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이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40)


사순절이란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아픈 당신
나보다 더 힘든 당신
미련함으로
송구함으로
뒤늦게 깨닫는


사순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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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로 손 씻기와 설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9)


비누로 손 씻기와 설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습관이 두 가지 있지 싶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손 등으로 가리고 하는 것과, 손 씻기를 자주 하는 것이다. 손을 씻을 때 비누로 손을 씻으면 소독제를 바르는 것보다도 효과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들은 대로 비누로 손을 씻다가 엉뚱한 생각을 한다. 혹시 비누로 손을 씻으면 효과적이라는 말은 유머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비누로 손을 씻으면 손이 미끌미끌해지고, 미끌미끌해진 손을 닦아내려면 한참 물로 닦아야 한다. 비누가 손 구석구석에 묻었으니 비누를 다 닦아내려면 손 구석구석을 닦아야 한다. 그렇게 비누를 없애느라 손을 닦다보면 나도 모르게 손을 열심히 오래 제대로 닦아야만 한다. 비누가 효과적이라는 말은 얼마든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겠지만, 내게는 단순한 유머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설교가 그랬으면.
그렇게 쉽고도 당연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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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 다섯 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8)


화장지 다섯 롤


독일에 사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독일도 거의 모든 일상이 멈춰 섰다고 한다.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지내고 있단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제 나라와 대륙을 너무도 쉽게 무시한 채 맘껏 활보하고 있다 여겨진다.


부모로서 제일 걱정되는 것은 한결같다. 밥은 제대로 먹는지, 아프지는 않는지를 물었다. 답답하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니 고마운 일이었다. 뉴스를 통해 사재기 소식을 들었던 터라 쌀과 마스크, 화장지가 있는지를 물었다.




쌀은 별 문제가 없고, 마스크는 있으나 마나란다. 마스크를 쓰고 나가면 환자 대하듯 바라보는데, 더욱이 아시아인이 쓰고 있으면 마치 바이러스 숙주를 바라보는 것처럼 따갑게 바라보아 불편하기 그지없다는 것이었다. 


화장지는 이제 다섯 롤이 남았단다. 마트에 가도 화장지 진열대가 비어 있다는 것이다. 걱정이 되어 “화장지를 보내줄까?” 물었더니, 큰 소리로 웃는다. “무슨 화장지까지 보내줘요.” 하면서 어떻게든 구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5롤이나 남았는데요, 뭘.” 한다. 멀리서 걱정할까 싶어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통화를 마치며 괜히 미안했다. 이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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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는 손님 모시듯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7)


찾아오는 손님 모시듯


‘좋은날 풍경’ 박보영 집사님이 노래 하나를 보내주었다. 흔하게 쓰는 카톡을 통해서도 노래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여전히 신통방통이다.

 




‘봄’이라는 노래인데, 명함처럼 생긴 종이 위에 노랫말을 손 글씨로 적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곁에 찾아왔지만 놓치고 있는 봄의 정취를 나눌 겸 아는 이들에게 노래를 보냈다. 나도 노래를 보낼 수 있다니, 이 또한 신통방통!


행여
꽃잎 떨굴까
내리는 봄비
조심스럽고


행여
미안해할까
떨어진 꽃잎
해맑게 웃고


오래 전에 쓴 짤막한 글이다. 비에 젖은 채 떨어진 예쁜 꽃잎을 보다가 지나가는 생각이 있어 옮긴 것인데, 우연처럼 글자 수가 맞았다. 


더러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오는 손님을 만나듯 글을 쓸 때가 있다. 그렇게 써지는 글에 오히려 마음이 오롯이 담긴다. 나를 찾아오시는 손님일랑 언제라도 정성으로 모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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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뒷모습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6)


 씁쓸한 뒷모습


토요일 오후, 설교를 준비하던 중 잠시 쉴 겸 밖을 내다보는데 예배당 바로 앞 공터에 누군가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한 부인이 원예용 부삽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공터에 꽃씨를 심는 줄 알았다. 교인이 아닌 이웃이 교회 앞 공터에 꽃씨를 심는다면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 찾아가서 인사를 해야지 싶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부인 옆에는 화분이 있었는데, 화분에 흙을 채우고 있었다. 마당이 없는 이가 화분에 흙을 채우기 위해 왔구나 싶었고, 설교준비를 이어갔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이제는 갔을까 싶어 다시 내다보니 부인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부인은 조금 전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흙을 채운 화분에다 주변에 피어난 제비꽃을 캐서 옮겨 담고 있었다. 보랏빛 제비꽃이 무리지어 예쁘게 피어났는데, 교회 조경 일을 맡은 홍 권사님이 정성껏 심은 제비꽃이었다.


아차 싶어 창문을 열고서는 그러지 마시라고, 교회에서 일부러 심은 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부인은 당황해 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공터에 예쁜 꽃이 피어 있어 캐가도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싶었다. 그런데 부인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왕 캤으니 캔 것은 가져갈게요. 다시 땅에 심으면 아무래도 죽을 것 같네요.”


말문이 막혀 대답을 못하고 있는 사이 부인은 화분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보랏빛 제비꽃이야 어디서든 아름답겠지만, 그 꽃을 들고 돌아서는 뒷모습은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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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5)


그러거나 말거나


정릉교회 담장을 따라 영춘화가 환하게 피어났다. 오가는 사람들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다.



