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11)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다른 별의 고요를 다 데리고 와도 시끄러울 뿐인, 그대가 그대로 있는 것만이 사랑인, 꽃의 말과 새의 말과 사람의 말이 구분되지 않는, 사람도 사랑도 새도 나비도 죽음도 꽃이나 별떼도 하나로 흐르는, 좋다와 싫다가 동의어인, 문자가 없어 마음을 옮겨 적을 수가 없는, 수국의 꽃잎 하나 달기 위해 천년이 흐르는, 밝아서 당신이 보이는,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을 내비게이션으로 치면 찾아갈 수 있는 고유명사이자 시인의 마음에서 새롭게 빚어진 보통명사가 된 북천, 어쩌면 시인 자신일지도 모를 북천에서 온 사람을 두고 시인 이대흠은 이렇게 노래를 한다.

 

                                             사진/한남숙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든 다 주고
자신마저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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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10)

 

하늘 그물

 

새벽기도회를 마쳤을 때 권사님 한 분이 목양실로 찾아왔다. 새벽에 나눴던 말씀 중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본문이 있었던 것이다. 스가랴 11장이 본문이었는데, 본문 속에 나오는 토기장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괜찮으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권했다. 권사님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권사님은 당신의 지나온 시간을 이야기했다. 잠깐 사이에 듣는 이야기 속에도 기가 막히도록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이야기 끝 권사님은 당신은 기도할 때마다 드리는 기도가 있다고 했다.


“하나님, 제게 왜 이러십니까? 언제까지 이러실 겁니까?”


권사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권사님께 하늘 그물 이야기를 해드렸다. ‘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노자>에 나오는 말로 ‘하늘 그물은 넓고 성기어서 허술한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사진/한남숙

              
하늘 그물이 있나 싶게, 저렇게 코가 넓어 무엇을 담을 수 있나 싶게 하늘 그물은 엉성하기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그물은 빠뜨리는 것이 없다니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리고 드리는 나직한 기도, 기도를 하는 사람도 함께 기도하는 사람도 함께 메는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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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09)

 

목이 가라앉을 때면

 

부활주일을 앞두고 두 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을 갖고 있다. 어떤 모임 앞에 ‘특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조심스럽다. 졸지에 다른 시간을 특별하지 않은 시간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말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평소에도 갖는 새벽기도회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서일까, 평소보다 많은 교우들이 참여를 한다. 평소와는 달리 대표기도, 성경봉독, 특별찬송 등의 순서도 있다. 그런 순서 자체가 마음을 구별하게 만들지 싶다.

 

기도회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목이 칼칼해지기 시작하더니 푹 가라앉고 말았다. 새벽에는 증세가 더 심해져서 말하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대표기도를 하는 교우가 목사의 성대를 위해서도 기도를 하니 마음에 더 걸린다.

 

 

 

이렇게 목이 가라앉을 때면 떠오르는 시간이 있다. 오래 전이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연합성회가 열릴 때였다. 화천에 있는 교회가 교단을 떠나 한 자리에 모여 말씀을 나누는 자리였다. 강사로 초대를 받았는데, 떠나기 전부터 칼칼하던 목이 대번 티를 내기 시작했다. 목이 찢어지듯이 아팠고, 말이 잘 나오지를 않았다. 색색거리는 쇳소리뿐 정말로 말이 안 나와 예배 후엔 식사기도를 못할 정도였다. 나을 수만 있다면 똥물이라도 마실 심정이었다. 마이크를 손에 붙잡고 어렵게 시간을 이어갔다. 오히려 교우들은 강사를 걱정하며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마지막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말씀을 나누기 전 그동안 강사를 위해 기도해준 교우들께 고맙다는 인사부터 했다. 인사 후 기도로 말씀을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삶에서 며칠을 감하시든, 몇 달을 감하시든, 몇 년을 감하시든 괜찮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만큼은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칼칼하던 목이 다시 멨고, 두 눈이 젖었다. 다행히 말씀을 모두 마칠 때까지 목소리가 나왔다. 기도를 들으신 주님의 은혜였다. 목이 가라앉을 때면 화천, 그 때의 기도가 떠오른다.

