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를 감하시든

  • 목.. 말씀 중간에 10~20분 단위로 물만 홀짝여서 목으로 흘러 보내주어도 아주 조금은 나으실 텐데요. 그러면 말씀 듣는 분들이 좀 그러시련가요. 젖은 목이 되도록. 우리 목에 가장 안 좋은 건 마른 목 상태라는. 침샘을 주신 하나님의 뜻까지 헤아려보는 시간입니다. 바이러스가 잘 들러붙는 것도 마른 목이라고 들었습니다.

    눈물.. 내 몸에서 울컥 올라오는 눈물의 샘이 되어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요. 눈물을 치유의 선물로 받는 은혜입니다. 저도 종종.
    그렇게 올라오는 눈물이 먼저 나를 녹여서 치유하고, 뭇 생명들에게도 흘러감을 봅니다.

    환절기에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예수님 안에서.

    신동숙 2019.10.23 14:2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5)

 

 얼마를 감하시든

 

괜히 큰 소리를 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몇 며칠 이야기를 하면 목이 가라앉곤 한다. 영월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이기도 한데다가 하루에 세 번 말씀을 전하니 목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새벽부터는 목이 칼칼한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를 않았다. 손에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조금 낮춰 말씀을 이어갔다. 덕분에 교우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었다. 기도는 물론 목에 좋다는 차를 준비해 주시고는 했다.

 

 

 

 

 

가라앉은 목 상태는 오랜 전 기억 하나를 소환했다. 화천에서 연합집회를 인도할 때였다. 교파를 초월하여 화천에 있는 모든 교회가 모여 말씀을 나누는 자리였다. 집회를 시작할 때부터 목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대번 티를 내고 말았다. 집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가면 정말로 말이 안 나왔다. 식사기도 또한 강사가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목에서는 거친 쇳소리가 날 뿐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목이 나을 수만 있다면 똥물이라도 마실 심정이었다. 아는 이비인후과 선생님께 긴급 도움을 청했더니, 쉬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고 했다. 겨우겨우 시간을 이어가던 중에 드디어 마지막 시간에 이르렀다. 그동안 목 상태가 더 악화된 것은 물론이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교우들에게 말했다. 말씀을 전하는 중에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아 설교가 중단이 되면 마이크를 친구 목사에게 넘기겠다고, 친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고 있을 터이니 친구가 이어갈 것이라고. 진심이었다. 목소리가 안 나와 말을 할 수가 없으면 달리 방법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기도를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드렸다.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에 주님께 구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삶에서 며칠을 감하시든, 몇 달을 감하시든, 몇 년을 감하시든 괜찮습니다. 대신 오늘만큼은 말씀을 끝까지 전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목이 멨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시다. 그날 끝까지 말씀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눈물에 약하신 주님의 은총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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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날다

  • 개들은 달려야 합니다..^.^ 뛰어 노는 것이 그들의 자유일 것 같습니다. 사람들도 달리는 것만으로도 자유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22 09:25
  • 주일 예배 후 사모님께 순이의 새로운 탈출 사건을듣고,

    혜숙: "어머!! 순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어
    요.. 너무 똑똑 하네요. 순이가 목사님을 닮
    았나봐요"
    사모님: "어머!! 왜 똑똑한건 다 목사님을 닮았다
    고 하세요~~~~~??"
    ㅎㅎㅎ많이 웃었답니다. 울 사모님 못 말려~~~~

    김혜숙 2019.10.22 23:12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4)

 

순이, 날다

 

<오늘 낮예배 시간에 순이가 또 탈출했다!! 생각도 못한 길로. 모든 구멍을 다 막았기에 이제는 끝났다 했더니 오늘 개집 지붕으로 올라가 담을 뛰어 넘어 나왔다!!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보고 알려줘서 잡았다. 오후에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없도록 망을 씌우고 집 하나는 가운데 쪽으로 옮겼다!! 빠삐용 순이와 머리싸움 하는 것 같다.>

 

영월 김목사님이 문자를 보냈다. 빠삐용 순이가 또 탈출을 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구멍을 통해 탈출을 감행했던, 순이의 유일한 탈출구를 굵은 철사로 촘촘하게 막아 더는 탈출이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다시 탈출을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지 싶은데, 어디로 빠져나간 것일까?

