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36)

 

기도는 떡메가 아니다


   
며칠 전 ‘하루 한 생각’에 이정록 시인의 시집 <벌레의 집은 따뜻하다>에 실린 서시를 읽고서 쓴 글이 있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 아래 임종수 목사님께서 사진을 한 장 올리셨다. 숲속 도토리나무 세 그루가 나란히 섰는데, 세 나무가 모두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어른 키 높이쯤에 커다란 상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는데 맞았다, ‘내놓으라는 폭력이지요. 갑질~ 도토리를 탈취하려는 폭력~’라는 글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기 흉한 상처 자국은 떽메에 맞은 자국이었다.

 

 

 

 

 

가을이 되어 도토리를 따러 가는 사람들 손엔 떡메가 들려 있곤 했다. 인절미 등 떡을 만들 때 내리치던 떽메로 나무를 쳐서 도토리를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 떡메에 맞을 때마다 나무는 껍질이 다 까지고, 껍질뿐만이 아니라 몸에 해당하는 줄기도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런 시간이 이어지다보니 나무엔 그리도 큰 상처 자국이 남게 된 것이었다. 목사님의 사진 아래 답글을 남겼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군요.
떡메 자국!
떡메는 떡을 만드는데 쓰면 되는데, 나무를 치는 데도 썼으니 나무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싶습니다.
기다리면 아낌없이 다 줄 텐데 말이지요.
우리의 기도가 떡메가 아니기를 빕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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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35)

 

시간 여행(2)
   

주보 <얘기마을>에는 ‘목회수첩’이라는 면이 있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는 자리였다. 애정과 책임감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글을 쓰는 마음이 늘 조심스러웠던 자리였다.


숫자로 표시하던 ‘목회수첩’ 이야기는 2965번에서 멈췄다. 단강에서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글이 2001년 9월 9일자 <얘기마을>에 담겨 있었다. 무슨 까닭일까, 오래 전 쓴 글을 읽는데도 여전히 두 눈이 젖는 것은.

 

 

 


 

사실 오늘 막걸리를 몇 잔 마셨습니다. 처음 마셔보는 막걸리에 약간의 취기마저 느낍니다.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마련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마주 앉은 재철 씨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기꺼이 받았습니다.


59년 돼지 띠, 재철 씨는 나와 동갑입니다. 그러나 농촌에 산다는 이유로 재철 씨는 아직 결혼을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재철 씨는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합니다. 재철 씨에게 언젠가 “재철 씨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재철 씨의 아픔으로 한걸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재철 씨도 한 걸음 다가오면 우리는 형제처럼 만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송별 모임. 이렇게 먼 길을 떠나고 나면 재철 씨와의 약속을 못 지키지 싶어 기꺼이 재철 씨가 주는 잔을 받았습니다. 자꾸 마음이 무너지는 재철 씨 앞에 나도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15년, 정들만 하니까 멀리 떠나가는 사람, 갈 사람은 가는구나 당연히 여기며 욕이나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무엇 그리 아쉬움에 자리를 만들고 막상 같이 있을 땐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밤이 늦도록 나누니 고맙고 송구할 뿐입니다.

 

옆에 앉은 병철 씨는 자꾸 울먹울먹하고, 그러다 노래를 자청했고, 병철 씨의 애창곡 ‘칠갑산’을 청했지만 병철 씨는 굳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병철 씨가 부른 노래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였습니다. 준이 아버지가 생각나는 대로 따라했는데, 그 노래를 들으며 마음은 눈물에 젖었습니다. 내가 눈물을 보이면 자리가 아니다 싶어 마음을 눌렀지만 같이 얼싸안고 울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요, 이젠 단강을 떠납니다. 내 마음의 고향, 내 삶의 분신과 같았던 곳,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스승, 두고 온 북한 땅 고향을 그리시다 떠난 아버님이 누우신 곳, 멀리서 뒷모습만 보아도 말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정겨운 사람들이 사는 곳, 이젠 이곳을 떠납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낯선 곳으로 갑니다. 주님의 교회가 큰 상처를 입어 주저앉았다는 말을 듣고 대답을 했습니다. 다시 땅 끝으로 부르시는구나, 나를 광야로 내모시는구나,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단강으로 처음 들어오던 날이 떠오릅니다. 3월 25일이었지만 진눈깨비가 사납게 날렸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단강을 향할 때의 마음,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첫 발을 내딛은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던 사마리아 성을 찾아가 그 성을 기쁨의 성으로 만든 빌립, 성령께서 그를 또 다시 광야로 이끌자 다시 그 길을 떠나는 빌립을 생각하며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빌립이 걸어간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가는 그 길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의 부름이 내게는 그런 부름으로 여겨집니다.