 

내 삶에 얼마큼의 시간을 허락하시든 얼마를 감하셨는지 셈을 하지 않기로 한다. 여쭙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시간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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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08)

 

치명적인 오류

 

<기독교사상> 담당자가 보낸 메일을 받고는 당황스러웠다. 매달 ‘내가 친 밑줄’이라는 글을 연재하는데, 지난 3월호에 실었던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글 중에 인용한 니체의 말이 실은 니체의 말이 아니라 니체에 대해서 글을 쓴 저자의 말이라는 지적이었다. 설마 그런 중요한 실수를 했을까 싶어 서둘러 <니체의 문체>라는 책을 찾아보았다. 이런! 그 지적은 맞았다.


‘드러난 것은 드러나지 않은 것보다 적다.’


‘목소리는 개별자의 것이지만 단어들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저자의 문체는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통해서 그런 것처럼, 그가 피하는 단어들을 통해서도 형태를 갖춘다.’


니체의 말이라고 인용한 두 문장은 모두 니체의 말이 아니었다. <니체의 문체>를 쓴 책의 저자 하인츠 슐라퍼의 말이었다.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아찔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알 수 있는 지극히 단순한 일, 왜 그걸 실수했을까? 설교든 글이든 누군가의 글을 인용할 때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찌 그런 우를 범했을까, 몹시 당황스러웠고 부끄러웠다.


잘못된 선입견 아니었을까 싶었다. 인상 깊게 남은 그 말을 어느 순간부터 니체의 말로 기억을 하고, 글을 쓰면서도 당연히 니체의 말로 생각하여 잘못 인용을 한 것이었다.


그런 생각은 내 안에 잘못된 선입견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목회의 길을 걸으며 때마다 나누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생각이 마구 뒤엉겨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다.

 

지적이 맞다고, 그 단순한 사실을 혼동한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고, 지적을 해 준 분의 밝은 눈에 감사를 드린다고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생각하니 답장 하나로 끝낼 일은 아닌 듯하다. 원고를 쓰기 시작한지가 벌써 2년, 어느새 내가 무뎌진 것인지도 모른다. 물러서는 시간을 앞당겨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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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4월 16일은 마치 정지된 시간처럼 다가온다. 다른 것은 다 흘러갔지만 흐르지 않던, 흐를 수가 없었던 시간이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찾아온다. 흐를 수가 없었던 시간이기에 언제나 변하지 않은 아픔의 민낯으로 다가온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이젠 그만 하자고. 그만 하자는 말은 꽤나 점잖은 말, 실은 사납고 섬뜩한 말들이 난무한다. 그것은 마구잡이로 쏘아대는 화살과 같아서 피눈물을 흘리는 이의 가슴에 거듭해서 박히고는 한다. 화살이 박히고 박혀 이미 너덜너덜해진 기가 막힌 가슴들 위로.

 

 

 

 


왜 사람들은 흘러간 시간의 길이만을 말하는 것일까?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왜 외면하는 것일까?

 

이제는 그만하자고 말하는 이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따지듯이 가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날 수장된 304명 중에 당신의 아들이나 딸, 혹은 손자나 손녀가 있었어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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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함정

 

시간이 지나가도 잊히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 때는 몰랐지만 마음속 뿌리라도 내린 듯 오래 남는 기억들이 있다. 잊힌 듯 묻혀 있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르곤 한다. 때를 기다려 눈을 뜨는 땅속 씨앗들처럼. 


그런 점에서 따뜻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가족들과 나눈 따뜻한 기억 몇 가지가 평생 우리를 지켜준다.’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말도 그런 의미 아닐까 싶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기억 중에는 초등학교 때 일이 있다. 그날따라 종례시간에 들어온 선생님의 얼굴은 무거워 보였다.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집에 늦게 가야겠다며 밖으로 나가 개구리를 한 마리씩 잡아오라고 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것은 이미 땅이 얼어붙은 겨울, 도대체 개구리를 어디서 잡으라는 걸까 싶으면서도 우리는 각기 흩어져 학교 주변을 헤집고 다녔다. 


