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에게 말을 걸다



오후에 작실에 올라갔다.
설정순 성도님네가 잎담배를 심는 날이었다.
해질녘 돌아오는 길에 일을 마친 이속장님네 소를 데리고 왔다.
낯선 이가 줄을 잡았는데도 터벅터벅 소는 여전히 제 걸음이다.
종일 된 일을 했음에도 싫은 표정이 없다.
그렇게 한 평생 일을 하고서도 죽은 다음 몸뚱이마저 고기로 남기는 착한 동물.


‘살아생전 머리에 달린 뿔은 언제, 어디에 쓰는 걸까?’


커다란 소의 눈이 유난히 착하고 맑게 보인다.
알아들을 리 없지만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소에게 말을 건넨다.


‘소야, 난 네가 좋단다.’


소는 여전히 눈을 껌벅거릴 뿐이었지만.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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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나무하러 가는 사람 왜 불러요?”


저만치 산으로 나무하러 오르다 잰 걸음으로 뛰다시피 내려오신 신집사님,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환한 얼굴, 마음이 그런 게 아니다. 체구에 맞게 만든 작은 지게를 마당에 세워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2월이 다가오자 집사님은 고민이 된다. 2월 1일부터는 용암 쪽으로 일을 나가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재배하는 곳에 ‘취직’을 한 것이다. 한 달에 세 번 쉬고 점심은 각자 지참. 그리고 월급은 18만원이다. 오가는 차비 빼고 나면 뭐 그리 크게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고정된 수입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만 생각하면 취직을 하는 게 집에서 품 파는 것보다야 열 번 편한데, 문제는 땔감이다. 연탄도 기름보일러도 없기 때문에 천생 나무를 해서 때야 한다.


‘개미 역사하듯 부지런해야’ 그나마 끼니를 잇고 방안 온기를 지키는데 왜 그리 나무는 잘 타는지, 한 짐 만들어 와야 두 끼 때고 나면 그만이다. 여자가 하는 나무란 잔가지뿐 굵은 나무는 엄두를 못 낸다.


형편이 그런데 출근을 하면 나무할 시간이 없게 되고, 그러면 끼니도 그렇고 난방도 그렇고, 그렇다고 집에 남아 있자니 생활이 걱정이다.


오래 해왔기에 잘 아는 일이지만 품 파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땀에 젖는 하루 수고도 수고지만 쉬는 날도 많다.


“까짓것 품 팔아야 손에 묻은 밥풀이에요.”


그저 끼니를 이을 수 있을 뿐, 집사님은 품을 손에 묻은 밥풀이라 했다.

안쓰러운 표정 한줌 보탤 뿐 난 더 할 말이 없다. 이야기를 나누고는 더듬더듬 기도를 한다. 큰 목소리, 자신 있는 기도는 언제부터인지 멀어진 일이다. 모질게 살아가는 집사님이지만 집사님은 눈물도 많다. 그래도 주먹으로 눈물을 닦곤 이내 웃음이다.


“어떡하죠?” 


어려운 이야길 들었을 뿐 아무 대답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신을 신으며 묻자 “어떻게든 되겠죠. 너무 걱정 마세요.” 하신다.

2월이 왔고 집사님은 출근을 했다. 그렇다면 나무는? 집사님 말마따나 모든 게 어떻게든 돼야 할 텐데.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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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예배

사진/김승범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를 두고 분명 거룩한 땅이라 이름 부를 것입니다.’


끝내 목이 멨다. 창립예배를 드리며 인사말을 하는데 가슴이 떨렸고 빈말은 삼가고 싶었다. 먼 길을 달려와 마당 한가운데 둘러선 사람들. 무엇보다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실명한 창식이 와준 게 고마웠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려오던 목회의 첫발. 오늘은 1987년 3월25일 수요일, 눈바람 불고 무지 추움.


이정송 감리사님과 유상국 목사님의 뒤를 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단강교회’라 쓰인 현판을 작은 사랑방 모퉁이에 힘차게 못질을 한다.


‘이제 시작이다.’ 안쓰러운 표정을 남기고 모두들 돌아갔지만 외롭진 않았다. 삶의 터전은 다르지만 우린 모두 하나님 품속에서 사는 거니까. 난 또 이곳에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야 하니까.


