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속장님네 황소

한희철의 얘기마을(25)


우속장님네 황소



우속장님네 소는, 

윗작실 우속장님네 누런 황소는 

겁도 없고 추위도 덜 타야겠다. 

캄캄해지고도 한참을 더 

어둠을 더듬어 일을 마치곤 

그래 넌 여기서 그냥 자라 

잠시 후에 다시 올 터니 

들판에 소 놔 둔 채 집으로 오면

텅 빈 들판에 혼자 남아 

밤을 지새우는 우속장님네 황소.


커다란 두 눈 껌뻑여 

밤하늘별을 세며 무서움 쫓고, 

빙글빙글 같은 자리 돌며 

어릴 적 엄마 젖 그리며 추위를 쫓고.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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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돈

한희철의 얘기마을(24)


때 돈


언젠가 수원 집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온 식구들이 마루에 모여앉아 봉투를 만들고 있었다. 굉장한 양이었다. 이리 저리 각을 따라 종이를 접고 풀을 붙이는데, 그 손놀림들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종이봉투 하나를 만들면 받는 돈이 8원. 난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살림이 종이봉투를 접을 만큼 궁색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짐작이 되질 않았다. 한 장에 8원 하는 걸 바라고 저 고생을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사연을 들었을 때 난 잠시나마 내가 가졌던 의구심이 몹시 부끄러웠다. 


어머니와 형수님은 그렇게 일을 함으로 작정한 헌금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고, 온 식구가 나서서 그 일을 돕고 있었던 것이었다. 8원짜리 종이봉투, 난 같이 앉아 열심히 봉투를 따라 접었다. 봉투를 접는 마음속으로 경건함이 고여 들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처가에선 목욕탕을 지어 영업을 시작했다. 얼마 전 처가에 들러 장인어른을 만났더니 단강에 놀이방을 시작하면 간식비는 당신이 대겠다고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아내 이야기를 듣곤 콧등이 시큰했다.


아직 일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때밀이를 못 구한 상태인데, 가끔씩 때밀이를 찾는 손님이 있어 장인이 직접 때를 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건강이 퍽 좋은 상태도 아니고 연세도 그렇고 남의 때를 미실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번 돈을 모아 단강의 코흘리개 어린이들을 위해 간식비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때 돈이라며 웃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숙연해졌다. 가족 이야기가 되어 쑥스럽긴 하지만 돈이란 그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예배시간, 헌금함을 잡는 손이 언제라도 떨려야 하는 건 그런 마음에서이리라.


 <얘기마을>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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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편지

한희철의 얘기마을(23)


반가운 편지


숙제장을 한 장 뜯었을까, 칸이 넓은 누런 종이에 굵은 연필로 쓴 글씨였다. 서너 줄, 맞춤법이 틀린 서툰 글이었지만, 그 짧은 편지가 우리에게 전해준 기쁨과 위로는 너무나 컸다.


잘 있노라는, 주민등록증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주인 아들이 썼음직한 편지였다. 서울로 갔다가 소식 끊긴 지 꼭 한 달, 한 달 만에 박남철 청년이 잘 있다는 편지가 온 것이다. 편지를 보낸 곳은 경기도 파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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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낙심치 말고 기도하자 했지만, 모두의 마음속엔 어두운 예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어두운 예감이 어디까지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서둘러 답장을 썼다. 이번 주엔 아버지 박종구 씨가 파주를 다녀오기로 했다. 아버지를 따라 남철 씨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힘겨운 삶이라면, 그나마 고향에서 아는 이웃들과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싶다.


엄마만 살았어도 그렇게 아들을 내보내진 않았을 거라고,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허석분 할머니는 편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역시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고맙네유. 새벽마다 할 줄 두 모르는 기도를 하면서 그래도 하나님이 지켜달라구 기도했는데, 그 기도를 들어 주셨나 봐유.”


사회가, 사람이 아주 악하지 만은 않다는 작은 신뢰감이, 팔자걸음 히죽 웃는 남철 씨 모습과 함께 마음에 담긴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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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화 씨의 주보

한희철의 얘기마을(22)


치화 씨의 주보


치화 씨가 교회 올 때 가지고 다니는 낡은 손가방 안에는 성경과 찬송, 그리고 주보뭉치가 있다. 빨간 노끈으로 열십자로 묶은 주보뭉치. 한 주 한 주 묶은 것이 제법 굵어졌다. 주보를 받으면 어디 버리지 않고 묶었던 노끈을 풀러 다시 뭉치로 챙긴다.