땅거미가 깔려들 무렵 우리는 다시 교실로 모였다. 와서 보니 교탁 위에는 시커먼 보자기에 덮인 뭔가가 놓여 있었다. 어항이었는데, 어항 속엔 우리가 잡아온 개구리 중에서 제일 큰 놈 한 마리가 담겨 있었다. 선생님 설명이 그랬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한 명씩 나와서 어항 속에 손을 넣으라고 했다. 두 번째 손가락 검지가 어항 바닥에 닿도록 넣으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납부금을 잃어버린 친구가 있었는데, 가져간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개구리는 영물이라 누가 가져갔는지를 알아 그 손이 들어오면 꽉 깨물 것이라고 했다. 

 

 


그날 나 말고도 대여섯 명이 걸렸다. 어항에 차례대로 손을 넣게 한 후 선생님은 한 명씩 손가락 검사를 해서 몇 명을 잡아냈다. 개구리가 잘못 알고 내 손가락을 깨물면 어떡하나, 개구리가 손가락을 깨물다니, 맹세코 나는 친구의 돈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런 두려움에 손가락을 바닥까지 넣지 못했다. 어항에 손을 넣는 척 하다가 중간쯤에서 얼른 빼고 말았고, 그런 내 손에 먹물이 묻을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짐작해낸 것이지만 그때 어항 밑엔 개구리가 없었다. 먹물만 깔려 있었다. 어린 나이, 선생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은 우리들의 순진함 때문이었다.


다음날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돈이 친구의 전과책 사이에서 나와 누명은 벗었지만, 개구리 일로 마음에 남은 두려움과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기억의 상자 속에 남아 있다. 어항은 작았지만 내겐 깊고 큰 함정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함정을 숨기고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초등학교 시절 나는 개구리 함정을 통해 배운 셈이다. 함정의 정체나 모양이 어떠하든, 그리고 효과가 어떠하든, 함정을 숨기고 누군가를 대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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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손톱을 집으며

 

책상 위에서 손톱을 깎으면 잘린 손톱이 이리저리 튄다. 펼쳐놓은 종이 위로 얌전히 내려앉는 것들도 있거니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 숨는 것들도 있다. 손톱이 잘리는 것도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배제의 아픔일지, 사방으로 튀는 손톱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같다.

 

 


손톱을 깎고 나면 눈에 보이는 손톱을 찾아 치우느라 치우지만 때로는 뒤늦게 발견되는 손톱이 있다. 뒤늦게 발견된 손톱을 치우기 위해 취하는 동작이 있다.

 

두 번째 손가락 끝으로 꾹 누른다. 꾹 눌러 손톱을 들어 올린다. 들어 올린 손톱이 떨어지면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손톱을 누른다. 누른 만큼, 손가락 끝에 박힌 만큼 손톱은 달라붙는다.

 

내게서 멀어진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를 더욱 내게 밀찰 시키는. 다시 멀어질 때에는 내게 자국이 남을 만큼 더욱 받아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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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03)

 

노동의 아름다움

 

정릉교회 예배당 맞은편에선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감리교 은퇴 여교역자를 위한 안식관을 짓고 있는데, 담임목사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면 공사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난 겨울 터를 파기 시작할 때부터 2층을 올리려고 준비하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집을 짓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바라보기는 처음인데, 재미있다. 공정마다 서로 다른 장비와 재료와 인원이 동원된다. 신기하게 여겨지는 장비들이 한둘이 아니다. 분명히 다양한 과정과 일들이 있을 터인데 어떻게 그 과정을 이해하고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것인지,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주어진 하루의 일을 하고, 그 하루하루의 결과물이 쌓이면서 조금씩 건물의 형태가 만들어져 간다.