한 흐름의 앞쪽에 선다는 건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잘 견디며 깨어 있어야지. 흔들릴수록 방향감각 잃지 않으며.

-목회수첩은 가능한 계속 쓰도록 하겠다. 어쩜 난 쉽게 실어증(失語症)을 앓게 되겠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계속 기록해 보련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은 아니다. 짧은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기록함이 내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향한 내 가장 큰 애정임엔 분명하니까.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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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목양지로 가는 길



3月25日 이른 아침, 원주로 향하는 영동 고속도로엔 춘삼월에 어울리잖게 세찬 눈발이 휘날렸다. 이따금씩 비취는 햇살에 현란함을 더한 춘설은 창가보다는 창가에 기댄 가슴으로 부딪쳐 왔다.


첫 목양지로 향하는 빈 가슴이 오히려 든든했다. 내 떠남을 춘설로 기억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고마웠다. 그 길밖엔 없었다.


강원도행이 좌절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친구와 몇몇 선배의 얼굴이었다. 지금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여 나는 무조건 떠나야 했다. 


나를 위해 다시 한 번 마련된 그 자리로 떠나는데 자존심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한 공동체가 잃어서는 안 되는, 내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였다.


황동규의 시구 하나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살고 싶다, 누이여, 하나의 피해자로라도.’
친구야, 그리고 선배님들, 더 이상은 마십시오. 모두 저를 위한 격려임을 알지만 더 이상은 단강에 대해 염려를 말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변경할 수 없는 사실, 내가 단강에 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제부터 저는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약속하며 마련해준 따뜻한 배려, 그것이 제게 힘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저는 그것 아닌 것들과 싸워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불편함과 부족함일 것입니다. 넌지시 지켜봐 주십시오. 누구보다도 당신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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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님 아니세요?


주일저녁예배를 원주 시내에 나가 드리게 되었다. 성도교회 선교부 헌신예배에 설교를 부탁 받았다.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귀래 쪽으로 나가는데 용암을 지날 즈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아가씨였다. 묘한 불신이 번져 있는 세상, 믿고 차를 세우는 아가씨가 뜻밖이었다. 


아가씨는 뒤편 의자에 앉았다. 아무 말도 안 하며 나가는 것도 쑥스럽고, 그렇다고 뭐라 얘기하자니 그것도 그렇고, 무슨 얘길 어떻게 할까 하고 있는데 뒤의 아가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 한 목사님 아니세요?”


설마 나를 아는 사람? 룸미러로 뒤의 아가씨를 다시 한 번 쳐다보지만 아는 사람이 아니다.  “저는 모르겠는데, 어떻게 저를 알죠?” 아가씨가 웃으며 대답을 했다. 


“제가 목사님을 처음 본 건 중학교 때 버스 안에서였어요. 귀래중학교를 다녔는데 버스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책을 읽는 것을 여러 번 보았어요. 뭐하는 분이기에 버스에서 책을 읽나 궁금해서 친구들께 물었더니 단강교회 목사님이라는 것이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학생은 용암에 사는 학생이었고,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원주 시내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어떤 할머니가 고추 자루를 여러 개 가지고 버스에 탄 적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짐을 싣느라 혼나시는 걸 보면서 도와드려야지 마음은 그러면서도 나서질 못했어요. 왠지 창피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뒷자리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나와 할머니 고추 자루를 받아 실었죠. 그 사람이 바로 목사님이었어요. 그때 굉장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기억에도 없는 일을 그 학생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뜨끔했다. 저 학생은 또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때때로의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그 학생의 기억 속에 혹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면서도 생각은 그랬다. 


언제 어느 때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기! 남의 시선 의식함 없이 할 도리를 다하기! 난 새삼 마음속으로 몇 가지를 다짐해야 했다. 

  <얘기마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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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강의 겨울



눈이 오면 가장 신나는 게 아무래도 아이들과 개들이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동네 개들은 개들대로 모여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등허리에 옷 하나 걸치곤 질금질금 되새김질하며 한가로이 쉬고 있는 소나 그 옆 송아지에게 장난을 걸기도 한다. 껌벅이는 소의 큰 눈에도 내리는 눈이 가득하다.