 

떠난다는 말을 처음으로 교우들에게 할 땐 무슨 큰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 탄식, 한숨, 망연한 눈빛. 덩달아 뜨거운 눈물이 솟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안 된다고 사정을 하기도 하고, 땅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고, 아무 말도 못한 채 손만 마주잡고. 예배가 끝났는데도 돌아설 줄을 모르고…. 떠남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리도 힘든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못하니 하나님이 목사님 가는 길 막아달라고 교우들이 기도를 드릴 땐 다시 한 번 주님의 뜻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대로 힘들어 했습니다. 외출한 목사를 기다리며 밤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다음날 박종관 씨 집에서 어르신 몇 분을 만났더니 둘 중의 하나를 택하랍니다. 아예 교회 문을 대못으로 걸어 닫고 떠나든지, 당신들이 모두 교회에 나올 테니 남아달라고요.


깊은 한숨과 함께 두 눈이 젖고 말았습니다. 당신들이 교회에 나올 테니 떠나지 말라니요. 내가 정말 떠나도 되는가, 내가 지금 어디를 떠나 어디로 가려 하는가, 이미 정한 일이면서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난 못 갑니다, 떠날 수 없습니다,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고마운 인사로 받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아렸습니다. 이런 분들을 두고 떠나려 하는 나 자신이 안쓰럽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곧 돌아오겠다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인지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금은 떠나지만 언젠가 꼭 돌아오겠노라고, 한참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고맙게도’ 목사의 말을 받아주신 그분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고, 마을 사람들과 같이 식사할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지나온, 쉽지만은 않았던 단강에서의 시간이 눈물로 녹아 아름다운 강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은물결과 은모래로 아름답게 빛나는 강, 지나온 모든 시간과 일들이 문득 하나의 아름다운 강으로 변하는 은총이라니요!

 

이곳을 떠나 최악의 상황으로 빠졌다는 그 곳, 독일로 갑니다. 주저함 떨치고 약한 마음 버리고 갑니다. 다시 한 번 내 삶을 이끄시는 주님을 만나려 합니다. 조금씩 상처가 회복되고,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게 되겠지요. 그러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전해주신 기도와 사랑.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지요.

 

‘내가 선 이곳은’ 이라는 동화를 쓰며 벼랑 위에 자라는 한 그루 소나무가 흔들리고 약해질 때마다 ‘바위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습니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저에게는 바위였습니다.

아름다운 우정으로 간직하겠습니다. 그 아름다운 우정은 가슴속에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가는 길, 다시 한 번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단강에서 쓰는 ‘얘기마을’은 이렇게 멈추지만 서로를 향한 기도 안에서 여전히 우리는 하나일 것입니다.

 

바다를 모래로 막으신 하나님, 바다 한 가운데 마른 길을 내시고 당신 백성을 건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01. 9. 8. 단강에서 한희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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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1)
   

우연히 발견한 몇 장의 옛 주보는 시간 여행을 하게 했다. 표지에 ‘징검다리’라는 짧은 글을 실었던 2001년 8월 17일자 주보 교회소식 란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1. 벌침 같이 쏟아지던 볕이 조금씩 순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순한 볕에 들판의 벼들도 패기 시작하네요. 이번 주 목요일(23일)이 ‘처서’, 이젠 찬 공기에 익숙해질 때입니다.


2. 지난 주 섬뜰의 박종관, 변학수, 변완수, 최태준, 김재용 씨가 예배당 화장실의 벽을 넓히는 공사를 해주었습니다. 자원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을 흘렸는데, 그 정성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이어지던 중 마지막 소식은 이랬다.


7. 미국 뉴저지의 길벗교회(담임, 김민웅 목사)에서 창립주일을 맞아 단강으로 선교헌금을 보냈습니다. 귀한 정성, 고맙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소식들, 나로서는 아찔하고 그리운 시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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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3)

 

내 몸이 너무 성하다

 

 


 

거꾸로 걷거나 뒷걸음질을 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의 시를 모두 읽고 싶어 뒤늦게 구한 책 중의 하나가 <벌레의 집은 따뜻하다>인데, 보니 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첫 번째 시집을 뒤늦게 읽게 된 것이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책머리에 실린 ‘서시’가 매우 짧았다. 군더더기 말을 버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것이 시라면, 시인다운 서시다 싶다. 

 

다시 한 번 곱씹으니 맞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사람 손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몸이 너무 성하다니! 나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삶을 모른다고, 여전히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짧은 말 속에 자신의 한계를 겸손하게 밝힌다. 그런 표현과 단어조차 흔하고 뻔해 슬그머니 나무 이야기를 통해서. 