 

 

 

오늘은 1층에서 2층을 올리기 위한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기둥에 해당하는 곳에 철근 기둥들을 세워 올렸다. 빈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도록 하는 것이 집이지만,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둥이 힘을 떠받쳐야 한다. 힘을 잘 받기 위해 온통 기둥을 세우면 공간을 만들 수가 없다. 기둥과 공간의 절묘한 조화를 누가 어떻게 산출해내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오늘의 주된 작업 중의 하나는 거푸집을 만드는 것 같다. 철근작업과 함께 곳곳에 거푸집을 만들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꼴을 갖춰가는 형태도 형태지만 이따금씩 궁금해서 밖을 내다보게 하는 것이 따로 있었다. 못을 박는 망치소리였다. 몇 명이 망치를 들고 있는 것인지 망치질을 하는 소리가 마치 연주를 하는 것처럼 들렸고, 그 묘한 소리는 옛 시간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어느 날인가 프랑크푸르트 시내 자일(Zeil)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감미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속에 섞인 향기처럼 낮고 은은한 소리였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 사람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둥근 키파와 넉넉하게 기른 수염, 그리고 입고 있는 하얀 옷이 영락없이 랍비를 떠올리게 하는 한 남자가 스스로 음악에 취한 채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놀라웠다. 자일러폰이었는데, 건반 수가 굉장히 많았다. 소리도 깊고 은은했다. 손에 들고 채도 도대체 몇 개야 싶을 만큼 여러 개여서 어떻게 저 많은 채를 한꺼번에 들고 한 사람이 연주를 할까 싶었다. 울려나오는 소리는 여러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소리였는데, 그걸 한 사람이 하고 있으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멜로디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절묘하고 기가 막힌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서서 연주를 듣다가 그가 쉬는 시간 시디 한 장을 구입했다. 그냥 지나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여겨졌다. 연주가 환상적이었다고 인사를 하자 그는 기꺼이 음반에 사인까지 해주었다. 지금도 그 음반을 가지고 있는데 꺼내보니 연주자는 Alex Jacobowitz, 음반의 제목은 <The Art of Xylos>이다. 혹시 나만 모르는 세계적인 거장을 길거리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나 모르겠다.  

  

공사 현장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망치질을 하는 소리는 그때 그 연주, 프랑크푸르트 자일거리에서 들었던 연주를 떠올리게 했다. 맞다, 어디 자일러폰의 연주뿐이겠는가. 함께 땀 흘려 집을 짓는 노동 자체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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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농담 참말이에요?

 

막내와 도봉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막 터지고 있는 목련에 눈길이 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나중에 막내가 사진을 보더니 “거 뭐라고 하죠? 먹물로 그린 그림이요.” 묻는다. 수묵화를 말하지 싶었다. 사진의 느낌이 수묵화를 닮았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이해가 좋았다.

 

 

 

 

깜박 잊고 하지 못한 말이 있다. 다음에 만나면 농담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농담 이야기를 하면 농담(弄談)으로 받겠지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농담(濃淡)이다. 색깔이나 명암 따위의 짙음과 옅음 또는 진함과 묽음의 정도를 의미 하는, 그 농담 말이다.

 

아빠가 워낙 엉뚱한 얘기를 잘하니 농담 이야기를 들으면 녀석은 필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농담 참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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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01)

 

봄비가 꽃비로

 

사나운 바람과 함께 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교우 가게에 들렀다가 먼저 와 계신 원로 여자장로님을 만났는데, 장로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게 밖을 손으로 가리키며 뜻밖의 인사를 건넸다.


“봄비가 꽃비로 내려요.”

 


사나운 바람으로 아기 손톱 같은 벚꽃 잎이 눈발처럼 날리고, 허공으로 날아오른 꽃잎들이 마침내 땅 위로 떨어져 길과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예쁘고 아프게 수를 놓고 있었는데, 그를 꽃비라 부른 것이었다.

 

봄비가 꽃비로 내린다는 백발이 성성한 장로님의 그윽한 인사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 밖에 없었다.  “시인이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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