아직 치화 씨는 한글을 모른다. 스물다섯 살, ‘이제껏’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가정에 닥친 어려움으로 어릴 적부터 집을 떠나 남의 집에서 일하며 살아야 했던 치화 씨로선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찬송가 정도는 찾을 수 있다. 서툴지만 곡조도 따라 한다. 반의 반 박자 정도 느리게 부르는, 그렇게 가사를 따라가는 그의 안쓰러운 동참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조금은 서툴지만 이제는 주기도문도 함께 할 수 있다.

 

아직 글은 모르지만 차곡차곡 주보를 모으는 치화 씨, 치화 씨는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모으고 있다. 하나님과 이웃에 눈떠가는 자신의 삶을 챙기고 있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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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없는 차

한희철의 얘기마을(21)


바퀴 없는 차


“집사님, 교회에도 밭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실 속회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길 옆 널따란 무밭을 지나며 동행했던 김영옥 집사님께 말했다. 


“밭은 뭐하게요?”

“농사짓게요. 돈벌이가 되는 농사를 져서 마을 분들에게 보급했으면 좋겠어요.”


농촌교회가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 그것이지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좋죠. 그렇지만 땅 살 돈이 있나요?”


그러시더니 잠깐 사이에 웃으며 한 마디를 보탰다. 


“전도사님 그때까지 계시겠어요? 되도 몇 년 후에나 가능할 텐데요.”



집사님 말 속엔 오늘의 농촌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담겨있다. 막연히 견디기엔 너무도 열악한 조건, 교회가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 큰 것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보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농촌 교회의 형편은 그저 급한 앞가림하기에 급급하다.


또한 어려운 속에서도 진득이 참으며 낙심치 않고 희망의 씨앗을 뿌릴 사람, 허락하신 부름을 감당할 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저 안수받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 되기 일쑤이다. 군 제대하듯, 일정 기간 버티다가 떠나버리는.


이제 3년 여 지낸 나로서도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모두 떠난 땅에 ‘소리새’ 되어 남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가슴 깊이 느낀다. 


돈과 사람, 믿음이라는 수레를 끌 수 있는 현실적인 바퀴 두 개가 그것이라면 농촌 교회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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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

한희철의 얘기마을(20)


단순한 삶


어둘녘, 인쇄소에서 소개해 준 지업사에 들렸다. 사방으로 켜켜이 종이가 쌓여있고, 종이 자르는 커다란 날을 가진 기계가 한 가운데 있었다.


주인께 온 이유를 말했더니 한번 찾아보라 한다. 아내와 난 너저분히 널려 있는 종잇조각들을 헤치며 쓸 만한 종이를 찾았다. 전지를 원하는 크기로 자르고 나면 한쪽 귀퉁이로 작은 조각들이 남게 마련인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작은 종이들이었다.



주보 발송할 때, 주보를 두르는 띠를 얻기 위해서다. 300여부 발송을 하다 보니 잠깐 허리를 두르는 띠지만 적은 양은 아니었고, 성한 종이(?)를 잘라 쓸라니 아깝기도 했던 것이다.


한참을 종이 더미를 뒤져 우리는 쓸 만한 것들을 제법 찾아낼 수 있었다. 


“얼마 드리면 되죠?” 물었더니 “그냥 가져가세요. 어차피 필요 없는 건데요 뭐.” 한다. 참 기뻤다. 제법 쓸 만한 양을 구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밝게 인사하고 나오는 우리를 주인은 멍하니 바라본다. 휴지 조각을 주워가며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하는 젊은 두 사람이 주인은 신기했나 보다.


어둠이 내리는 골목을 막차 타기 위해 급히 빠져 나오며 두 사람은 행복했다. 삶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지 싶었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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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한희철의 얘기마을(19)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오늘도 해는 쉽게 서산을 넘었다.

말은 멍석 펴지듯 노을도 없는 어둠

산 그림자 앞서며 익숙하게 밀려왔다.


밤은 커다란 솜이불

모두를 덮고 모두를 집으로 돌린다.


몇 번 개들이 짖고 나면 그냥 어둠 뿐,

빛도 소리도 잠이 든다.


하나 둘 별들이 돋고

대답하듯 번져가는 고만고만한 불빛들

저마다의 창 저마다의 불빛 속엔

저마다의 슬픔이 잠깐씩 빛나고

그것도 잠깐 검은 바다 흐른다.


그렇다.

밤은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날마다

살아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일으킨다.

검은 바다를 홀로 지난 것들을.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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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야 할 몫

한희철의 얘기마을(18)


함께 나눠야 할 몫


“전도사님께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어요.”