오히려 그런 고백이 시인을 향한 신뢰로 확장된다. 다음 장을 넘기는 마음에 설렘과 기대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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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때
    


1981년, 그해 가을을 잊을 수 없다. 짝대기 하나를 달고 포상 휴가를 나온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군에 입대한지 넉 달여 만의 일이었으니 그야말로 꿈같은 휴가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마친 뒤 자대에 배치를 받자마자 배구대표선수로 뽑혔고, 광주 상무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했다. 9인제 배구였는데 나는 레프트 공격수였다. 아무리 규모가 큰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해도 이등병에게까지 휴가를 줄까 염려했던 것은 기우, 보란 듯이 3박4일간의 휴가를 받은 것이었으니 군 생활 중에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그만한 것도 드물 것이었다.

구름 위를 날아가는 것 같은 기차를 타고 올라와 수원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부곡역에 내린 나는 먼저 교회를 찾아갔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린 뒤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려 사택에 들렀다. 사모님이 나오셨는데, 나를 보더니 왈칵 눈물을 쏟으신다. 반가움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잠시 뒤에 나오신 목사님도 마찬가지였다. 눈물부터 보이셨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더 참지를 못하고 여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요?” 질문을 받은 두 분은 당황하셨다. 모르고 왔느냐며 되물으셨다. 

막내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그렇게 들어야 했다. 나를 좋아하고 따르던, 자기도 신학을 공부해서 형을 도와 목회를 하고 싶은 꿈을 가졌던, 형이 우승을 하면 휴가를 나갈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는 매일 밤 예배당을 찾아 기도를 드렸던, 우승을 하며 누구보다 먼저 떠올랐던, 휴가를 나오며 가장 싶었던 사랑하는 동생이었다.


사고였다. 막 입대한 내가 충격을 받을까 집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막 장례를 마친 뒤였다. 포상 휴가를 받아 기쁨으로 달려온 내게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내가 동생을 잃은 것과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잃은 것은 달랐다. 비교할 수가 없는 슬픔과 고통이었다. 어머니는 당신 생의 유일한 벗을 잃었다고 했다. 그만큼 막내는 심성이 착했고 다정다감했다. 그런 어머니 앞에서 나는 눈물조차 보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모르겠는 시간을 뒤로 하고, 부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 때의 쓸쓸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눈물에 젖은 기도를 드렸다. ‘내 것 아닌 것, 내 것이라 하지 않게 하소서.’

 


부대에서는 포병 생활과 군종 생활을 겸하여 했는데, 어느 날 말씀을 준비하다가 마가복음 11장을 읽게 되었다. 잎만 무성한 채 열매가 없었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구절이었다.


예수께서 베다니 지역을 지나가실 때는 유월절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6월말 7월초에 열매를 맺는 나무에게 4월에 열매를 찾는 것은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이었다. 나무 잘못이 아니라 열매를 찾는 이의 잘못이었다. 동생을 보낸 슬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당하게 여겨졌던 그 말씀은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주님은 때 아닌 때에 열매를 요구할 수 있는 분이구나.’

며칠 전 새벽기도 시간에 만난 본문이 같은 본문이었다. 같은 본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동생을 떠올리게 되었다. ‘너는 멀리 떠난 것이 아니다. 이제부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살자’ 했던, 귀대하던 기차 안에서 가졌던 다짐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우리의 삶이란 때 아닌 때에 열매를 찾는 그분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삶이다. 시간이 우리 몫이 아닌 것처럼 항의나 원망 또한 우리 몫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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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오래 전 단강에서 보낸 시간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보와 함께 기억을 하곤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주보에 담았다. 땅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여겨졌던 일들, 그 일을 기록하는 것은 내가 이웃에게 다가가는 한 방법이었고, 내게 허락하신 땅을 사랑하는 한 선택이었다. 고흐가 그림을 통해 땅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나는 이야기를 통해 다가갔다. 주보의 이름도 <얘기마을>이었다.

지렁이 글씨로 글을 쓰면 아내가 또박또박 옮겨 썼다. 때로는 아내조차 내가 쓴 글씨를 읽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글씨를 읽지 말고 이미지를 읽으라 말하고는 했다. 그렇게 손으로 써서 만든 주보는 민들레 씨앗처럼 조용히 퍼져갔고, 700여 명의 독자가 있었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식구들이었다.

 


 

단강을 떠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서로에게 그랬다. 떠남을 얼마 앞두고 만든 주보 표지에 ‘징검다리’라는 짤막한 글을 실었다. 

내가 아니면 건너지 못한다.
나는 건너지 못한다.    

떠나는 날이 보름여 남았을 때니 단강을 떠난다는 것을 교우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떠나는 마음을 남기고 싶었다. 우연히 만난 옛 주보 표지에 실린 ‘징검다리’, 나는 여전히 징검다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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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to Great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Good is the enemy of Great) 라는 말이 있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짐 콜린스 교수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 나오는 구절로 알려져 있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라는 말 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이어진다. “대개의 사람들은 제법 ‘좋은 삶’을 살게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위대한 삶’으로의 꿈을 접는다.” 

