의 나이에 쓴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이 작품 속에서 김승옥은 희망에 대한 지독한 갈증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50여년이 흐른 지금, <서울 2016년 겨울>은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이라는 자조 섞인 조어를 되내이는 오늘의 스물다섯 살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있을까요? 약속은 남발한 부도수표처럼 거창하게 넘치고 막상의 현실은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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