 

 


 

 

이번엔 뻥 뚫린 하늘이었다. 주일날 예배당 마당에서 놀다가 순이가 탈출하는 순간을 목격한 아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빠삐용 순이는 기가 막힌 선택을 했다. 자기 집 위로 올라가 지붕 위에서 울타리를 뛰어 넘었던 것이다. 순이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그런 뒤에 찾아낸 탈출구, 하늘!

 

결국 순이는 다시 갇혔고, 목사님은 개집 위에 망을 씌웠다. 또 하나의 개집은 뛰어도 소용이 없도록 울타리 가운데로 옮겼다. 이야기만 들어도 순이의 깊은 한숨 소리가 전해지는 듯하다.

 

 

 

 

목사님은 빠삐용 순이와 머리싸움을 하는 것 같다고 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순이를 응원한다. 자유의 본능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어느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순이가 보여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형, 순이는 아무도 몰래 겨드랑이 아래로 날개를 키울 지도 몰라요. 그리고는 어느 달 밝은 밤, 굳이 애쓸 것도 없이 가뿐하게 사뿐 울타리를 뛰어넘을지도 몰라요. 달빛을 타고 하늘로 올라 동강을 훌쩍 뛰어넘을 지도요. 그러거들랑 찾지 마세요. 한 식구 같았던 순이가 눈에 선하겠지만 빠삐용 순이는 마침내 그토록 꿈꾸던 자유를 찾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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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빈자리를 보니?

  • 저도 공감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21 09:31
  • 한결같은 걸음, 반갑습니다.

    한희철 2019.10.21 20:1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3)

 

 왜 빈자리를 보니?

 

영월동부교회에서의 집회는 새벽, 낮, 저녁, 하루 세 번 열렸다. 시절이 바뀌어 요즘은 하루 세 번 모이는 집회가 드물어졌지만 기꺼이 동의를 했다. 다음 주 정릉에서 열리는 말씀축제에서도 열 번 말씀을 듣기로 했다. 시편의 바다를 헤엄치는 데는 열 번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에 세 번을 모이니 강사도 강사지만 교우들로서도 모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가을걷이의 계절이기도 하고, 낮에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이런저런 개인의 일들이 왜 없겠는가?

 

 

 


 

낮 집회가 특히 그랬다. 때마침 지방연합성회와 기간이 겹쳐 더욱 그렇지 싶었다. 빈자리가 마음에 걸렸던지, 사회를 보던 선배 목사님이 몹시 아쉬워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오래 전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었다.

 

가문 날이 이어지다가 기다리던 비가 온 주일이었다. 많은 교우들이 예배당 대신 밭을 찾았다. 덕분에 주일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엔 빈자리가 많았다. 목회자에게 빈자리는 커다란 웅덩이처럼 다가온다. 눈길이 빠지고 마음이 빠진다. 빈자릴 보며 허전한 마음으로 설교를 시작할 때였다.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얘야, 너는 왜 빈자리를 보니? 나는 바쁜 중에도 예배드리러 나온 내 백성들을 보는데.’

 

필시 그것은 주님의 음성이었으리라. 그 때 들었던 음성 이야기를 했고, 더 이상은 빈자리에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더욱 가난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은총을 누릴 수 있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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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참으로 멋진 만남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20 11:13
  • 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만남이었습니다.

    한희철 2019.10.20 19:22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2)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두 사람을 본 것은 막 찻집에서 나왔을 때였다. 부흥회 셋째 날, 낮 집회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찻집을 찾았다. 동강 변에 있는 찻집이었는데, 2층에서 내다보는 경치가 빼어났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들기 시작하는 붉은 빛이 곳곳에 스미고 있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말씀을 듣는 교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고마움으로 말씀을 듣는 교우들이 고마웠다.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찻집 앞 느티나무 앞에서 두 사람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품이 넓은 느티나무와 저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잘 익은 햇살, 그 속에서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는 가을 풍광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함께 차를 마신 선배 목사님과 교우들은 잘 쉬라는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몸은 피곤했지만 쉬기 위하여 숙소로 돌아오는 대신 아코디언 연주자에게로 다가갔다. 마침 차에 카메라가 있어 챙겨서 갔다.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려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의 연주를 곁에서 들어도 좋을지, 연주하는 사진을 찍어도 좋을지를 물었더니 얼마든지 좋다고 했다. 빼어난 가을 경치만큼 두 사람의 마음도 흔쾌했다. 이어지는 몇 곡의 연주들, 그 중에서도 El Cóndor Pasa가 압권이었다. 아코디언과 너무도 잘 어울렸는데, 실제로 강가에선 백로인지 왜가리인지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그새 마음이 가까워진 탓일까, 한 곡을 신청해도 좋을지를 물었더니 제목을 묻는다.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겠다 싶은 곡이 떠올랐던 참이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청했더니 즉흥연주를 하는데, 막힘이 없다.