 

 

 

 

의미로 살펴보면 ‘좋은’이라고 옮긴 ‘Good’은 ‘좋은’보다도 ‘무난한’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무난한 삶에 만족하여 그 너머에 있는 위대한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이만하면 됐다 하는 마음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위대한 삶을 미리 포기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Great’는 ‘위대함’보다는 ‘의미 있는’으로 옮기고도 싶다.

시간은 인간의 몫이 아니어서 때를 셈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환갑이 지나면서부터 목회의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조급함과는 조금 다른,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난하게, 무탈하게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 없다. 그것은 최선이 아니다. 낯설고 거북해도 무난한 것을 등지고 의미 있는 것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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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9)

 

어느 날 보니

어느 날 보니
젊다는 것이 예쁘더라
푸릇푸릇
영 서툰 것이

어느 날 보니
늙었다는 것이 예쁘더라
노릇노릇
잘 익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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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7)

 

호박꽃을 따서는

우리나라의 전래동요를 모아놓은 책에 ‘호박꽃’이란 동요가 담겨 있다. 

충북 충주 지방 동요라고 밝히고 있는데, 삽화도 정겹다.

호박꽃을 따서는
무얼 만드나
우리 아기 조고만
촛불 켜주지

 


 

 

 


예뻐라, 호박꽃.
호박꽃과 같은 후덕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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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6)

 

개치네쒜

 

 

우리가 모르는 우리말이 어디 한둘일까만, ‘개치네쒜’라는 말은 전혀 모르던 말이었다. 심지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디 다른 나라 말로 여겨진 말이었다. 우리말에 그런 말이 있는 줄을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 영 아쉽게 여겨졌던 것은 그럴 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목회를 시작하며 독일어를 배우는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개설한 독일어를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나처럼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아베 체 데’부터 배우는 과정이었다. 오직 독일어만으로 독일어를 가르쳤는데 전혀 모르는 언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내게는 또 다른 관심사이기도 했다. 표정이나 몸짓이 만국공통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 때 덤으로 배웠다. 

어느 날인가 인사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날 배운 인사말 중의 하나가 “게준트하이트!(Gesundheit!)”였다. 누군가가 재채기를 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건네는 인사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말은 건강이라는 뜻의 ‘게준트(Gesund)’와 상태를 의미하는 ‘하이트(Heit)’가 결합된 말이었다. 


게준트하이트를 일러준 선생님은 수강생인 우리들에게 자기나라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인사를 하는지를 나눠보자고 했다. 미국에서 온 학생이 당연하다는 듯이 “God bless you”라고 소개를 했다. 그날 들은 인사를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라마다 다양한 인사말이 있었다.  


아랍에서는 “알함둘릴라(Alhandulilla)”(신께 찬미를)이라 말하고, 러시아에서는 재채기를 한 아이에게 “부지 즈도로브(Bud’ zdorov)”(건강해라)라고 화답한 뒤에, “로스티 볼쇼이(Rosti bolshoi)”(크게 자라거라)라고, 중국에서는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 “백 살까지 살기를”이라는 뜻으로 “바이 슈이(Bai sui)”라고, 이탈리아에서는 “펠리시타(Felicita)”(행복해라), 프랑스에서는 “A vos souhaits”(소원 성취하기를) 또는 “Que Dieu vous benisse”(신의 가호가 있기를)라고 인사를 한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는데 도무지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재채기를 했을 때 따로 들었던 말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말이 없다고 하기에는 뭔가 우리나라를 미개하거나 무례한 나라로 만드는 것 같았고, 우리에겐 그런 말이 없다고 독일어로 표현할 자신도 없었다.
얼떨결에 대답했던 말이 “에헴!”이었다. 대답을 하고나자 그 말이 재밌다며 학생들이 웃었는데, 순간적으로 깨달았던 것은 “에헴”이라는 말은 재채기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그 말은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했던 말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아이가 기침을 하면 기침을 그치라며 어른들이 따라하라고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말에도 재채기를 했을 때 건네는 말이 있었다니! ‘개치네쒜’가 바로 그런 말이었던 것이다. ‘개치네쒜’라는 말은 영 낯설어서 마치 주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개치네쒜’의 유의어로는 ‘에이쒜’나 ‘에이추’가 있고, 강원도 방언으로는 ‘개치네시’라 했다니, 제법 널리 사용하던 말이었지 싶다. 누군가 재채기를 했을 때 “개치네쒜!” 하면 고뿔이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모르는 단어 하나를 아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재채기 하나에도 따뜻한 관심을 갖는 의미로 마음에 새겨둘 우리말이다 싶다. ‘개치네쒜’라는 낯선 말이 어서 낯설음을 벗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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