아이들을 가장 아이답게 하는 것도 눈이다. 대번 마음이 열리고 열린 마음엔 날개가 달린다. 날리는 눈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들, 여기 저기 자기 키만 한 눈사람이 세워지고, 툭툭 던지기 시작한 눈뭉치가 어느새 편싸움이 된다. 하하하, 하얀 입김, 하얀 웃음들, 온통 하얀 세상이 된다.


토끼 발자국을 쫒아 올무를 놓기도 하고 틈틈이 올무를 확인하곤 한다. 성급하면 안 되지, 성급하면 안 돼, 빈 올무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이르고는 한다.


낙엽송 곧게 솟아오른 앞개울 건너 담안 골짜기, 사과 과수원 뒤편 백수네 담배 밭 바로 옆, 백수 네가 돌봐온 산소자리 언덕, 참 잔디 고운 곳. 눈이 오면 그곳은 천연 스키장이 된다. 비료 부대 위에 주저앉아 언덕 꼭대기부터 신나게 달려 내려오기도 하고, 내려오다 넘어지면 신나게 언덕을 구르고, 그렇게 눈사람 되고, 혼자서도 타고 앞자리에 동생도 태우기도 하고, 오줌 싼 듯 모두의 엉덩이는 펑퍼짐히 젖어들고. 


막걸리 빈병이나 플라스틱 소주병 또한 아이들의 스키 도구. 양쪽 발을 하나씩 올리고 앞으로 향하면 왜 그리 속도가 빠른지. 어, 어, 어, 어 대다 중심을 잃고.


종설아, 종하야, 정희야, 밥 먹어라. 골짜기 울리며 엄마, 할머니 불러대는 소리에 아쉬운 듯 집으로 향하면 집마다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들.


곱은 손을 불어 녹여 저녁을 먹고 쓰러지듯 잠이 들면 하얀 꿈은 밤새 하얗게 이어지고 다음날도 하얀 세상, 아이들과 개들은 다음날도 바쁘다.

눈이 오면 온통 하얀 세상, 단강의 겨울은.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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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흙벽돌로 지은 허름한 방, 임시로 마련된 예배처소도 그러하고 내 기거할 방도 그러하다.
문득 생각하니 묘하다.


동화작가 권정생에 대한 얘길 듣고부터는 흙벽돌집에 대한 기대를 은근히 가져왔지 않았는가. 


맑게 설움이 내비치는 사람, 그는 동내 청년들이 빌뱅이언덕에 지어준 작은 흙벽돌집에서 꽃과 함께 생쥐와 함께 살고 있다.


겉은 더 없이 허술해도 방안은 아늑한 집, 다른 건 없어도 좋아하는 책들이 빼곡히 들어있는 곳, 많진 않지만 책을 둘러쌓으니 마음속 바래왔던 기대 하나가 이루어진 셈이다. 낮에도 문을 닫으면 불을 켜야 하지만 족하다.


작은 카세트임에도 FM 방송이 두개씩이나 나오고, 커피와 촛불과 노래가 있으니까. 고요한 시간은 보다 창조적일 수 있을 테니까. 책상 앞 벽에 “所有는 적으나 存在는 넉넉하게”라 써 붙인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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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을 안다는 것



웬만한 지도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이곳 단강. 걸어서도 하루에 강원도, 충청북도, 경기도, 삼도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곳.


앞쪽으론 남한강이 흐르고 뒤쪽엔 이름 모를 산들이 그만그만한 크기로 동네를 품고 있다.


단군이 목욕해서 단강이 되었다고 떠나올 땐 그렇게 들었는데 와서 보니 그게 아니다. 단종이 피난 가다 잠시 쉬어갔다 해서 생긴 이름이란다. 아쉽다, 먼저 번 것이 훨씬 그럴듯한데.


단강리는 끽경자와 섬뜰과 작실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이 재미있다. 끽경자는 경자라는 여자가 강물에 빠져 죽어 붙여진 이름이고, 섬뜰은 마을의 4면이 강과 저수지 그리고 두개의 개울로 감싸져 있어 섬뜰이 됐고, 작실은 作室이라 쓰는데 ‘집을 짓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다.


