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강



새벽 강가에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올랐습니다.
어둠 속을 밤새 흐른 강물이 몸이 더운지 허연 김으로 솟아오릅니다. 

 


우윳빛 물안개가 또 하나의 강이 되어 강물 따라 흐를 때, 
또 하나의 흘러가는 것, 물새 가족입니다. 

때를 예감한 새들이 나란히 줄을 맞춰 날아갑니다. 


이내 물안개 속에 파묻혀 더는 보이지 않는 새들, 
물안개 피어나는 새벽 강에선 새들도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얘기마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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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들판

들판에 가 보았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은 들판을 가로 질러 
아지랑이처럼 달렸네 

들판에 가 보았네 
조용한 푸름
번지고 있었네 
하늘이 땅에 무릎 꿇어  
입 맞추고 있었네 

들판에 가 보았네 
언덕 위 
한 그루 나무처럼 섰을 때 
불어가는 바람 
바람 혹은 나무 
어느 샌지 나는 
아무 것이어도 좋았네.

-<얘기마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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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강의 아침



단강의 첫 아침을 여는 것은 새들이다. 아직 어둠에 빛이 스미지 않은 새벽,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삐죽한 소리가 있다. 가늘고 길게 이어지다 그 끝이 어둠속에 묻히는 애절한 휘파람 소리, 듣는 이의 마음까지를 단숨에 맑게 하는 호랑지빠귀 소리는 이 산 저산 저들끼리 부르고 대답하며 날이 밝도록 이어진다. 


새벽닭의 울음소리도 변함이 없다. 그게 제일이라는 듯 목청껏 장한 소리를 질러 댄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참새들이다. 참새들은 소란하다. 향나무 속에 모여, 쥐똥나무 가지에 앉아, 혹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수선을 핀다. 저마다 간밤의 꿈을 쏟아 놓는 것인지 듣는 놈이 따로 없다. 그래도 참새들의 재잘거림은 언제라도 정겹다. 가벼운 음악으로 아침 맞듯 참새들의 재잘거림은 경쾌하고 즐겁다.


오늘 아침엔 후투티 소리도 들었다 


“호-옹!”
“호-옹!” 


빈 병 가장자리에 입술을 대고 불면 나는 그 소리, 후투티는 이름도, 우는 소리도, 생김새도, 나는 모양도 모두가 특이하다.


새들이 여는 단강의 아침. 어느 샌지 날이 밝으면 이내 경운기 소리 햇살 따라 울려 퍼지고. 

-<얘기마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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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온 소포



Australia Yoo KYONG HAHM (오스트레일리아 함유경). 전혀 낯선 곳, 낯선 이로부터 온 소포를 혹 잘못 배달된 것 아닌가 거듭 수신자 이름을 확인하며 받았다. 커다란 상자였다. 분명 수신자란엔 '단강교회 한희철'이라 쓰여 있었다.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을 때 상자 안에는 커피와 크림, 초콜릿 등 다과가 하나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사연은 없었다. 궁금증은 다음날 풀렸다. 역시 항공우편으로 온 편지에는 전날 받아 든 소포에 대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머나 먼 이국땅에서 한 외진 마을로 부쳐온 쉽지 않은 정. 예배를 드리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다과회를 갖는 자리엔 낯설고 의아한, 그러나 무엇보다 따뜻한 감동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만남도 있는 거구나, 우리는 이렇게도 널리 서로를 든든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구나, 뭔가 둑 하나가 터지며 확 세상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고향, 뿌리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 보낸 이의 정성이 우리의 옆자리에 친근함으로 함께 자리하며 더 드시라 시중을 들고 있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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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들판



들판에 가 보았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은 들판을 가로 질러 
아지랑이처럼 달렸네 

들판에 가 보았네 
조용한 푸름
번지고 있었네 
하늘이 땅에 무릎 꿇어  
입 맞추고 있었네 

들판에 가 보았네 
언덕 위 
한 그루 나무처럼 섰을 때 
불어가는 바람 
바람 혹은 나무 
어느 샌지 나는 
아무 것이어도 좋았네.

-<얘기마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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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사람 사랑하며
이야기 사랑하며
바람과 들꽃과 비 사랑하며
눈물과 웃음 사랑하며
주어진 길 가게 하소서

두려움 없이
두리번거림 없이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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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까지 고향을 지킨다

  • 오늘 방문하신 분이 단강마을이 고향인분이 계셨습니다.

    우포지기 2021.02.27 16:50



단강에서 귀래로 나가다 보면 지둔이라는 마을이 있다. 용암을 지나 세포 가기 전. 산봉우리 하나가 눈에 띄게 뾰족하게 서 있는 마을이다.


전에 못 보던 돌탑 하나가 지둔리 신작로 초입에 세워졌다. 마을마다 동네 이름을 돌에 새겨 세워놓는 것이 얼마 전부터 시작됐는데, 다른 마을과는 달리 지둔에는 지둔리라 새긴 돌 위에 커다란 돌을 하나 더 얹어 커다란 글씨를 새겨 놓았다.

 


“나는 끝까지 고향을 지킨다.”


까맣게 새겨진 글씨는 오가며 볼 때마다 함성처럼 전해져 온다. 글씨가 돌에서 떨어져 나와 환청처럼 함성으로 들려져 온다.


그러나 그건 희망의 함성이 아니라 절망스런 절규, 눈물과 절망이 모여 검은 글씨로 새겨졌을 뿐이다. 
작은 돌 위에 새겨놓은 절박한 절규,


“나는 끝까지 고향을 지킨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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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늦은밤, 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본다. 별들의 잔치, 정말 별들은 ‘고함치며 뛰어내리는 싸락눈’ 같이 하늘 가득했다.


맑고 밝게 빛나는 별들의 아우성. 별자리들은 저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옆자리 별들은 그 이야기 귀담아 듣느라 모두들 눈빛이 총총했다. 그들 사이로 은하가 굽이쳐 흘렀다. 넓고 깊은 은빛 강물, 파르스름한 물결 일으키며 하늘을 가로질러 흘러온 은하는 뒷동산 떡갈나무 숲 사이로 사라졌다.

 


이따금씩 하늘을 긋는 별똥별들의 눈부신 질주, 당신의 기쁨을 위해선 난 스러져도 좋아요. 열 번이라도, 백 번이라도. 남은 이들의 기쁨을 바라 찬란한 몸으로 단숨에 불꽃이 되는, 망설임 없는 별똥별들의 순연한 아름다움!


자리에 누워 밤하늘별을 보다 한없이 작아지는, 그러다 어느덧 나 또한 별 하나 되어 우주 속에 점 하나로 깊이 박히는 어느 날 밤. 

-<얘기마을>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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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窓)



단강에서 사는 내게 단강은 하나의 창(窓)
단강을 통해 나는 하늘과 세상을 본다.

 


맑기를
따뜻하기를
이따금씩 먼지 낀 창을 닦으며 그렇게 빈다.


창을 닦는 것은 하늘을 닦는 것, 
세상을 닦는 것
맑고 따뜻해 깊은 하늘 맑게 보기를
넓은 세상 따뜻하게 보기를,
오늘도 나는 나의 창을 닦으며 조용히 빈다.

-<얘기마을>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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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작고 후미진 마을
작은 예배당을 섬기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다들 떠난 곳에 외롭게 남아
씨 뿌리는 사람들
가난하고 지치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과 살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이 땅의 아픔 감싸기엔
내 사랑과 믿음
턱없이 모자랍니다.
힘들다가 외롭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를 이곳에서 살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그중 당신과 가까운 곳,
여기 살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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