 

마침 차에는 내가 쓴 책이 두 권 있었다. 돌아서기 전에 좋은 연주를 들은 것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었다. 책을 전하기 전 “저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하며 내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연주를 한 한 사람이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장로교 고신파 목사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작고 외진 교회에서의 목회를 고집했던. 나에게 영월에 사느냐 물어 집회 인도 차 왔고, 수요일 저녁까지 말씀을 나눌 예정이라 대답을 했다. 그때 그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괜찮으면 저녁 집회에 참석하여 아코디언으로 찬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대답할 말은 아니었지만 선배 목사님이 거절하실 일은 결코 아니다 싶었다.

 

저녁 집회 시간, 그는 정말로 교회를 찾아와 아코디언으로 여러 곡 찬양을 했다. 마음속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코디언 연주라면 우리나라에서 2등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뛰어난 연주자였지만, 하루에 연습을 6시간 이상 한다고 했다. 그날 밤 세종시로 내려가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찬양 후 함께 예배를 드렸고, 예배 후에는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 하지만 복되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우연처럼 주어진 만남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가을 햇살 가득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청했던 노래처럼,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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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신 하나님

  •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18 10:15
  • 반갑습니다.

    한희철 2019.10.19 08:14
  • 목사님께서 부임하시기 전 들려오는 정보에 연세가 많으시다하여 여러 교우들은 실망감이 살짝 있었지요~~;;;
    그러나 그 어떤 젊으신 목사님 부럽지 않게 모든 성도들에게 섬세하게 다가 오시고, 곳곳을 챙기시며 질병으로 입원하신 할머니 권사님들께 여러차례 심방하시어 기도해 주시고.... 항상 권위를 세우기 보다 겸손함으로 몸소 행하심으로 사랑하는 교우들을 먼저 세우시는 아름다운 분이시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주의 일을 더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한목사님께서도 그런분 이라 확신합니다.~^^

    김혜숙 2019.10.19 14:49
    •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만남을 마음껏 누리세요.

      한희철 2019.10.20 19:23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1)

 

행복하신 하나님

 

선배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왔다. 교우들의 간절한 청으로 부임하게 된 교회, 마침 교회가 창립 67주년을 맞아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주님께서 한 사람의 삶과 이 땅에 세운 한 교회를 주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목사님과 교회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배를 담임으로 모시고 행복해하는 교우들의 모습 속에는 행복해 하시는 하나님이 모습이 담겼지 싶었다.

 

행복해 하시는 하나님의 해맑은 웃음을 오랜만에 보았다.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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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게 보이는 이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17 09:35
    • 반갑습니다

      한희철 2019.10.18 08:18 DEL
  • 비운 이의 눈에는 비운 이가 더 크게 보이는가 봅니다.
    좋은 아침에 맑은 시 한 모금 머금었답니다. 고맙습니다.
    사진은 차밭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차밭이 있었던가 곰곰이 짚어 보아도 모르겠나이다.

    신동숙 2019.10.17 10:26
  • 비움을 바라보는 것도 또 하나의 시선이겠지요.

    한희철 2019.10.17 11:47
    • 비었다는 생각도 내려놓고 싶어집니다.
      비움도 많은 시선 중 하나

      신동숙 2019.10.17 14:12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0)

 

더 크게 보이는 이

 

 

 

 

 

나를 비워
누군가를 드러내는 이가 있고

 

누군가를 비워
나를 드러내는 이가 있다.

 

소란함 속에서도
분주함 속에서도

 

더 크게 보이는 이는
나를 비우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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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 순이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16 15:49
  • 반갑습니다.

    한희철 2019.10.17 11:46
  • 목사님~ 네번밖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멋진 설교말씀 너무 좋았어요~ 같은 눈으로 바라보아도 생각하고 해석하는것에 따라 큰 감동이 올수도 있다는것을 깨달은 시간들이었어요ᆢ 순이이야기도 그러네요ㅎㅎ 늘 건강하세요^^

    전영은 2019.10.17 13:40
    • 반갑고 고마운 만남이었습니다.
      동부교회가 영월 지역을 넉넉히 품어 안을 수 있는 교회 되기를 빕니다.