내 숙소는 섬뜰에 있는데 여차하면 난 孤島에 갇히는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동네 이름과 길, 그리고 산이름 등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민요나 노동요 등도 찾아 봐야지. 새로운 이름을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에 익숙해진다는 것. 그게 삶의 과정일 테니까. 성숙을 향한.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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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소본능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방앗간의 방아소리가 며칠째 끊이지 않는다. 방앗간은 설날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고무 함지박을 줄 맞춰 내려놓고 사람들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대하는 밝은 표정들. 쌀을 빻기도 하고, 가래떡을 뽑기도 한다. 지나치는 길에 잠시 들여다 본 방앗간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설날에 대한 기대가 넘쳐 있었다.

강냉이 튀기는 기계가 있는 반장님 댁도 바빴다. 쌀, 옥수수, 누룽지 등이 빙글빙글 손으로 돌리는 기계 속에서 하얗게 튀겨져 나왔다.


“뻥이요!” 


소리를 치면 둘러선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귀를 틀어막고, 곧이어 “빵!” 대포 소리와 함께 하얗고 구수한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작실 단강리 섬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김영옥 집사님, 지금순 집사님 집은 콩으로 두부를 직접 만들었다. 작실엔 돼지를 두 마리 잡았는데도 모자라 또 잡기로 했단다. 엿이며, 강정이며, 만두며, 감주며, 집집마다 하얀 연기 피워 올리며 설 준비에 모두들 바빴다. 벌써부터 설빔을 차려입고 고향을 찾는 이들의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고향에 모여 가족임을 확인하고, 그새 늙으신 어버이 주름이며 흰머리 안쓰럽게 헤아리며, 집집마다 찾아 절을 하며 한 이웃임을 확인하는 설.


“아니 니가 아무개 아녀?”
“네 맞습니다.”
“많이 컸구먼, 몰라보겠어. 그래 어떻게 지냈누?”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자, 절 받으십시오.” 
“아니 절은 무슨 절, 됐어 됐어 봤으면 됐지.”


그럴수록 덥석 절을 한다. 절을 하는 이, 절을 받는 이 훈훈한 마음속 그렇게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 보이지 않는 끈이 곧 우리네 인생임을, 고향이란 이런 곳이지, 생의 뿌리를 깨닫는다.


어디 코끼리나 여우나, 연어뿐이겠는가. 누울 곳을 찾는 귀소본능이란 어쩜 다른 어느 동물보다도 인간에게 주어진 본능인지도 모른다. 설은 그 귀소본능의 확인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의 이유로도 돌아갈 곳이 있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많은 걸 갖고도 돌아갈 곳이 없는 이도 더러는 있는 법이니까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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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歸鄕)



잠깐 이야기를 들었을 뿐, 한 번도 당신을 뵌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 떠나는 날 한쪽 편 고즈넉이 당신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향년 92세, 그 세월의 길이는 얼마쯤일까요. 병원이었건, 양로원이었건, 혹은 노상(路上)이었건 사람들 말 당신 쓰러진 곳 어디라 하더라도 당신은 돌아와 고향 땅에 묻힙니다.

“어-야-디-야”


마을 청년 모자라 당신 조카까지 멘 상여를 타고 비 내려 질퍽한 겨울 길을, 오랜만에 물길 찾은 내를, 가파른 산길을 걸어올라 마침내 당신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꽃가마 타고 와 연분 맺었을 먼저 가신 할머니, 이번엔 당신이 꽃상여 타고 할머니 곁을 찾으셨습니다.            


사방 편하게 산들이 달려 당신 살아온 마을을 품고, 흐르는 남한강 저만치 한 자락 굽어보이는 곳, 문득 당신이 행복하다 싶었습니다.

돌아와, 끝나는 돌아와 당시 키워준 고향 땅에 눕는 당신의 귀향. 대한(大寒)을 하루 앞두고도 햇볕이 따뜻했습니다. 고향 품에 아주 안기는 당신을 반기 듯.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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