주일 오후 신 집사님이 찾아왔다. 오는 길에 경운기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종대 엄마 어떤가 보려고 들렀다가 때마침 쏟아진 비에 마당에 있는 고추 들여놔 주느라 그랬다며, 머리와 옷이 젖은 채였다. 추워 보였다. 신집사님은 늘 추워 보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들네 집에 다녀왔는데, 아들 말이 방 하나 얻어 드릴 테니 자기 있는 동네 근처로 오시라 했다는 것이다. 농촌에서 품 팔아야 고생이고, 병관이 중학교 밖에 더 보내겠냐며, 고생하긴 마찬가지라 해도 인접 도시 청주에 가면 일할 것도 많고, 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터이니 그게 안 낫겠냐며, 내려오시라 했다는 것이다.


자칫 또 한 분의 교우를 보내겠구나 싶은 큰 아쉬움과, 그런 아쉬움을 이유로 무조건 가지 말라고 해선 안 된다는 다짐이 순간적으로 지난다.




집사님 생각은 어떠냐 물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오랄 때 가야지 나중에 귀찮게 가서는 안 될 것 같다고 가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시집와서 30년 넘게 살아온 이곳 단강이 고향이라면 고향인데, ‘솥 떼고 3년’이라는데 쉽게 떠날 수도 없고, 집사님은 어찌해야 할지 여러 가지로 생각이 겹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중1의 병관이를 데리고 홀로 품을 팔아 생활을 꾸려야 하는 생활엔 더 이상 자신이, 어쩌면 생의 의지가 없어진 것이다. 고르지 못한 일손, 그나마 하루 품을 팔아야 일당 4천원, 그렇게 푼돈 모아야 병관이 차비와 용돈 주고 ‘멸치 대가리도 못 사 먹는’ 식비 제하고 나면 무일푼이다. 늘 막막한 삶인데, 이제 곧 일손 끊기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좁다란 방 하나 쓰면서도 그 흔한 새마을 보일러가 없어서, 실은 연탄비가 없어서, ‘눈구댕이 빠지며 잔가지를 꺾어야 하는’ 또 한 번의 겨울. 아들 얘기 듣고 보니 자신의 삶이 더욱 처연해진 것이다.


막막한 이야기 오가다가 집사님은 확실한 대답 없이 일어났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결국 집사님은 안 떠날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집사님 홀로 감당해야 하는 힘겨운 삶의 무게와, 알량한 겨울 추위는 함께 나눠야 할 몫이다. 방충망 망사를 통해 빗길 돌아가는 집사님을 바라보며, 키 작은 집사님의 슬픔어린 작은 생을 바라보며 함께 젖는 가슴.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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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요금

한희철의 얘기마을(17)


전기 요금


1070원, 지난 달 유치화 씨가 낸 전기 요금이다. 단칸방에 늙으신 홀어머니 모시고 살아가는 치화 씨, 1070원이라는 금액 속엔 가난하고 적막한 삶이 담겨있다.


지난주엔 한여름 내내 열심히 일한 치화 씨가 그동안 번 돈을 아껴 텔레비전을 샀다. 흑백 중고로 안테나 설치까지 4만원이 들었다 한다. 잘 나온다고, 이젠 다른 집으로 TV보러 안 가도 된다며 흐뭇해한다. 




이번 달부터는 전기요금이 올라가겠지만, 그깟 전기요금이 문제일까. 저녁 밥상 물리고 나란히 앉아 함께 웃는 시간이며, 일하러 갔다 늦게 돌아오는 아들 기다리며 막막하기 그지없었던 어머니 시간 보내기도 좋고, 내일은 비 올 거라며 남의 말 듣기 전에 말할 수 있어 좋고, 난생 처음 예금한 돈 30만원이 통장에 있는데 까짓 몇 푼 전기요금 더 나와야 그게 문제일까. 치화 씨 웃음이 모처럼 넉넉하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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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잡을 손

한희철의 얘기마을(16)


마주 잡을 손


얼마 전 원주지방 남녀선교회 지회장들이 모여 교육받는 모임이 있었다. 공문을 받고 여선교회장인 이음천 속장님에게 알렸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속장님은 한사코 안 가겠다고 한다. 손이 이래갖고 어딜 가겠냐며 손을 내민다. 형편없이 갈라지고 터진 틈새를 따라 풀물 흙물이 밸대로 배었다. 어떠냐고, 그 손이 가장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손 아니냐며 얼마를 더 권했지만, 속장님은 막무가내였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이음천 속장님, 혼자되어 자식 키우며 농사 지어온 지난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할까. 속장님은 지금도 무섭게 일을 한다. ‘소 갈 데 말 갈 데 없이’ 일한다고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위기감에, 어쩌면 쉬 찾아들곤 하는 남편 없는 허전함을 일에 몰두함으로 잊기 위한 자구책으로 일에 자신을 내던져 온 삶이 흰머리 늘어난 오늘까지 계속 되어온 것이다.


흙물 풀물 밴 손, 갈라지고 터진 손을 떳떳하게 잡아 줄, 그렇게 건강하고 따뜻한 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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