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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믿음의 걸음이 뭔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좋은 글을 읽는 것은 저자가 걸은 사유의 길을 따라 걷는 것과 같지요. 애쓰며 걸은 걸음, 때로는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 장소들, 어떤 경우에는 비틀거리며 걷느라 깊이 패인 자국들로 다양하지만 뒤따라 걷는 이는 그저 여유로울 수밖에 없지요. 그이의 수고 덕분입니다. 오랜 사유의 흔적들에는 알맞이 이정표들이 있고 넉넉히 쉬며 목축일 수 있는 샘이 적당한 간격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길 잃을 염려는 없고 세워진 이정표들을 들여다보면 걸음에 담겨진 다짐과 시간의 무게를 뭉근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멈추지 않을 듯 했던 여름이 슬며시 물러나며 가을이 시작되는 때에 마치 저자와 산책하듯 《그대는 한송이 꽃》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은 지인들과 대화하거나 편지를 나누며 그때그때 사유를..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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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읽기에서 배운 가장 큰 미덕
김기석 목사는 숫자에 어두운 저같은 사람이 세기를 포기할 만큼 많은 책을 냈습니다. 만나 잠시 대화를 하거나 쓰신 책을 읽은 덕에 어떤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김기석의 신간이 나오면 얼른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꽤 자유로워졌습니다. 쓰신 책을 다 찾아 읽지 않아도 저자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책이라면 모를까, 김기석을 읽을 때 저는 더이상 지식이나 정보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새로운 정보로 차고 넘치지만 거기에 현혹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김기석의 책을 읽으며 정보와 지식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저는 김기석 읽기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회복했습니다. 느리게 가도, 소리가 작아도 그런 불편이 더 좋은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김기석 읽..
20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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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꽃잎
사과 한 알을 사이좋게 나누려는 손길로 평등하게 나누면 사과는 꽃이 되지 네 잎의 꽃 인의예지 다섯 잎의 꽃 화랑의 세속오계 여섯 잎의 꽃 육바라밀 일곱 잎의 꽃 천지창조 안식일 여덟 잎의 꽃 팔정도와 마태 팔복과 대한민국 팔도에서 살짝 떨군 독도 한 조각까지 중용, 중도, 성령, 양심, 진리, 사랑이라 달리 부르는 평등한 꽃잎 날마다 우리집 밥상에서는 둥근 사과가 동그란 접시 위에서 참되고 바르게 화알짝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지
20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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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감자가 들려주는
오늘도 고마운 하루를 주시는 흰구름 더불어 푸른 하늘이 푹푹 익어가는 여름날 마트 진열대에 투박한 손글씨로 1키로 2,980원 떨어진 감자값에 순간의 반가움 너머로 한 생각 바람 한 줄기 흙밭에서 떨구던 땀방울 채 마르기도 전에 짠 눈물에 시려 더운 한숨 짓지는 않았을까 산골에 사는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산다던 윤동주 시인의 한 줄 글에 찌는 가슴으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감자는 밥도 된다는데 문득 스친 거울 속 내 얼굴에도 삶은 감자 같은 무상심심 미묘한 빛 어릴까 새벽예불과 일과를 다하고 나서던 아침 양팔 활짝 핀 꽃처럼 나를 부르시며 안으로 들어오라시며 반기시던 시봉 스님 한 분에겐 떠나는 순간 한 분에겐 새로 온 순간 삶은 감자 껍질 같은 수행자의 옷자락 그 스침에 없던 내가..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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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은 손
씻은 손 합장하여 하나 둘 셋 물방울 떨구어 종이수건에도 닦지 말고 잠시 그대로 두고 물기가 어디로 가는고 없는 듯 있으면 바람이 말려주고 손이 스스로 손을 말린다 닦지 않아도 닦을 게 없다
20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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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예언자가 부르는 아리랑
성경은 악보와도 같다. 악보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일종의 암호다. 작곡가가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넣은 곡진한 마음 그리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심어놓은 살가운 이야기를 누군가 해독해야 한다. 그 역할을 맡은 이가 연주자다.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달리 들리는 만큼, 연주자의 해석은 무척 중요하다.설교자 역시 연주자다. 단순히 독자이기만 하다면 홀로 성경을 읽고 깨달아 실천하면 그뿐이지만, 설교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말씀의 신비를 풀어헤쳐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설교자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이자 설교자에게 현장이 중요한 이유다. 내가 20대에 처음 만난 ‘김민웅’은 설교자의 전형이었다. 미국 뉴저지 길벗교회가 그의 현장이었고, 거기서 전한 말씀이 《물 위에 던진떡》(한국신학연구소, 1995)으로 ..
2024.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