      한희철 2019.10.18 07:32 DEL
  • 큰 여운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한 걸음씩 그 분을 알아가고, 그분께 다가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광순 2019.10.17 18:49
    • '여운'이라는 말이 고맙게 들립니다.
      늘 평안하시고, 교회에 좋은 일꾼 되어주세요.

      한희철 2019.10.18 07:33 DEL
  • 목사님~~
    김정권 목사님과 어딘가 모르게 꼭 닮으신
    (? 아니 외모 빼고요ㅋㅋ)
    한희철 목사님!!
    선물로 받은 하루 중 어떤 시간도 그냥
    지나침이 없으신 삶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만
    여겨집니다. 저도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네요. ㅎㅎ
    저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고양이들 에겐 관심이 많지만 개, 순이에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순이에게 저런 사연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네요. 목사님과 사모님께서도 순이를 보며 마음 많이 아프셨겠어요.... 그래서 목사님께서 순이를 자주 산책 시켜 주시려고 목줄을 잡고 나오셨던 날들을
    많이 목격 하게 되었나 보네요.~~(사실은 힘쎈 순이에게 목사님께서 뛰어가듯 끌려 가는 모습으로
    저에겐 보였습니다. ㅎㅎ)
    목사님~ 말씀도 시간시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은혜 넘치도록 많이 받았구요. 글도 잘 읽었습니다.
    퇴근이 오늘은 늦어 늦게 글을 읽고 답글도 늦었습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김혜숙 2019.10.17 20:49
    • 김목사님과 닮았다니 고맙습니다.
      얼마든지 닮고 싶은 분이지요.

      좋은 목사님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즐거움이 걸음마다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희철 2019.10.18 07:37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9)

 

빠삐용 순이

 

영월 김 목사님네 개 이름은 순이이다. 순하게 생긴 진도개인데, 실은 순하지 만은 않다. 얼마 전까지 작은 시골마을에서 목회할 때 순이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곤 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목줄을 풀러주면 맘껏 사냥을 즐겼던 것이다.


고양이도 아닌 것이 쥐를 손쉽게 잡는 것은 물론 야생 고라니도 여러 마리를 잡았다. 걸음 재기가 여간이 아닌 고라니를 잡을 정도니 그 끈기와 집념은 알아줄 만한 것이었다. 아마 범을 만났어도 물러서지 않고 맞짱을 뜨지 않았을까 싶은 순이였다. 이름만 순해 보이는 순이였을 뿐 순이 안에는 누를 수 없는 야생의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동네 이웃집 닭까지 물어 죽여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물어준 돈이 이미 제 몸값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 결정적인 흠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순이에게 최근 새로운 별명 하나가 붙여졌다. 이제 순이는 빠삐용 순이로 불린다. 순이가 빠삐용이란 이름을 얻게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순이는 몇 달 전에 이사를 했다. 목회지를 영월 읍내로 옮긴 김 목사님을 따라 거처를 옮긴 것이다.시골에서 강가를 마음껏 뛰던 순이가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개집은 가히 다른 개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집이었다. 전임자가 개를 두 마리 키웠고, 넓은 울타리 안에는 개 집이 두 개 마련되어 있었다. 널찍한 울타리 안에 집이 두 채, 세상 어느 개가 그런 호강을 누리겠는가? 날이 더운 날엔 그늘진 집에서 지내고, 추운 날엔 볕 잘 드는 곳에서 지내니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을 따로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순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순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숨이 멎도록 마음껏 뛰는 것이었다. 바람처럼 강가를 달리며 고라니를 잡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니 순이로서는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땅을 파기도 하고 울타리를 뛰어오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던 순이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이 탈출이었다. 울타리에는 유일한 구멍이 있었다. 밥과 물을 넣어주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순이는 그 구멍을 통해 울타리에서 빠져나왔다. 철망 사이로 낸 구멍은 결코 큰 것이 아니어서 도저히 순이가 빠져나올 만한 공간이 못 되었다. 그곳을 빠져나왔다니, 순이로서는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것이었다.


읍내를 뛰어다니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 어렵게 순이를 잡아 울타리에 넣은 목사님은 순이가 빠져나온 구멍에 철사를 둘렀다. 하지만 순이의 탈출은 계속됐다. 철사를 이빨로 끊기도 했고, 굵어진 철사를 한쪽으로 밀어내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구멍을 막는 철사는 점점  굵어졌고 구멍은 촘촘해졌다. 이제는 순이도 안다, 더는 그 구멍을 통해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빠삐용이란 이름을 얻게 된 내력을 듣고 김목사님 내외분과 순이에게로 갔을 때, 순이는 반갑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다. 주인이 다가왔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순이에게서 체념한 자의 슬픔 같은 것이 진하게 느껴졌다. 순이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천천히 개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또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슬픔을 다른 행동으로 감추려는 것처럼 보였다.