우리가 모르는 이름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영춘화를 모르는 이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이 꽃이 무슨 꽃이지?”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라, 개나리가 벌써 피었네!”


세상 어수선하다고 미루지 않는다. 자기 이름 모른다고 찡그리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꽃은 꽃으로 핀다. 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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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과 수채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4)


하이든과 수채화


며칠 전 지강유철 전도사님이 지인과 함께 정릉을 찾았다. 지난번 신앙강좌 시간을 통해 장기려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이 있었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전해들고 가방에 여러 개의 시디를 챙겨왔으니 나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걸음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둘러앉아 챙겨온 음악을 들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가의 삶과 음악에 담긴 이야기, 연주자나 지휘자에 얽힌 이야기,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네 삶과 정치 교회와 신앙 혹은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으면서도,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이태준 생가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이야기는 내내 이어졌다.  


우리가 나누는 시간이 좋아서 모임 하나를 제안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챙겨온 음반 중에는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도 있었다. Hamelin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음반이었다. 그 음반을 소개하며 전도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수채화 같은 곡이에요.”


세상에, 누군가의 곡을 두고 수채화 같다고 하는 말을 나는 처음 들었다. 그것은 그렇게 말하는 이의 마음, 음악을 듣는 마음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처럼 다가왔다. 


언제 어디가 될 지야 어떻게 알까만,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참여하면 좋겠다. 하이든과 수채화를 연결시키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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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껏 행복해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3)


재주껏 행복해라


토요일 아침, 목양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일 아침 9시에는 교직원 기도회가 있다. 기도회로 모이는 새가족실로 향하는데, 저만치 보니 문이 닫혀있고 불도 꺼져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모두들 모여 기도회를 준비할 때, 이게 뭐지 싶었다. 


내가 시간을 잘못 확인하고 내려왔나 싶어 시계를 보니 9시가 맞다. 설마 오늘이 나만 모르는 공휴일인가 하는 생각도 지났지만 다른 날도 아닌 토요일, 오히려 중요한 날이다. 아무 것도 짚이는 것이 없었다. 다들 늦을 리는 없을 텐데 갸우뚱 하며 새가족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노래가 울려 퍼졌다. “생일 축하합니다!”, 교직원들이 둘러서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저만치 내가 늘 안는 자리 앞에는 촛불이 켜진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실은 생일이 이틀 뒤, 월요일이 휴무일이다 보니 미리 준비한 자리였다. 따뜻한 마음이 물씬 전해졌고,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만큼 놀랍기도 했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케이크를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문득 떠오른 일이 있다.





단강에서 목회를 하던 시절, 연세대 재활의학과 학생들이 해마다 농촌봉사활동을 왔다. 농촌에 사는 어른들에게 함부로 의식화를 하려는 대신 머리 숙여 배우는 마음이라면 받겠다고 하여 시작이 된 농활이었는데,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만남이 되었다. 


한 번은 군에서 휴가를 나온 한 학생이 봉사활동에 참여를 했다. 그만큼 농활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가 입대해서 경험한 일을 들려주었는데,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머니가 책 한 권을 보내오셨단다. 그런데 책을 여니 앞장에 어머니가 적은 글이 있었다는 것이다. “재주껏 행복해라!” 군에 간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사랑하고 믿는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울하고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럴수록 재주껏 행복하자고, 밝은 기운을 교우들 이웃들과 나누자고 했다. 자줏빛 리본으로 묶인 종이는 교직원들이 쓴 편지라고 했다. 오랜만에 받아든 상장처럼 아껴 읽어야지 싶었다. 케이크 위에 꽂혀 있는 62라는 숫자, 잘 익어가야지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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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솔과 신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2)

 

경솔과 신중

 

 

 

 

가능하다면 경솔하지 말아야 한다. 기민해 보여도 즉흥적이기 쉽고, 활달한 것 같아도 중요한 놓치기가 쉽다.


신중한 것은 좋은 일이다. 삼갈 신(愼)에 무거울 중(重), 사전에서는 신중을 ‘썩 조심스러움’이라 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는 것은 모자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법, 지나친 신중함은 좋을 것이 없다. 신중함이 지나쳐서 때를 놓치거나 당연한 일을 미루다가 아예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신중함은 또 다른 형태의 경솔함일 수 있다.

 

지나친 신중함으로 경솔의 길을 걷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나친 신중함으로 경솔의 길을 택하는 것은, 그것이 위험부담이 가장 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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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다는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1)

 

겸손하다는 것

 

‘겸손’(humility)이라는 말은 ‘흙’에서 온 말이다. 흙을 의미하는 라틴어 ‘humus’에서 왔다.
‘humus’와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이 있는데, ‘유머’(humor)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흙이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줌의 흙에서 와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안다.

‘謙遜’은 ‘겸손할 겸’(謙)과 ‘겸손할 손’(遜)이 합해진 말이다.
조금만 겸손을 떠나면 겸손일 수 없다는 듯이.

 

겸손의 바탕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믿음이 얼마든지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겸손할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판단하거나 말하지 않는다.
겸손할 때 우리는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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