 

넓은 울타리에 집이 두 개, 다른 개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조건이지만 순이는 즐겁지 않다. 조금 넓고 안락한 감옥에 갇혀 있을 뿐인 것이다.


빠삐용이란 이름을 얻은 순이는 어느 날 거짓처럼 사라지는 것 아닐까. 영화 속 빠삐용처럼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로 빠져나갔지를 알 수 없는, 순이 만의 탈출구는 그래도 무엇인가 남아 있지 않을까.

 

순이를 보며 자유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것없이는 살 수 없는. 속박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렇게는 살 수 없는.


없던 날개라도 돋아 마침내 빠삐용처럼 자유를 누렸으면, 순이가 그랬으면, 그런 생각이 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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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 요즘은 로드킬 당하는 동물이 많습니다. 고양이도, 개도!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16 03:20
  • 죽음을 애도하는 듯한 고양이에게 눈이 갔습니다.

    한희철 2019.10.17 11:45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9)

 

어쩌면

 

강원도 영월의 한적한 시골길, 차를 운전하며 가는데 저 앞에 길을 건너는 검은 물체가 보인다. 뭘까 싶었다. 검은 비닐봉지라 하기에는 길을 곧장 건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차가 검은 물체와 가까워졌는데, 검은 고양이였다. 차가 온다고 서두르는 법도 없이 게으름을 떨듯 느긋하게 길을 건넌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길을 건넌 고양이가 길가에서 운전하는 나를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온통 검은색 사이로 뭔가 서늘한 섬광이 전해졌다.


 

 

 


조금 더 차를 달렸을 때, 도로 한 가운데 놓여있는 물체가 있었다. 속도를 줄여 물체를 피하며 보니 죽은 고양이였다. 로드킬을 당했지 싶었다.

어쩌면 방금 전 도로 위를 천천히 건너간 고양이는 도로 위에서 죽은 고양이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그리도 천천히 걸음을 옮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지금 차를 몰고 지나가는 저 이가 혹시 고양이를 죽게 만든 것은 아닌지 노려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떨어지지 않는 듯 걸음을 옮겼던 걸음과, 노려보듯 바라보던 눈길이 이해가 되었다. 고양이의 걸음과 눈빛은 다른 고양이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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띳집과 나물국

  • 달리기를 하고 난 후에는 모든 음식들이 단맛이 납니다. 또한 배고픔에 허겁지겁 먹게 되며 맛있게 느껴집니다. 성정이 안정된다는 것은 어쩌면 달리기처럼 매일 단련해야 하지 않을까 봅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14 09:08
  • 공감합니다.
    성정도 단련이겠다고요.

    한희철 2019.10.17 11:44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8)



띳집과 나물국






책장 한 구석에 꽂혀 있는 책 <명심보감>에 눈이 간다. 책을 꺼내 전에 밑줄 친 곳을 읽다보니, 마음에 닿는 구절이 있다.


“마음이 편안하면 띳집도 안온하고, 성정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心安茅屋穩(심안모옥온)이요, 性定菜羹香(성정채갱향)이니라.


‘모옥’(茅屋)할 때의 ‘모’(茅)는 여러해살이풀을 말한다. ‘띳집’이란 띠라는 풀로 지붕을 이은 집으로, 누추(陋醜)한 거처(居處)를 말한다. 초라한 초가삼간에 누워도 마음이 편안하면 안온함을, 편안함과 따뜻함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채갱’(菜羹)은 나물국을 말한다. 산해진미(山海珍味) 없이 집 주변의 나물을 뜯어 국을 끓여도 성정이 안정되면 그 국이 향기롭다는 뜻이다.


길지 않은 글을 한 자 한 자 읽으니 띳집에 든 것처럼, 쥐코밥상 나물국 앞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고 숨이 고르다. 시절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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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길수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7)

 

걸음을 옮길수록

 

오늘 새벽기도예배에서 나눈 본문은 마가복음 12장 1~12절이었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포도원 비유였다.

 

어느 순간부터 예수님의 걸음과 말과 태도는 점점 십자가에 가까워진다. 포도원 비유만 해도 그렇다. 종교 지도자들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것이 자신들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십자가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부터 돌아보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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